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반쯤 잠긴 징검다리를 건넌다. 미끄러져 가는 물살과는 달리 네모반듯하게 다듬어진 디딤돌들, 울퉁불퉁 정감 넘치던 자연 그대로의 모양새는 아니나 온천천은 아득한 시간을 소환한다. 쨍쨍한 햇볕 아래 물놀이로 풍덩거리던 한때가 여울져 오면 공연히 이끼 두른 돌다리를 건너가 본다.
누구든 삶의 징검다리를 건너왔고 건너간다. 젊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월 따라가 버렸고 어렸던 나는 뼈마디 시려오는 계절로 들어섰다. 사방 각지어 선 아파트와 곧게 뻗은 도로, 소음을 흩뿌리며 달리는 차량 행렬이 어질어질한 현재를 알려 준다. 이마를 맞대고 꺾어지던 골목길과 너른 공터와 마당이 있던 집들은 사라졌다. 길보다 몇 미터 낮은 온천천이 오랜 역사인 양 담담히 흐른다. 변덕스러운 도시에도 초연하게 흐르는 것이 있어 유정한가 싶다. 추억의 장소는 애잔하기도 정겹기도 하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를 거쳐 흐르는 온천천은 여름날 아이들에겐 물놀이장이 되고 엄마들에겐 빨래터가 되어 주던 곳, 부근의 평야가 시가지화되면서 많은 수난을 겪었다. 계곡의 건천화가 발생하고 각종 오염 물질로 몸살을 앓다가 마침내 자연 생태 하천으로 복원됐다. 숱한 바람이 생성되고 꺼져 가는 것을 밤낮 몸으로 겪었을 온천천은 그러나 유유하고 유장하다. 도시의 무성한 욕망과 온갖 불화와 개발 논리의 모순을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낮은 청음의 가락으로 천변을 울리며 흐른다.
천변 위로 지나간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계절이야 우주 법칙대로 순환한다지만 세상은 너무 변했고 사라져 간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 스러지는 것과 멀어지는 것들이 이즈음 유독 감성을 긋는 까닭은 속수무책 푸른 물을 날려 버려서인가. 삶은 엄청 복잡해 졌는데 마음은 더욱 공허하다. 올봄 환하게 피었다가 쫓기듯 지고만, 꽃의 그 속절없는 소멸도 쓰리다. 사람들은 지금 ‘괜찮지 않음’에 고달픈 자신을 위무하려고 천변을 걷는지도 모른다.
뭔지 막막하고 불확실하여 암울한 날이다. 봄이 왔어도 흐릿한 공기는 공포의 물질이며 언론 기사는 우리의 일상을 움츠러들게 한다. 경제는 위기, 외교는 붕괴상태, 세금은 폭탄이라는 보도가 이어진다. 의욕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숨쉬기가 아프고 우울의 수위가 높아져도 구심점을 잃지 않고 걸어야 한다. 오직 걸음에만 집중하려 애쓴다. 흘러가는 온천천처럼.
나지막이 울리는 물소리를 배경으로 천변의 풍경이 마음에 비쳐들기 시작한다. 자연이 채색해 놓은 연초록 풀잎과 생기 돋은 풀꽃들이 바짝 다가와 ‘지금 봄!’이란다. 초록이 상큼한 파장인 줄 예전에도 알았었나. 자연은 제, 자신조차 잘 정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위안과 안식의 길 하나를 언제든 내어준다. 춘하추동 새롭고 색다르게, 그런 곳을, 끼고 있다는 건 불편한 속내 마다하지 않고 받아 주는 ‘절친’을 곁에 둔 격이랄까. 몸과 마음이 순응하니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사르트르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 말들에 긍정적일 수밖에. 두 무릎으로, 두 다리로, 두 발로, 딛고 기고 걷는다는 건, 한 사람의 평생과 다름없다. 넘어질 듯 위태위태하면서도 앞으로 내딛는 확실한 보행이다. 미풍에 살랑거리다가도 몰아치는 광풍엔 외려 꿋꿋해지는 걸음이며, 뒤에 오는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는 행로이기도 하다. 일생일세(一生一世)의 노정. 그러기에 생멸의 경계선 위에서 사람들은 한사코 균형을 잡으려고 움직인다. 걸어온 내력이 만만찮은 만큼 길의 의미도 깊어진다.
세상 길은 고스란히 바람맞이 길이다. 삶에서 닥치는 고통 우울 눈물 환희도 예상치 못한 바람 손님들이었다. 손님이란 머물다 가는 존재, 내일도 모레도 바람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불어올 것이고 희비 쌍곡선의 그림자를 남기며 지나갈 것이다. 때론 깨달음과 새로움의 버전으로 번갈아 찾아왔다 간다. 사납고 맵찬 바람들이 따가운 상처를 안겨 주기도 하지만 모두가 나를 단단히 키워 주고 영혼을 성장시켜 줄 자양분이다. 그러나 오라, 소중한 시간 들이여. 잠들지 않는 바람이 있어 인생은 자신을 완성하고 세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빛나지 않는가. 스산한 바람도 푸르게 자라서 길이 되는 곳. 세상은 그 자체로 수행 터인 것을…. 뭔가 좀 심풀해졌다. 제법 걸었나 보다.
다행히 사람의 가슴엔 스스로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 있다. 사는 일이 만만찮기에 예비해 놓았을 비약(祕藥). 끊임없이 희망을 재생시키는 천연 배터리, 바로 환경 조건 불문의 성실하고 선한 ‘꿈’이라는 이상향의 에너지 아닐까. 절박한 상황일수록 꿈은 더욱 절실해지고 서럽고 시려야 어디든 다다를 수 있다. 혹 느닷없는 신종 바람 손님이 대책 없는 아픔을 몰고 와 꿈의 약발이 위태해진다 한들, 사람들은 손님 치르는 법을 몸으로 익히며 나아간다.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길잡이가 되어 갈 때 성취감도 커진다.
얼마쯤 왔는지 어떤 마음은 갈피가 잡히고 또 어떤 마음은 흘러간다. 허공증을 불어 다니는 게 바람이고 휘돌아가면서도 흐르는 게 물이라면, 바람과 물살을 헤쳐 걷고 꿈을 엮는 사람에겐 감히 생명(生命)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이마에 닿는 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마음이 개운해 온다. 한참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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