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란 변하지 않는 수를 말한다. 수학에서도 물리학에서도 상수는 매우 중요하다. 그 상수를 기초로 모든 계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신앙의 영역에도 상수라는 게 있다. 절대 불변의 상수와 같은 절대적 가치나 원칙이 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세의 설교를 통틀어서 한 장으로만 요약하라면 신명기 30장이 될 것이며 단지 몇 구절로만 결론 내리라면 신명기 30장 15절부터 20절이다.
(신 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신 3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분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복을 받고 만일 마음을 돌이켜서 유혹받아 다른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어기고 배도 하면 결국에 망하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상수와 같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기준이다. 고대 이스라엘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도 변하지 않은 상수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저주받는다. 순종의 길이 생명의 길이고 반역의 길이 사망의 길이다. 여기에서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순종의 삶을 사셨다. 그래서 그분은 참 길이 되신다. 그분이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시지만 그분은 또한 순종의 삶, 진리의 삶, 생명의 삶은 살아 내셨고 그 삶을 보여 주셨다.
(히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의 길은 믿음의 길 곧 순종의 길이며 그 길이 바로 복과 생명의 길이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엄숙하고 간단명료하게 신명기 30장에서 설교하고 있다.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살 것이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 30: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신 30: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 라고 선언한다.
지금 우리 앞에서 생명과 축복의 길이 있고 또 사망과 저주의 길이 놓여 있다. 이것은 복잡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혼돈하거나 헷갈릴 필요도 없다. 뚜렷한 상수와 같이 명확하다. 바울은 이 말씀을 들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목표)이 되시니라”고 하시면서 그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영접하여 복음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라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 영생의 길이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믿는 자의 신앙의 절대 상수다. 이것을 바꿔서 이상한 논리, 복잡하고 헷갈리는 논리를 가지고 와서 마치 불순종의 삶을 살고 예수 외에 다른 길이 있는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우리를 사망과 저주의 길로 인도하는 거짓 교리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을 선택합니다. 주님을 믿고 찬양하며 주의 성령님의 인도를 기꺼이 순종하고 따라가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성령을 좇아 행하고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