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테마여행 - 일루리사트 낯선 여름 속으로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1. 24.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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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테마여행
일루리사트
낯선 여름 속으로
일루리사트의 여름 항구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걸으면 꼭대기에 이르러 북극 호텔(Arctic Hotel)을 만나게 된다. 일루리사트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 경비가 두둑하다면 하루 이틀 묵으며 신비로운 북극 경치를 잔뜩 누릴 수 있겠지만, 식사만큼은 다른 데서 해결하라고 권하고 싶다. 값비싼 호텔 요리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북극 밥집이 훨씬 맛있고 정겹다. 사실 이 호텔의 메인요리는 밥이 아니라 경치다. 여기서는 세상의 그 어떤 호텔에서도 볼 수 없는 빙산의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다로 향한 북극 호텔 언덕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일루리사트 북극호텔(Arctic Hotel)의 이글루 스위트룸
바위산으로 이어지는 호텔의 산책로에서 통통한 강아지 두 마리를 만났다. 갓 태어난 녀석들이라 아직 줄에 묶이지 않을 만큼 작고 귀엽지만 썰매개의 후손답게 발이 아주 두툼하고 건강하다. 이 녀석들도 일루리사트의 여느 강아지들처럼 몇 개월 지나면 혹한의 환경에서 굵은 쇠줄에 묶인 채 썰매개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바위산 옆으로 현대식 이글루가 보인다. 하루 숙박료 삼사십만 원에 이르는 고급 객실답게 빙산이 떠 있는 북극의 바다와 저 멀리 설산까지 바라보며 잠들 수 있다. 이곳이 좀 더 알려진다면 아마 새로운 신혼여행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북극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호텔에서 만난 강아지들 |
호텔 뒤쪽 공항으로 이어진 길, 하얀 공동묘지가 한눈에 보인다. 한 달여 전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눈에 덮여 있었지만 지금은 다 녹았다. 그래도 하얀 비석과 하얀 십자가 때문에 여전히 하얀 공동묘지다. 하얀 무덤마다 색색가지 꽃들과 고인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놓여있다. 그린란드에도 꽃이 피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두 조화들이다. 또 어느 작은 비석 앞에는 공갈젖꼭지가 하나 놓여있다. 이 물건의 주인은 북극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머물다 간 모양이다.
인간의 시간이 끝난 곳, 그 뒤로 빙산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해안을 끼고 산길을 걷는다. 이따금 머리를 땅으로 향하게 하고 다리 사이로 보면 태양 위로 바다와 빙산이 떠있다. 멀리 빙산 사이로 햇살을 헤치며 고깃배들이 구름처럼 떠다닌다. 그 자세로 뒤돌아서면 이번에는 아름다운 돌산이 보인다. 여름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눈 녹은 물들이 모여 연못까지 생겼다. 하늘빛과 닮은 연못가에는 이끼 낀 바위와 이름 모를 북극의 꽃들도 피어있다. 여름에만 잠시 번성하는 ‘한철 연못’, 그 한정된 시간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존재하는 이 작은 피조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계절이 끝나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연못과 이끼와 작은 꽃들도 다시 눈에 덮여 사라질 것이다. 그린란드에서 2011년의 여름 한철만을 잠시 살다 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피차일반의 존재들인 셈이다.
돌산에 잠시 머물며 선물로 가져갈 작은 돌멩이들을 골랐다. 만년 빙하 밑에서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나와 만난 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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