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30】
중국과 한국에도 인삼과 관련된 설화는 무수히 많다.
불로장생을 꿈꾼 진시황이 신비의 약초인 인삼을 찾아 제주도와 일본으로 사람들 보냈다는 설화는 잘 알려져 있다.
누르하치의 성장 일화도 인삼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의 학대를 피해 장백산에 들어간 누르하치는 그곳에서 인삼을 채취하여 팔면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는 쉽게 썩는 인삼을 장기간 보관해서 제값을 받아낼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인삼을 쪄서 말리는 방법을 알게 되어 이익을 증대했다고 한다.
인삼과 관련된 설화와 전설은 사람의 형상을 한 인삼이 초능력을 지닌 신비한 존재라는 인식,
나아가 인삼을 먹고 신선이 되었거나 인삼의 발견을 국가의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기는 내용이 주를 이루거나,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 인삼을 얻게 되어 부모님을 잘 봉양하게 되었다거나, 덕과 선을 베푼 이에게 인삼을 발견하는 행운이 주어졌다는 등의 권선징악적인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동양에서 인삼과 관련된 설화들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나 도덕률과 맥을 같이하면서 역사와 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인삼을 둘러싼 담론은 ’신비한 동양의 만병통치약‘과 근대 서양 의학에 포섭되지 않는 ’불가해한‘ 효능 사이의 길항관계를 보여준다.
그 속에는 앞서 살펴보았던 가공과 같은 기술적 차원에서 중국인에게 결코 범접할 수 없었던 서구인의 열등감,해외에 내다 팔기에 급급해 내수화는 요원했던 상황, 정량을 결코 도출해낼 수 없었던 ’표준화 중심적‘인 서양 의학의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한계들이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포장되어 서구의 산물에는 우수성을 부여하면서도 스스로가 그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양의 산물에는 낙후성을 덮어씌우는 자기모순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모순은 인삼만이 아니라 비서구가 원산지인 수많은 생산물이 겪어왔거나 겪고 있는 부당한 경험일 수 있다.
그 부당한 경험은 단지 생산물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생산자들에도 투영된다.
18세기 영국에서는 노예제 폐지운동이 시작되면서 폐지론자들은 설탕, 인디고, 쌀, 면화처럼 노예노동을 통해 생산된 상품들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혹독한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설탕을 먹는 것은 곧 동료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행위에 비유되었다.
결국 영국에서는 설탕 거부 운동이 일었고,그것은 윤리적 소비의 시원을 이루게 된다.
비록 설탕은 아직도 많이 소비되지만 공식적인 노예제는 사라졌고 오늘날 설탕에 생산하는 사람들의 특정한 이미지를 투영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서양은 유달리 인삼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소비집단, 즉 중국인과 연결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워왔다.
비단 소비자만이 아니었다.
인삼을 생산하는 사람들, 심마니에 대해서도 유달리 강력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해왔다.
그런 시선은 중국의 심마니에 그치지 않고 자국인인 아메리카 대륙의 심마니에게도 투사되었으며 현재진행형이다.
설혜심의 저서 '인삼의 세계사'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