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 전의 이야기-
줄리메 컵이 브라질에 넘어간 뒤 새로운 FIFA 월드컵 트로피가 만들어졌다. 두 명의 선수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인 이 트로피는 높이 36cm, 무게 4.97kg으로 18K 금으로 제조되었다. FIFA의 회장도 잉글랜드 사람 스탠리 라우스로부터 브라질 사람인 후안 아벨란제로 바뀌었다.
한편 1972년, 뮌헨(독일의 도시) 올림픽에서는 팔레스타인 테러단의 습격으로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포함한 1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같은 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공항에서는 일본 적군파의 총격에 26명이 사망했고, 방콕의 이스라엘 대사관 습격사건도 일어났다. 아랍 게릴라의 월드컵 습격 소문과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며 경기장에 로켓탄을 발사하겠다는 서독 적군파의 위협 등 불안한 상황 속에서 서독 대회는 시작되었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는 예선을 통과한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참가했고,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를 꺾고 자이르(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가 처음 출전했다. 또, 브라질의 펠레가 대중과 자갈로 감독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았으며,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를 누르고 월드컵에 진출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이 대회는 1차 리그를 통과한 8팀이 2조로 나뉘어 2차 리그를 치른 후 각 조의 1위가 결승전을, 각 조의 2~3위가 3,4위 결정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동독은 호주에 2:0 승, 칠레와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서독은 칠레에 1:0 승, 호주에 3:0 승. 그 상황에서 장벽을 사이에 둔 서독과 동독은 함부르크 경기장에서 맞붙게 되었다. 후반 32분, 슈파르바셔(동독)의 슛이 골로 연결되었다. 1:0으로 동독이 승리했지만 그 덕분에 서독은 2차 리그에서 강적 네덜란드를 피할 수 있었다.
브라질은 펠레가 빠진 탓이었는지 힘든 경기의 연속이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1차전에서 0:0 무승부, 스코틀랜드와의 2차전에서도 0:0 무승부, 자이르와의 3차전에서 3:0으로 승리해 겨우 2차 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다.
호주는 서독, 동독에는 패했지만 남아메리카의 강자인 칠레와 무승부를 기록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팀은 토탈 사커라 불린 네덜란드 팀이다.(요한 크르이프는 '하늘을 나는 네덜란드인'이란 칭호까지 받았다.) 영국 다음으로 축구를 빨리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브라질보다 축구장이 많았으며 수도인 암스테르담에만도 잔디 구장이 100여 개가 있었다.
요한 크르이프를 중심으로 남미 못지않은 기술축구를 선보이며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새로운 축구를 선보여 미래 축구의 전형이란 찬사를 받았는데,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서 2:0 승, 스웨덴과의 2차전에서 0:0 무승부, 불가리아와의 3차전에서 4:1 압승. 2차 리그에서도 동독에 2:0 승, 아르헨티나에 4:0 승, 결승 진출을 가리는 브라질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네스켄스와 크르이프가 두 골을 넣으며 2:0. 무난히 결승전으로 나아갔다.
브라질은 이어 벌어진 3,4위전에서도 폴란드에 1:0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에 자갈로 감독의 집은 습격당했고 당시 유행하던 독감은 '자갈로 인플루엔자'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전 대회 준우승팀인 이탈리아는 이번에도 빗장 수비로 단단히 무장하고 나왔다.
먼저 아이티에 진땀 나는 3:1 역전승, 아르헨티나에 1:1 무승부, (폴란드는 아르헨티나를 3:2로, 아이티를 7:0으로 물리친 상태였다.) 그러나 폴란드에 2:1로 패하면서 이탈리아는 탈락했고, 골득실 차로 아르헨티나가 2차 리그에 진출했다. 기세가 대단했던 폴란드는 3,4위전에서도 36년 만에 본선에 진출해 브라질까지 깨고 월드컵 3위를 쟁취해 기대 이상의 실력을 과시했다.
-결승전-
이렇게 되자 결승에서는 홈팀인 서독이 네덜란드와 맞붙게 되었다. 2차 리그에 들어서면서 서독도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유고슬라비아에 2:0 승, 폭우가 오는 가운데 치러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4:2 승, 강적 폴란드와의 경기에서도 1:0 승. 7월 7일에 드디어 구름 낀 뮌헨 스타디움에서 네덜란드와 서독의 결승전이 열렸다. 이 결승전은 사실상 크르이프와 베켄바워 중 어느 선수가 펠레의 뒤를 이을 영웅이 되느냐를 가리는 자리였다.
(네덜란드의 영웅, 크르이프는 1971, 1973, 1974년 세 차례나 유럽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서독의 황제로 불린 베켄바워도 1972, 1976년 두 차례 같은 영광을 안았다. 또한 크르이프는 아약스 암스테르담을 이끌고 1971~1973년까지 유럽 챔피언스컵을 3연패했다. 하지만 1974년부터는 베켄바워의 바이에른 뮌헨이 3회 연속 유럽 최강에 올랐다. 이리하여 결승전은 네덜란드-서독, 아약스-바이에른, 크르이프-베켄바워의 대결 무대가 된 것이다.)
전반 시작 1분 후, 네덜란드가 페널티 킥을 얻었다. 페널티 킥 성공으로 네덜란드 선취 득점. 서독의 반격으로 이번에는 서독이 페널티 킥을 판정받았다. 역시 서독의 페널티 킥 성공으로 동점. 전반 종료 직전, 서독의 폭격기 뮐러의 골로 2:1. 서독이 역전했다. 결국 네덜란드의 맹추격을 잠재운 서독이 20년 만에 승리의 축배를 들게 된다. 하지만, 서독의 안마당에서 열린 잔치였으니 둘의 승부는 무승부라고 말해야 더 옳지 않을까?
*월드컵 속 이야기
이 74`월드컵에는 한 편의 코미디같은 경기가 예선전에서 벌어졌다. 자이르의 베디치 감독은 유고슬라비아(지금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출신 명감독이었다. 그는 자이르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두 번째 경기에서 자신의 조국인 유고슬라비아와 대결하게 된 것이다.
그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조국과 한판 승부를 내려고 유고팀의 약점을 생각하며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자이르의 체육부 장관이 갑자기 들어왔다.
"베디치 감독, 유고와의 작전을 중단해야 할 것같소! 대통령께서 전보를 보냈단 말이오."
"축구와 대통령의 전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을 해임하라는 전보요. 대통령 각하께서는 당신이 유고 출신이기 때문에 유고와의 경기에서 유고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명장 베디치 감독은 이렇게 해임되고 말았다. 감독이 해임된 자이르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 나섰는데, 우습게도 감독에는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장관이 임명된 것이다.
결국, 장관이 이끄는 자이르는 유고슬라비아에 9:0으로 대패하고 만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을 맡은 장관에게 또다시 대통령의 전보가 왔다. 체육부 장관을 대표팀 감독에서 해임한다는 얘기였다.
장관도 대통령의 전격 해임통보를 받고 쫓겨났는데, 자이르는 이 대회에서 3전 3패에 무려 14점이나 실점하고 보따리를 싸서 돌아간 것이다. 총칼로 정권을 잡고 축구도 명령으로 움직이려다 대통령이 벌인 해프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