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11일 풍호연가길 (안인 - 학산) 역방향 출발지 안인 해변에서....(09:40)
안인에서 정동진...
바다에 펼쳐진 오선지 위에... 항해(航海)하는 배...
산우에 바닷길 입구에서 스탬프를 찍으면서...(09:54)
실땅님의 Opening
수고하신 7 구간지기 선화님
사무국 실땅님과 팀장님
출발 전... warming-up
풍호연가길 출발...(10:08)
안인진리 安仁津里
안인진리는 마을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안인에 있는 진(津)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여기서 진이란 바다와 접한 항구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안인진은 바닷가에 입지 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안인진리는 군선강 하구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엔 봉화를 올리던 해령산이 있다.
해령산 중턱에 해령사와 해랑당이 있고 동쪽 밑 바닷가에 강릉의 삼문 가운데 하나인 명선문이 있다.
안인진리에 안인포진이 있었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온다.
“동남으로 20리에 있고 수군만호를 두었는데 1490년(성종21)에 양양 대포(속초시 대포동)로 옮겼다.”
이로 미루어 안인진리는 조선 전기 때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곳이다.
안인진리는 조선 성종 때까지 안인포 수군만호영이 있어서 “날기”, “날개”, “나랫말”이라 하다가
1916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갯목(浦洞), 안인소동, 모전리 일부를 합하여 안인진리라 칭하였다.
1955년 9월 1일에는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에는 강릉시에 통합되었다.
[자연환경]
안인진리로 군선강이 흘러들어와 바다로 유입하는 하구를 이룬다.
안인진부터 북쪽의 해안은 사빈이어서 해수욕장이 발달하였고,
이곳부터 남쪽으로 동해안을 따라 암석 해안이 나타나기 때문에 지형적으로 해안 지형의 분계점이 되는 곳이다.
실제로 북한의 무장 공비가 남한을 침투할 때도 암석 해안인 이곳에 잠수정으로 상륙하다가 좌초되었으며,
6·25 전쟁 때 북한이 남침하기 직전 제일 먼저 침투해 온 곳도 안인 남쪽의 암석 해안 지역이다.
안인진항 安仁津港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있는 항구.
‘안인(安仁)’은 조선시대 관청의 일을 하던 강릉시내 칠사당(七事堂)을 중심으로 해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안(安)’은 편안함을 ‘인(仁)’은 방위상 동쪽을 의미하여 ‘안인(安仁)’은 ‘강릉 동쪽의 편안한 곳’이란 뜻이 된다.
[현황]
85가구 정도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약 42척의 어선이 있다.
주 어종으로는 가자미와 넙치 등이 있으며 그 외에 전복과 해조류도 많다.
특히 넙치와 전복의 경우 양식업도 활발하다. 주요 어장인 연안어장의 해상거리는 1~5㎞ 정도이다.
주요 어로 시기는 10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 기간이며 주로 가자미와 넙치가 많이 잡히고 있다.
군선강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으로 숭어가 많이 올라와 지역 낚시애호가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픙어제를 지낸다.
인근에 위치해 있는 항구로는 강릉항이 육상으로 6㎞, 해상으로 10㎞ 정도 떨어져 있다.
항구 옆으로는 안인진해수욕장이 있으며 항구 북쪽 봉화산에는 해령당이라는 성황당이 있다.
또한 인근에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등명낙가사,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였던 정동역,
통일공원(잠수함침투지)이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어 해안일주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공사 완공 후 현장의 인력 유출이 본격화되며 지역 경기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강동면 안인리 일원 약 62만㎡ 규모에 들어선 강릉 안인화력발전에는
1,040mw급 석탄화력발전소 2기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현재 1호기는 시험운전을 거쳐 상업운전에 돌입한 상태이며,
2호기는 내년 3월까지 시운전을 거쳐 본격 운전에 들어간 후 준공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문제는 발전소 건설을 위해 지역에 머물던 건설인력이 대거 지역을 이탈하며
강릉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근로자 4,500여 명이 발전소 건설 현장에 투입됐으나
1호기 건설 이후 현재 시공사인 삼성물산 직원 230여 명, 시운전 인력 300여 명 등 약 2,500여 명만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근로자 약 2,000명이 감소한 상태다.
내년 상반기 최종 준공 이후에는 발전소 운전 인력 500~600여 명만 남기고 건설 인력은 모두 지역을 떠나게 된다.
근로자들이 이탈하며 예전에는 구하기 어려웠던 지역 아파트 매물, 전·월세, 원룸 매물 등도 늘어나고 있다.
발전소 관계자는 “2년 전만 해도 지역에 아파트를 구하기 어려워 대학가 원룸 등에 임시로 방을 얻는 근로자들이 많았으나,
최근 근로자들이 제3의 건설 현장으로 잇따라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활용한 기업 유치 등 신성장 동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최근 지역 생산 전력을 활용한 데이터센터 건립 유치 계획을 수립하는 등 경기 부양 대책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송전탑 못 세워… 동해안 발전소 불 꺼졌다
전력거래소가 강릉·삼척 지역 화력발전소 3곳에 발전 정지를 통보했다.
생산하는 전력량을 모두 소화할 수 없으니 전력을 줄이라는 결정이다.
지역주민과의 갈등 문제로 송전선로 조성이 난항을 겪으면서 그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22일 본지 취재 결과 전력거래소가 발전 정지를 통보한 곳은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삼척 블루파워화력발전소·한국남부발전 삼척빛드림본부 등 동해안 발전소 3곳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도 강릉 안인화력발전소는 지난 2018년부터 사업비 5조 6000억 원을 들여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711번지 일대에 2080㎿(1040㎿급 2기)의 안인화력 1·2호기를 건설해 2022년 1호기,
지난해 5월 2호기 등을 가동,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상업운전부터 송전할 곳이 부족해 70%만 가동하다 급기야
지난 3월부터는 1·2호기 전력 생산 정지라는 사태를 맞았다.
2기·2000㎿ 규모의 한국남부발전 삼척빛드림본부도 가동이 중단됐다.
전력거래소가 이 같은 결정을 택한 이유는 송전망 구축이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500KV HVDC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는 당초 2019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아직까지도 산지전용허가 등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동해안의 발전설비는 전체 19GW인데 비해 현재 송전망의 운영 용량은 11.6GW에 불과하다.
문제는 송전선로 구축 지연이 지역경제에 미칠 여파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는 4조 4700억 원의 PF대출을 받아 오는 2026년 1월 당장 2857억 원의 원금을 상환해야 하나
발전 정지로 원금상환이 어렵다는 입장이며 해마다 3000억 원대의 손실이 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해안 발전소의 경영 악화는 고용불안과 협력업체 연쇄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주민들에게 지원되는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이 축소 또는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올해 강릉의 지역자원시설세는 77억 원에서 17억 원대로 뚝 떨어질 예정이다.
한전은 2026년 3월까지는 송전선로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선로 길이는 동부(울진·삼척·봉화·영월·정선·평창) 140㎞, 서부(횡성·홍천·양평·가평) 90㎞ 등 총 230㎞다.
건설하는 철탑 수는 총 440기다. 현재 11개 공구에 대한 사업 승인 등은 완료한 상태다.
강릉시 관계자는 “에코파워의 발전 정지로 발전소 주변지역 사업이 축소되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어 정부의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화력발전소 옆 군선강 둑방길...
감자아빠,인디언캡, 하비님
군선교를 지나 차 한잔씩 하면서 휴식...(10:36)
군선강 群仙江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으로 흐르는 강.
군선강은 강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신라시대에 서라벌에서 온
화랑들(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무리를 지어 뱃놀이를 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군선강은 만덕봉 장구목이에서 발원하여 단경골을 지나
모전리에서 장적골로부터 흘러온 물과 만나 안인리 관마을로 흐른다.
이 물은 관마을 앞에서 임곡리에서 흘러온 임곡천과 만나
안인들을 이루며 해령산 옆 명선문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군선강 상류에는 동해고속도로, 하류 쪽에는 7번 국도, 영동선이 지나간다.
[현황]
군선강 하구에는 해령산이 있고, 그 앞 바닷가에 강릉의 3문 가운데 하나인 명선문이 있다.
명선문 바위에는 조선 정조 때 강릉부사를 한 이집두가 쓴 ‘명선문(溟仙門)’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해령산에는 봉수대가 있었는데,
남쪽으로는 오근산 봉수대(강동면 심곡리 소재), 북쪽으로는 월대산 봉수대(두산동 소재)와 이어졌다.
예전에 군선강 하구에는 염전이 있었다.
언별리 단경골로 들어가는 도로와 무장 공비 도주로 유명해진 칠성산 능선이 보인다.
강동초등학교 江東初等學校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교훈 포함)]
교육 목표는 ‘기본 생활이 바로 된 예절 바른 어린이, 기초와 기본이 탄탄한 창의적인 어린이,
소질과 재능을 키우는 실력 있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건강한 어린이’이다.
교훈은 ‘슬기롭고, 바르고, 튼튼한 강동 어린이’이다.
강동초등학교는 1932년 2월 10일에 강동 시장 가교사에서 4년제 2 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37년 4월 1일에 6년제 6 학급으로 편성되었다.
1996년 3월 1일에 강동 국민학교에서 강동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6년 2월 5일 제82회 졸업식을 거행하였고, 총 7,80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모전리 장안성이 있던 근처를 지나면서...
장안성 長安城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토성.
장안성은 강동초등학교의 북쪽 구릉(70m)에 발달된 소곡지를 둘러쌓은 것으로
전면에는 군선강 하류의 충적지가 발달되어 있다.
명주성(溟州城)과 같이 석축부 위에 얇은 토층이 덮여 있다.
성벽의 높이는 3m, 상·하부의 폭은 각각 2m, 5m이며 성주는 약 600m이다.
남벽 중앙부의 절단된 부분에는 문의 초석으로 보이는 반석(80 ×80㎝, 두께 30㎝)이
잔존하는 점으로 보아 성문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벽은 곡지를 횡단하는 부분이었으나 경지로 개간되어
양단부만 관찰될 뿐이며, 부근에 우물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서·북벽에서 각각 10m 아래쪽에는 삭토하여 구축한 듯한 별
개의 토성(土城) 흔적이 나타나며, 성벽의 주위에는 토기 및 와편이 산재한다.
[의의와 평가]
장안성은 ‘예국(濊國) 때의 토성’이라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한편 김주원(金周元)이 쌓은 성으로 추정되는 명주성을 장안성이라고도 한다.
모전리 뙡마을 쉼터에서...(11:15)
모전리를 휘어잡고 있는 마을 이장님... 상당히 근엄하신 표정이다.
모전리 茅田里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전리(茅田里)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마을에 띠[풀 이름]가 많은 곳이라 하여 뙡지 마을 또는 모전이라 하였다.
1916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일부 지역을 갈라서 모전이라 하고 그 나머지를 언별리, 안인리라 하였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과 성덕면, 경포면이 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할 때 분리되어 명주군에 속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속하게 되었다.
이 일대는 일찍이 늪지대였던 관계로 띠가 많이 자라서 떼밭이라 하였다.
또한 이곳에 선 왕골의 일종인 풀이 많이 났는데 이 풀로 맨 자리를 제사 때 쓰면 후손들이 많이 난다고도 하였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모전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뙡지, 돌펭이, 둔지말, 산두골, 가마떼기 등이 있다.
뙡지는 모전리 전체 마을 이름이며, 마을에 사람들이 살기 전에는 띠가 무성한 띠밭이었다고 한다.
돌펭이는 언별리(彦別里)와 경계 지역으로 이곳 일대가 돌밭이었다고 한다.
둔지말은 뙡지 안쪽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동네이다.
산두골은 임곡천(林谷川) 하류 쪽에 있는 산부레기로 괘방산에서 모전 쪽으로 뻗어 있는 낙맥과
망덕봉에서 뻗어 내린 낙맥 사이에 있는 넓은 골로, 괘방산에서 내려온 산줄기 뒤에 있는 골이란 뜻이다.
가마떼기는 산두골에서 임곡리 쪽으로 들어가면서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다.
[자연환경]
마을 앞에 있는 산줄기 마지막 낙맥에 태봉이란 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 군선강이 흐르는데 망덕봉에서 발원한 물이
십 년에 한 번씩은 큰물이 흘러[十年有一大水] 범람한다고도 전해진다.
[현황]
모전리는 모전 1리와 모전 2리의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강동 초등학교가 있으며 유적지로는 장안성터가 남아있다.
또한 동해안 고속 국도의 시점부인 모전 교차로가 있으며,
주요 산업체로는 1993년 오징어 내장 수출로 5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한 바 있는 (주)현대 특수 사료가 있다.
이 회사는 2017년 3월 15일에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강릉지청장 표창을 받았다.
기업들로는 강원레미콘, 금오하이텍 강원지사, 아모레퍼시픽강릉데포, 대영산업, 태원광업 등이 있다.
정감이 마을 입구에서...(11:35)
정감이 마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
정감이 마을은 강릉시 강동면의 생활권이 같고, 발전 잠재력이 있는 언벌 1리, 언별 2리,
모전 1리, 상시동 2리 등 4개 마을이 모여서 아름다운 농촌 마을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공동체이다.
2006년 농촌 마을 종합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정이 많고 감이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4개 마을의 공동 명칭이다.
정감이 마을은 2006년 농촌 마을 종합 개발 사업에 선정되면서
국가 및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4개 마을이 모여 각 마을 특성을 바탕으로 마을 개발 사업을 추진해 왔다.
마을 개발 사업은 농촌 관광 시설, 친환경 농업 단지, 경관 보전 지역 등으로 나누어 추진하였다.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에 천혜의 자연환경인 단경골 계곡이 있다.
만덕봉(萬德峰) 자락에 위치한 단경골은 계곡이 깊고 상류로 올라갈수록 시원한 폭포와 소(沼)가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 후.... 오후반 걷기 준비를 한다...(12:52)
령관이네
청명님 & 일상의 탈출님(?)
언별리 송담서원 근처에서...
송담서원 松潭書院
율곡 이이를 배향하기 위해 강릉 사족들이 세운 서원.
송담서원은 1624년(인조 2)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왕현 왼편 아래쪽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630년(인조 8)에 완공되었다.
이때 강릉 유생 최언침(崔彦琛) 등이 청액(請額)을 상소하였으나 인정받지 못하였다.
1659년(효종 10)에 강릉 유생 김속(金涑) 등이 재차 청액을 상소하여 이해 3월에 사액되었다.
1652년(효종 3)에 김익희(金益熙)가 본도 감사로 와서 부사 이만영(李晩榮)과
이 건을 협의하여 새로 지은 곳이 지금의 송담서원 자리이다.
송담서원 건립은 율곡 이이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강릉 지방 재지사족들이 건립하였다.
송담서원 건립 논의가 시작되는 시기는 1592년(선조 24)이다.
이때 김경시(金景時)와 몇몇 동지들에 의해 서원건립이 논의되었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일이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 후 1617년(광해군 9)에 다시 논의되었으나 국가적으로 일이 많고
또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624년(인조 2) 전공조참의(前工曹參議) 김몽호(金夢虎)와 이상필(李尙馝) 등 30여 명의 향론(鄕論)에 의해
다시 추진되어 6년 간의 공정 끝에 1630년(인조 8)에 완공되었으며,
이 해 2월 17일 강릉부사 이명준(李明俊)에 의해 봉안제(奉安祭)가 거행되었다.
이때는 석천서원(石川書院)이라 하였다.
[변천]
1652년(효종 3) 강동면 언별리로 이건하고 송담서원이라 하였다.
1804년(순조 4) 화재로 건물이 거의 전소되고 묘우만 남게 되었다.
이후 본향 유생 및 각지 유림의 도움으로 강당, 장경각(藏經閣), 광제루(光霽樓), 요사(寮舍) 등을 중건하였다.
1871년(고종 8)에 사액서원 철폐령에 따라 본 서원도 훼철되고 위판은 본원 뒷산에 매안(埋安)하고 액판(額板)은 태워버렸다.
그 후 신의계원(信義契員)의 도움으로 매년 위판을 매안한 곳에서 작례(酌禮)를 올렸다.
1905년 사림의 모금으로 본 서원 자리에 1동의 묘우를 짓고 지위(紙位)로 다례를 행하다가
1935년에 향중의 유림들이 참사시 서원 훼손이 심함을 한탄하고 중수를 결의하였다.
이에 재임(齋任)인 정연희(鄭然熹)와 변해철(邊海喆) 등이 먼저 축대를 쌓고 식목을 하였으며,
담장을 개축하고 문을 세우고 기울어진 묘우를 바로 잡고
비각의 자획이 결손된 것을 바로잡음으로써 서원의 주위가 새로워졌다.
이후 1977년 본향 출신 박종성(朴鍾星) 강원도지사의 후원과 지역 유림의 성금으로 재차 중수하였다.
[형태]
송담서원의 묘우 6칸, 월랑 7칸, 동재(東齋)·서재(西齋) 각 3칸, 강당 10칸, 광제루(光霽樓) 3칸, 서책고(書冊庫) 3칸이었고,
원생 30여 명이었다. 현재의 송담서원은 송담사(松潭祠) 정면 3칸, 측면 1칸이 정면에 있고,
좌우로는 동재와 서재, 입구에는 삼문이 있다. 삼문 밖에는 좌측에는 송담서원 묘정비와 비각이 있다.
[금석문]
1736년(영조 12)에 영의정 정호가 짓고 영의정 민진원이 쓴 묘정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송담서원은 강릉 지방에 세워진 사액서원으로서 임진왜란 이후
강릉 지방 재지사족의 향촌운영과 율곡 이이 문묘 종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임란 이후 강릉 지방 재지사족들의 결속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드 넓은 금광리 들판
금광리 金光里
금광리는 강릉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덕현리, 서쪽으로는 학산리, 남쪽으로는 어단리와 언별리, 북쪽으로는 운산동과 접해 있다.
금광리의 명칭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금덩이를 건져 올린 용금정이 있어서 용금정의 ‘금’ 자를 따서
‘금빛이 나는 고을’이란 뜻에서 ‘금광(金光)’, ‘금굉이’, ‘금겡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둘째, 마을 남쪽에 강릉의 화채봉인 칠성산이 있는데 칠성산에 있는 바위가 ‘일곱 개의 별이 나란히 어울려 있는 형상’,
즉 ‘칠성의 형상’을 하고 있다. 별이 일곱 개면 능히 쇳덩이도 녹인다 하고,
산 아래 넓게 펼쳐진 들판이 ‘불이 금을 녹이는 형상’이어서 사람들은 마을을 ‘금이 빛을 동반하다’고 하여 ‘금광리’,
그 버덩[나무가 없이 풀만 우거진 거친 들]을 ‘금광평’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또 강릉의 여러 선비들이 금자 광록의 벼슬을 모방하여 금광이라 하였다는 설,
마을의 형상이 옥녀 금반형으로 생겨 금광이라고 하였다는 설 등 많은 유래들이 있다.
1911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구정면에 속하였으며,
1917년 면제 개혁 때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개편되면서 구정면에 속하였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명주군 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 가운데로는 칠성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흐르고 있으며, 박월천과 만나 섬석천으로 흐른다.
내 안쪽으로 펼쳐진 금광천과 금광평의 넓은 들은 구정 팔경 가운데 하나인
금광 목적(金光牧笛)과 모산 팔경의 하나인 금평 서연(金坪西煙)에 해당된다.
칠성산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넓은 버덩인 금광리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버덩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금광리는 금광 1리와 금광 2리로 구성되어 있다.
금광리 지역은 평야 지대가 발달해 있어 많은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으며 주로 논농사를 많이 한다.
주요 지명으로는 절터말, 마차골, 비석 거리, 금광평 등이 있다.
금광리에는 금광초등학교, 금강레미콘, 경기조경수목원, 사랑방이야기,
금광실버캐슬, 금광1리 마을회관 등의 기관과 시설들이 있다.
금광리에서 외부로 나가는 길은 내곡동의 가톨릭 관동 대학교와
노암동의 강원 영동 병무청 방향으로 각각 연결된 도로가 있다.
현재 금광리 일대는 원주강릉복선전철 남강릉 신호장과 철도 차량기지 건설이 한창이다.
풍호연가길에 엄청 험한 로프 구간도 있다...
동막 저수지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13:51)
우리는 친구...(미수기, 블루. 키키)
어디론가 사라졌다 꼴찌로 나타 난 구름님과 령관 아빠...
동막저수지 東幕貯水池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 2리에 있는 저수지.
동막저수지는 어단 2리 동막골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며
동막저수지에 모인 물은 어단리와 금광리의 넓은 들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막저수지는 관개 개선 및 지목의 변환을 목적으로 쌓았다.
1952년 11월 5일에 착공하여 1961년 11월 30일에 준공하였다.
동막저수지는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제방을 든든하게 쌓았다.
둑 쌓는 형식은 필댐(죤형)이며, 제방 길이는 420m,
제방 높이는 24.2m, 저수지의 체적은 625.856㎥이다.
동막저수지의 관개 면적은 160.4ha, 저수지의 총저수량은 902.3천㎥,
유역 면적은 1,839ha, 홍수 면적 15.6ha, 만수 면적 12.8ha이다.
오후 햇살을 맞으며 어단리로 가는 길...
어단리 於丹里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 멸망하자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최문한, 김충한, 이장밀, 김경 등이
이곳에 와 고려 우왕의 위패를 모신 어단을 쌓아 놓고 고려 사직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불사이군의 선비 정신이 나타난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과,
‘고기를 잡는 큰 못의 모습’처럼 되어 있는 형상이라서 ‘어담’이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1916년에 마을에 있는 영남촌[뒷말], 새말, 점말, 동막과 금광리 일부를 합하여 어단리라 했다.
1917년 면제 개혁 때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개편되면서 구정면에 속하였고,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명주군 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어단리 마을 뒤에 강릉의 화채봉에 해당되는 칠성산,
칼처럼 뾰족하게 생긴 갈마봉, 향로처럼 생긴 향로봉이 있다.
[현황]
어단리는 어단 1리와 어단 2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에는 강릉 자수함 침투 사건 때 무장 공비들의 도주 경로로
유명해진 칠성산이 있으며 칠성산 아래 자락에 법왕사가 있다.
마을 뒤에 칠성산을 비롯 갈마봉·향로봉이 있으며, 산 밑에 자리하여 물이 풍부하다.
또 점말에는 1887년에 세운 어단리 천주교 공소가 있고, 동막골과 선래골에는 저수지가 있다.
어단리 천주 교회는 영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천주 교회로서
1801년(순조 1) 신유사옥 때 신도들이 탄압을 피해 이곳에 와 세웠다.
주요 지명으로는 설래, 안심골, 상촌, 후평동, 옹기점, 점말, 선래골, 동막골, 진촌 등이 있다.
칠성지를 끼고 강릉시 예비군훈련장이 위치해 있다. 2002년에 테라로사 커피공장이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공장만을 운영했으나, 커피를 맛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져
커피를 내리기 위한 바(Bar)를 만들어 카페의 기능을 함께하게 되었다.
현재는 커피 박물관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상부락마을서낭당 邱井面於丹里-堂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성황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는 설래, 상부락, 어단1리 5반, 어단2리 4반에 각 한 곳씩 4개의 서낭당이 있다.
서낭제는 행정 구역과는 상관없이 과거 자연 마을 단위로 서낭제를 올린다.
[위치]
설래마을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1리 1반 976번지,
상부락마을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1리 2반 814번지,
어단1리 5반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1리 5반 246번지,
어단2리 4반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2리 4반 191번지에 각각 위치해 있다.
[형태]
설래마을 서낭당의 당집은 없으며 수령이 오랜 소나무 아래에서 제를 올린다.
상부락마을 서낭당은 원래 서낭목 3그루만 있었는데 근자에 벽돌 블록으로 쌓아 함석지붕을 얹었다.
어단1리 5반 서낭당의 당집은 목조건물에 함석지붕을 얹었다.
어단2리 4반 서낭당의 당집은 서낭목 숲 사이에 돌담을 쌓아 제단을 마련하였다.
[현황]
설래마을의 제의는 고청제라고 하며 산신지신(山神之神)·토지지신(土地之神)·여역지신(癘疫之神)을 모신다.
제당은 어단1리 1반 박운학 씨 댁 야산 기슭에 위치한다.
제의는 음력 11월에 지내며 어단1리 1반 주민만 참여한다.
제물은 유사(有司)가 준비하며, 각위(各位)마다 따로 진설(陳設)한다.
유교식으로 지내며 제의가 끝나면 소지(燒紙)한다.
상부락마을의 제의도 고청제라고 하며 산신지신·토지지신·여역지신을 모신다.
제당은 어단1리 마을회관을 지나 학산리 쪽으로 좌측 도로변에 위치한다.
제의는 음력 11월에 지내며 어단1리 2·3반 주민만 참여한다.
제물은 유사가 준비하며, 각위마다 따로 진설한다. 유교식으로 지내며 제의가 끝나면 소지한다.
어단1리 5반의 제의도 고청제라고 하며 산신지신·토지지신·여역지신을 모신다.
제당은 어단1리 마을회관에서 금광리 쪽으로 가다가 삼덕사 입구 못 미쳐 우측에 있다.
제의는 음력 11월에 지내며 어단1리 4·5반 주민만 참여한다.
제물은 유사가 준비하며, 각위마다 따로 진설한다. 유교식으로 지내며 제의가 끝나면 소지한다.
어단2리 4반의 제의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하며 성황지신(城隍之神)을 모신다.
제당은 어단2리 마을회관 앞 황영준 씨 댁 앞쪽에 위치한다.
제의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내며 어단2리 5개 반이 참여한다.
제물은 유사가 준비하며 유교식으로 지내고, 제의가 끝나면 소지한다.
휴식...(14:22)
친구분들...
새치미님, 에셈님
아슬하게 달려 있는 모과...
테라로사 커피 공장
이탈리아 어인 테라(terra)는 토지 · 흙을 뜻하고, 로사(rossa)는 빨간색을 뜻하므로
‘테라로사’는 붉은색 토양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카르스트 지형을 덮고 있는 석회암 풍화토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위치한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이다.
한국 커피 전문가 1세대인 김용덕씨가 운영하는 카페 겸 커피공장으로
바리스타가 추천하는 3가지 커피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커피 테이스팅 코스’ 가 유명하다.
또한 직접 커피를 볶아 생산한 쿠바산 크리스털 마운틴, 자마이카 블루마운틴,
예멘의 모카 사니니, 하와이의 코나 등 좀처럼 만나기 어렵고 값비싼 커피들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당일 만든 빵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강릉굴산사지당간지주江凌掘山寺址幢竿支柱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위치한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깃대를 고정하기 위하여 사찰의 입구나 뜰에 세우는 두 개의 돌기둥이다.
깃대에는 사찰의 행사 및 의식이 있을 때나 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기릴 때 깃발을 매단다.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거대한 석재로 만들어졌다.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행정구역상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 2리에 소재하고 있다.
[형태]
두 지주는 높이 5.4m이며, 서로 40㎝ 사이를 두고 마주 서 있다.
거대한 석재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몸체에는 돌을 다듬으면서 생긴 정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어 오히려 생동감과 우뚝 선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지주의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는 안팎 양쪽에서 차츰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은 뾰족한 형태이다.
지주의 위와 아래에는 각각 둥근 구멍을 관통시켜 깃대를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현황]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굴산사지에서 남쪽으로 좀 떨어진 언덕의 경작지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현재 깃대는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 있으며, 남쪽 지주의 뾰족한 정상 부분이 파손되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8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강릉 학산 오독떼기 전수회관 앞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오르면서 오늘 발 걸음을 멈춘다...(15:12)
바우길을 함께 걸어가는 우리는 ... 우리는 하나 !
우리는 빛이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수 있는 우리는 아주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기나긴 하세월을 기다리어 우리는 만났다 천둥치는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오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우리는 바람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잡은 손끝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춥지 않은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연인 수없이 많은 날들을 우리는 함께 지냈다 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함께 지녔다 오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첫댓글 걷기 좋은 날씨였네요~^^
걷자님 덕분에
이렇게 아주 멀리서도 만나는 우리 바우님들!
더 반갑습니다 ^^
선화님 혼자서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
걷자님 감사합니다!
다음 8구간에서 뵐께요~^^
건강하고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시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 오시길 ....
차가운 공기가 걷는 내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풍호길 이였습니다.
추운날씨에 사진찰영 하느라고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멋진사진 즐감하고 갑니다 ~^^
이번엔 여기 저기에서 찍느라 앞에서 못 걸어
먼 발치에서 하비님 걷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함께 여서 즐거운 발 걸음 이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주에 만나요.
다음 구간이 명주님 구간인데....
참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진 감사합니다~~
다행히 걷기 시작부터는 바람도 없고, 기온이 올라 상쾌하게 잘 걸었습니다.
쉬시면 추울까 좀 빠르게 걷기 하였더니 예상보다 빨리 끝났네요.
담에는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걷겠습니다.
바우님분들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걷기에 적당한 기온...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책임감으로 홀로 리딩 하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말씀대로 담에는 뒤를 자주 돌아 봐 주시는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ㅎ
좋은 걸음 걸음마다 함께하는 걷자님의 사진에 즐거움도 함께하여 더더욱 행복합니다 항상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공사가 다 망한 이장님께서
어려운 발 걸음 함께 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참석해 주셔 바우길이 더 힘을 받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멋진 사진 늘 감사드려요~~
수고로운 걷자님의 마무리 덕분에 바우길이 더 좋은 길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열심히 참석하시고
새치미님과 함께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게다 가 잘 걷기 까지...항상 화이팅 입니다.
파도가 아주 역동적이였던 날~
바우님들께서는
멋진 파도를 보며
와~멋있다~감동 받으시며
걸음을 시작하셨겠지요~
햇살 드는 군선강가에서
옹기종기 차를 드시는 모습이
어쩜 저리 예쁘신지~^^
수고 많으셨고
후기에도 감사드려요~걷자님^^
많은 인원이 참석 치는 않았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걸으면서 하나 둘 재킷을 벗는 날씨도 좋았고....
단 하나 힘든 건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게 조금 힘들었다는 거...
하여, 없는 사람을 탓 하며 자꾸만 뒤 돌아 보게 되었다는 거...^^
산허리를 슬그머니 가로질러 재빠르게 찰칵찰칵, 셔터 누르는 소리가 낙엽 밟히는 소리와 함께 멋진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는데,,ㅎ.
걷자님이 올리신 사진과 글을 보면서 7구간 여정에 놓여있는 강릉의 문화를 새김질합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봄모자와 올찜)를 잡지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게 해 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꾸벅
아..이제 부부이신 울찜님과 봄모자님 닉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부님들이 함께 걸으시는 모습은 언제나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는 뵙게 되면 좀 더 많은 흔적을 남겨 드리겠습니다.
함께 걸어서 즐거웠습니다.
걷자님의 이 후기를 기다렸다는 사실~
역시나 바우길 걸음걸음에 의미가 듬뿍 실렸네요.
걸으면서 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에 백두대간을 걷고 나서도 사진 올라오기를 기다릴 분들 기대에 부응하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5시까지 사진과 글 올리는 작업을 해야 했다고...
아, 이번 바우길에는 사진 찍고 글 올리는 테라님도 허브님도 없으니,
걷자님 책임감이 더 중해져서 혼자 이리저리 산에도 오르고 하면서 분주히 사진 찍고
글 올리느라 새벽에나 잠드시겠네...생각했답니다.
Rolling Stones의 "As tears go by"를 좋아했는데요,
우리 부부를 표지 모델로까지 만들어 주셔서 특히나 고맙다는 인사 드려요~~
바우길 후기는
알게 모르게 슬그머니 역할이 고정 되었다고나 할까요 ㅎ
걷자님의 후기는
강릉의 역사나 우리가 걷는 길에 대한 역사와 숨어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주셔서 아주 유익하지요~!!
그러기에 메모준비!!공부하는 자세로 읽어야 하구요~^^
보너스로 음악선물이 있답니다 ^^
테라님의 후기는
멋진 풍경과 함께
바우님들의 표정까지도 따뜻하게 담아주셔서,,
꼼꼼히 보시면 바우님들의 닉네임을
외우 실 수 있답니다 ^^
저는 인물 보다는 그 길의 코스에 중점을 두어 그때 그때의 풍경을
전해 드릴려고 노력합니다 ^^
바우길의 드림팀
맞죠 ㅎ
가끔 우리가 사정이 있을때면
구름님과 보리사랑님의 정성어린 후기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바우길은 사랑입니다
^^
닉이 이쁘신 봄모자님...울찜님도 특이 하시고...
언제 그리 걸으시면서 제가 뒤에서 말하는 걸 들으셨는지..
게다 가 Rolling Stones의 "As tears go by"를 좋아 하신다니..
저도 무척 좋아 하는 노래인데...더더욱 반갑기만 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 드립니다...^^
풍호연가길은
강릉의 보물 당간지주를 만나로 가는길입니다.
지인들에게 강릉을 소개할 때는
항상 굴산사 당간지주를 절대 빼놓지 않습니다.
그럴때마다 괜히 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합니다.^^
포근한 날씨에 함께 하신 바우님들 수고 많으셨구요~
오늘도 걷자님의 정보로 지역문화와 역사공부 잘 하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령관이는 바쁨에 참석 못 해 조금 섭섭하지만...
그래도 부부가 참석해 걷는 모습이 보기 좋고 아름답습니다.
건강을 위해 바우길 열심히 걸으시길....
안녕하세요. 걷자님, 풍호연가길 걷기 사진 몇 장 강릉바우길 공식 홈페이지 후기 게시판으로 옮길 수 있도록 허락 부탁 드립니다.
편하게 가져다 사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