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다음의 인터넷 기사댓글을 들여다 보다가
아래와 같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여
여러분들에게도 소개합니다.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rMode=list&cSortKey=rc&allCommen
t=T&newsid=20130423072107825&RIGHT_ENTER=R4
첫댓글 제 장인어른도 위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울 아버지는 인민군으로 참전 낙동강 전투에서 낙오되어 탈영하고 거제도수용소에서 반공포로 로 탈출함이승만의 지시로 미군과 공동경비를 서던 한국군에의해 철조망이 일부 열리고 이 틈으로 수배 수천명이 탈출하다미군 감시초소의 기관총에 의해 반수 이상이 사살됨...아버지가 이북사람이라 생활력이 강할것이라 생각한 어머니와 결혼하였으나...매일 술로사시고 마음도여려 늘 손해만 보고 다니셨음...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어머니의 아버지를 향한 저주는 지금도 계속됨..속았다고 ...ㅋㅋ
아놔님 가족사도 풀어놓으면 팔만대장경은 아니더라도 삼국지 편수는 나오겠네요.그래서 아놔님도 결혼을 않고 있군요.아버님 닮아 저주 듣기 싫어서..ㅋㅋ
어머니 증언대로라면 닭 한마리도 제대로 못잡아...어머니한테 온갖 타박과 구박을 받았다고 합니다실제 구박 받는것은 하도많이 봐서리...ㅋㅋ그러니 트라우마가 안 생길수가 있나욤..^^:
비도오고 꿀꿀해 지는것이...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수는 없었지~만고향생각 나실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눈물로 지새우시던 내~아버지 이렇게 애기했죠죽기전에~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함경북도 산청군 어디쯤 이랍니다..^^:
중풍으로 10 여년을 누워계시다 돌아가시기 3년전쯤 ...고향이야기를 하시면서 김일성장군에 대해 말씀하시더군요동에번쩍 서에번쩍 홍길동 같이 왜놈들을 물리쳤는데...해방후 김일성장군이 실제로 나타나자 다들 반신반의 했더랍니다허연 수염에 기골이 장대한 장수를 그리던 대중들이 20여세의 젊은 김일성장군을 보고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이었겠지요...실제 울 아버지도 당시의 김일성장군은 가짜라고 생각하시더군요..
일제시기 김일성장군에대한 수많은 무용담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대중들은 실제로 김일성 장군이 도술을 연마하여왜놈들의 혼쭐을 빼 놓았다고 민간에서 전해졌다고 합니다왜놈들 또한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에 그러한 신비주의가 병사들에게 퍼져 전장으로 나가는것을 거부하거나회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고요아뭏든 민간에서 김일성장군은 홍길동같은 도술사로 더 잘 알려졌고 이점이 민간신앙과 결합하며일파만파로 전해져 신음하던 조선 대중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옛 지명이라 현제와 많이 다를수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호적등본을 살펴보니..함경남도 북청군 후창면 부동리 150번지로 나오네요...대충 적었더니 ...ㅋㅋ죄송..^^:
고맙습니다..^^한때 가난의 대물림과 화목하지 못한 가정사로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였던 시절도 있었지요그러나 세월이 흘러 철이들고나니 모든것이 이해되고..격변하는 역사의 파도앞에서 세월을 이해하지 못한 한 범부의 가슴아픈 삶과 비극을 이해하게 되더군요 ...^^:
ㅋㅋ. 아버지 고향 대충 때려 쓰다 제대로 걸렸네.저주 받게 생겼네 뭐....그나저나 아무리 힘들어도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깨비 같어....?모른게 없고, 나이도 종잡을수 없으니...
토시님 미워지넹...^^:
우리 부모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상거서면(어머니)인데 아버지는 가회면이고.
그러시군요...얼마나 고향이 그리우실까...ㅠㅠ
아놔님 악수합시다. 무척 반가워요부모님이 북한분들은 정말 늘 형제같아요우리 어머님도 단천이죠.단천군민회를 남한에서 늘 했었죠. 단천군민회는 건국대학교에서 자주 했었는데 그 이유가 건대이사장님이 단천출신이라 그랬었죠
어렸을 적 가끔씩 동네 어른들한테 6.25때 이야기 들어보곤 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었죠.학교에서 배운 것과 상당히 다르기에...
저도 친할아버지 할머니 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은바로는 학교에서 알려주던것과 아주달랐습니다
아놔키스트님 부친이 북청이시군요제 모친은 함경도 단천이시랍니다. 아놔님 반가워요!전 함경도 사투리만 들으면 어머니 생각이나서 눈물을 흘린답니다. 북청사투리도 저는 매우 잘알지요. 남한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모두 함경도라서 모이면 국수 말아 잡수시고 사투리로 말하곤 해서 내 고향이 단천 같습니다. 인민군은 여자 건들지 않았고 죄다 국군간나새끼들이 여자들 건드렸다고 어머니가 맬씀하셨죠.이런얘기하면 꼴통들은 북한은 사전에 남침을 준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87년도에 대학가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줌마에게 전쟁때 이야기를 물으니 인민군이 왔을때 숟가락과 쌀을 달라고 하길래 무서워서 줬으니 나중에 다시 와서는 빌려간 숟가락과 쌀을 가져다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데 본 글과 매우 유사합니다.
첫댓글 제 장인어른도 위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울 아버지는 인민군으로 참전 낙동강 전투에서 낙오되어 탈영하고 거제도수용소에서 반공포로 로 탈출함
이승만의 지시로 미군과 공동경비를 서던 한국군에의해 철조망이 일부 열리고 이 틈으로 수배 수천명이 탈출하다
미군 감시초소의 기관총에 의해 반수 이상이 사살됨...
아버지가 이북사람이라 생활력이 강할것이라 생각한 어머니와 결혼하였으나...
매일 술로사시고 마음도여려 늘 손해만 보고 다니셨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의 아버지를 향한 저주는 지금도 계속됨..
속았다고 ...ㅋㅋ
아놔님 가족사도 풀어놓으면 팔만대장경은 아니더라도 삼국지 편수는 나오겠네요.
그래서 아놔님도 결혼을 않고 있군요.
아버님 닮아 저주 듣기 싫어서..ㅋㅋ
어머니 증언대로라면 닭 한마리도 제대로 못잡아...
어머니한테 온갖 타박과 구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 구박 받는것은 하도많이 봐서리...ㅋㅋ
그러니 트라우마가 안 생길수가 있나욤..^^:
비도오고 꿀꿀해 지는것이...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수는 없었지~만
고향생각 나실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아버지 이렇게 애기했죠
죽기전에~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함경북도 산청군 어디쯤 이랍니다..^^:
중풍으로 10 여년을 누워계시다 돌아가시기 3년전쯤 ...
고향이야기를 하시면서 김일성장군에 대해 말씀하시더군요
동에번쩍 서에번쩍 홍길동 같이 왜놈들을 물리쳤는데...
해방후 김일성장군이 실제로 나타나자 다들 반신반의 했더랍니다
허연 수염에 기골이 장대한 장수를 그리던 대중들이 20여세의 젊은 김일성장군을 보고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이었겠지요...
실제 울 아버지도 당시의 김일성장군은 가짜라고 생각하시더군요..
일제시기 김일성장군에대한 수많은 무용담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대중들은 실제로 김일성 장군이 도술을 연마하여
왜놈들의 혼쭐을 빼 놓았다고 민간에서 전해졌다고 합니다
왜놈들 또한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에 그러한 신비주의가 병사들에게 퍼져 전장으로 나가는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고요
아뭏든 민간에서 김일성장군은 홍길동같은 도술사로 더 잘 알려졌고 이점이 민간신앙과 결합하며
일파만파로 전해져 신음하던 조선 대중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옛 지명이라 현제와 많이 다를수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호적등본을 살펴보니..
함경남도 북청군 후창면 부동리 150번지로 나오네요...
대충 적었더니 ...ㅋㅋ
죄송..^^:
고맙습니다..^^
한때 가난의 대물림과 화목하지 못한 가정사로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였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철이들고나니 모든것이 이해되고..
격변하는 역사의 파도앞에서 세월을 이해하지 못한 한 범부의 가슴아픈 삶과 비극을 이해하게 되더군요 ...^^:
ㅋㅋ. 아버지 고향 대충 때려 쓰다 제대로 걸렸네.
저주 받게 생겼네 뭐....
그나저나 아무리 힘들어도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깨비 같어....?
모른게 없고, 나이도 종잡을수 없으니...
토시님 미워지넹...^^:
우리 부모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상거서면(어머니)인데 아버지는 가회면이고.
그러시군요...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실까...ㅠㅠ
아놔님 악수합시다. 무척 반가워요
부모님이 북한분들은 정말 늘 형제같아요
우리 어머님도 단천이죠.
단천군민회를 남한에서 늘 했었죠.
단천군민회는 건국대학교에서 자주 했었는데 그 이유가
건대이사장님이 단천출신이라 그랬었죠
어렸을 적 가끔씩 동네 어른들한테 6.25때 이야기 들어보곤 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었죠.
학교에서 배운 것과 상당히 다르기에...
저도 친할아버지 할머니 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은바로는 학교에서 알려주던것과 아주달랐습니다
아놔키스트님 부친이 북청이시군요
제 모친은 함경도 단천이시랍니다.
아놔님 반가워요!
전 함경도 사투리만 들으면 어머니 생각이나서 눈물을 흘린답니다.
북청사투리도 저는 매우 잘알지요. 남한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모두 함경도라서 모이면 국수 말아 잡수시고 사투리로 말하곤 해서 내 고향이
단천 같습니다.
인민군은 여자 건들지 않았고 죄다 국군간나새끼들이 여자들 건드렸다고 어머니가
맬씀하셨죠.
이런얘기하면 꼴통들은 북한은 사전에 남침을 준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87년도에 대학가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줌마에게 전쟁때 이야기를 물으니 인민군이 왔을때 숟가락과 쌀을 달라고 하길래 무서워서 줬으니 나중에 다시 와서는 빌려간 숟가락과 쌀을 가져다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데 본 글과 매우 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