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24. 정읍으로 환고향을 하고 - 1
1 말레이시아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던 중 한남동 훈독회에 참석했다. 참아버님께서는 남편에게 “유종영 환고향을 할 거야, 안 할 거야?” 세 번을 물으셨다. 남편은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 부부는 정말 본보기가 되자고 약속을 하고 남편의 고향인 정읍으로 내려갔다. 2 마땅히 지낼 곳이 없었는데 다행히 숙박업을 하는 지인이 방을 하나 내주었다. 그 모텔에서 지내며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 50년 이상 고향을 떠나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활동을 하자 고향 사람들이 의아해 하였다. 우리는 참아버님이 배후에 계시니 정면돌파를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3 그런데 정읍교회 중심 식구가 ‘통일교’라고 밝히면서 활동을 하게 되면 다 도망갈 거라며 말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걱정을 뒤로하고 친척들과 동창생 200명을 내장산 관광호텔에 부부 동반으로 초청했다. 그 사람들에게 원리 강의를 하면서 참부모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렸다. 성주식과 축복식까지 하며 첫 스타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4 거기에 힘입어 두 번째 모임을 개최해 시장과 경찰서장을 초대했는데 유성엽 시장과 김원기 국회의장이 참석했다. 두 번째 모임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계속 만나서 말씀을 전하고 훈독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한 달에 한 번씩 모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산악회였다. 그래서 ‘평화통일산악회’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게 됐다. 6 그 내용을 참아버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산악회가 아닌 ‘산수원’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셨다. ‘산’은 뼈와 같고 ‘수’는 사람의 피와 같으며, ‘원’은 사람의 살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자연처럼 진실하고 순수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산수원은 전국으로 퍼져 전도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됐다. 7 산수원 모임과 평화대사 모임을 가지면서 열세 가정이 기성 축복을 받는 성과가 있었다. 그 후 열세 가정을 중심삼고 본격적으로 훈독회를 시작했다. 나중에는 웨딩홀을 운영하는 분이 평화대사가 되어 웨딩홀에서 훈독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읍 시내의 유지들이 다 모여 참아버님의 생애와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공유하면서 다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8 환고향은 나에게 깊은 의미가 있다. 참아버님께서 환고향 섭리를 말씀하셨을 때 나를 부르셨다. 그러고는 “정자야, 네 아버지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육신의 아버지와 지낸 시간보다 참아버님과 뜻길을 따라온 시간이 길었다. 오직 뜻을 위해 육신의 부모와는 인연을 끊고 살아온 삶이었다. 9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하니 옥잠화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닷가에 함께 놀러 갔던 일, 봄부터 가을까지 화단에 꽃을 심어 꽃이 계속 피어나게 하시던 일,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사람에게 하듯이 관에 넣어 묻어 주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부모와의 연을 끊고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참아버님의 말에 육신의 부모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