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심에 방향 맞춥시다!” [서론] 독일에 있는 한 오래된 수도원에 가면 서로 엉켜 있는 두 개의 사슴뿔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수도원장에게 왜 이 두 개의 사슴뿔을 걸어놓았는지, 무슨 의미인지 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원장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뿔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입니다. 두 개의 뿔이 엉켜서 두 마리의 사슴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가 상대방의 뿔 속에 자신의 뿔을 쑤셔 넣어서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고, 서로 버둥대다가 끝내 둘 다 굶어 죽게 된 모습입니다.” 이처럼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다 보면 결국 서로가 죽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었고, 이제 5월 9일에 조기대선을 치러야 합니다. 이제는 이 나라가 더는 서로 소모적인 논쟁이나 불필요한 분열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향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소모적이고 서론적인 싸움이 아니라, 정말 싸워야 할 본론적 싸움인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흑암 세력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마귀의 일을 다 멸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영생이라는 궁극적인 승리가 보장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흑암 세력인 마귀, 사단과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여전히 영적 실체로 남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엡6:12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흑암 세력을 꺾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대 귀신이 들려 고통받는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온전히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신적 권능을 보여줌과 동시에 예수님의 최고 관심이 생명 살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영적 실체를 올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향해 있는 생명 살리는 데 믿음의 열정으로 도전하여 열매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영적 실체를 보는 눈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눅8:26-27) 예수님께서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초자연적인 이적을 행하신 후에 도착하신 곳이 거라사라는 이방인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시자마자 만난 사람은 귀신 들린 자였습니다. 이 사람의 상태는 아주 심각했습니다. 귀신 들린 이후로 옷을 입지 않으며 집에 살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 살았습니다. 또 어찌나 힘이 센지 한번 발작하면 쇠사슬로 묶어 놓아도 어느 틈엔가 쇠사슬을 끊고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동네 사람들도 이미 포기하고 방치해둔 상태였습니다.
지난 시간 광풍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문제와 사건을 보는 눈’을 열어 주신 후에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또 다른 눈인 ‘현장의 영적 실체를 보는 눈’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도 귀신과 같은 영적 실체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는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면, 첫째는 귀신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21세기 첨단 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귀신의 존재를 운운하는 것은 비이성적 태도이며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태도라고 주장합니다. 영화나 책,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은 정보가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특정한 계기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세상 종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경우입니다. 우리나라의 불교나 무속은 귀신에 대해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상적으로 죽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죽을 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넋이 이 땅을 떠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특히 억울하게 죽은 경우 하늘로 오르기를 거부하고 이 땅에서 그 넋이 한을 품고 떠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넋을 위로하기 위해 천도재를 지내야 하고 굿을 해서 그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독교 이단 가운데도 귀신에 대해 비성경적 이론을 가지고 속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귀신론의 골자는 제명이 차기 전에 죽은 불신자의 사후 영이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언한 수명인 120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귀신으로 구천을 떠돌아다니다가 후에 연수를 다 채우면 비로소 무저갱으로 들어간다는 논리입니다. 자세히 보면 성경의 일부 내용과 타 종교의 귀신론이 결합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비성경적 논리에 속으면 안 됩니다.
제가 성경에 나타난 귀신의 존재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귀신은 한 마디로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흑암 세력의 조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우두머리는 사단이라고 하는 마귀입니다. 그 졸개들이 악령, 곧 귀신들입니다. 사단은 단수이고 귀신들은 복수입니다. 본문에 나온 귀신들은 한 마리가 아니라 군대 귀신이었습니다. ‘군대’라는 말은 헬라어로 ‘레기온’이라고 하는데 ‘약 6천 명의 로마 군단’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많은 귀신이 들려있던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귀신 들린 자였습니다. 원래 귀신들은 천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심판과 저주를 받아 이 땅으로 쫓겨났고, 이 땅에서 한시적으로 활동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계12:7-12에 보면, 하늘에서 큰 전쟁이 있었는데 천사장 미카엘과 그 휘하에 있는 천사들에게 큰 용과 그 사자들이 졌고, 결국 내쫓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12:9) 사단과 함께 내쫓긴 사자들이 바로 귀신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사람이고, 귀신은 귀신인 것입니다. 사람이 결코 귀신으로 그 모습이 바뀌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단과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순간까지만 제한적으로 활동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눅8:31) 이 마귀 귀신들의 종착역이 결국 무저갱이라고 표현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순간, 이들의 모든 활동은 끝이 나며 무저갱, 즉 지옥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귀신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활동 기간 동안 더 많은 악을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사단이 가장 핵심적으로 이용하는 공격 전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문화를 이용한 공격입니다. 엡2:2에 보면 ‘세상 풍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이 세상 풍조를 쫓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 풍조가 바로 ‘문화’입니다. 이런 세상 문화는 결국 귀신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귀신 문화를 복음 문화로 바꾸는 역할을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렘넌트문화센터와 올해 완공될 본당은 이런 문화 개혁의 중심 센터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주보 3페이지에 보면, 본당건축의 마지막 미션이 ‘홀리메이슨(Holymason)’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메이슨(Mason)’은 영어 단어인데 ‘석공’이라는 뜻이고 단어 속에 ‘전문성’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원래 프리메이슨 단체가 자신들의 전문성을 통해 정치, 경제, 문화를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프리메이슨이 아니라 언약 잡은 홀리메이슨으로 서겠다는 것입니다. 흑암 경제를 넘어서는 ‘복음 경제 회복의 주체’가 바로 홀리메이슨인 것입니다. 여기에 동참하면서 ‘현장의 흑암 문화를 복음 문화로 바꾸는 문화 개혁자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생명 살리는 관심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눅8:28-29)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귀신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입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이미 속으로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눅8:29)
약4:7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할 존재이지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그 이름의 권세를 통해 흑암이 꺾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30~33절에 보면, 예수님의 명령에 귀신들은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돼지 떼들은 호수로 들어가 몰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귀신이 떠나가자 귀신 들렸던 자는 정신이 온전해져서 옷을 입고 예수님의 발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 속에서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의 동네에서 떠나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손해 보는 일을 겪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눈앞에 나타난 경제적 손실로 인해 한 영혼의 치유와 회복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막5장에 보면, 몰사한 돼지의 수가 2천 마리 정도라고 했습니다. 단순한 계산으로도 재산 손실이 막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영적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최고 관심은 ‘한 영혼의 구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물질, 명예, 부귀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물질의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영혼이 구원받게 된다면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것입니다. 내 자존심이 상해도, 내 명예가 손상 되도 그것으로 인해 영혼이 살아난다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한 신학자는 “왜 애꿎은 돼지 2천 마리를 예수님이 몰살시키도록 내버려 두셨을까?”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쫓으면서 이 사람의 치유에 관심이 없었던 사회를 심판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돼지를 기르는 데는 바쁘면서 고통 받는 영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그 마을을 주님이 심판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지금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생명 살리는 것에 최고의 관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4천지교회 언약’을 확실히 붙잡고 ‘믿음의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최고로 시원케 하는 현장 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지금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부활절 이전 46일(주일을 제외하면 40일)간 이어지는 절기입니다. 올해 3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사순절 기간입니다. 흔히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삶을 다짐하는 기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면서 고난받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생명 살리는 열정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귀신 들렸던 사람이 치유를 받고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자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서 지금 일어난 일을 가족과 친족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눅8:38-39)
생명 살리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받은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강단 말씀을 통해 ‘변화와 회복’을 받은 놀라운 축복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생명 살리는 열정이 온전히 회복되어 하나님을 최고로 영화롭게 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