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Dean`s Study (딘스 스터디) 원문보기 글쓴이: 시무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신 5:16/엡6:1-3)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성경은 가정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창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위해 에덴동산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으로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가정을 중요한 자리에 두셨을까요? 인간이 가정 안에서 천국의 행복을 미리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해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 가정이 없으면 그것은 기쁨일 수 없습니다. 또한 실패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아무리 큰 실패를 겪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겪어도 가정이 있으면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중요합니다. 먼 곳을 볼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정을 먼저 천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별을 연구한다고 별만 보고 걷다가 웅덩이에 빠진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앞에 주어진 가정을 복되고 행복한 가정을 잘 세워가야 합니다. /아멘!/
▶일제시대에 이흥렬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필요해요' 그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솔방울을 모아 팔아서 400원을 송금해 주었습니다.
결국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너무 감격이 되어 눈물로 지은 첫 곡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입니다. /할/ 제가 이 노래가사를 읽어보겠습니다.
⑴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어머니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⑵어려서 안고 업고 길러 주시며/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⑶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어머님의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어머니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할/ ◀제목소개▶
2006년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나이는 92세, 아들 나이는 42세. 50세의 차이가 나고, 아들 이름은 이군익.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 둔 평범한 가장입니다. 한해 전 어머니가 세상 떠나서 쓸쓸한 아버지 모시고 독립기념관엘 갔다오는데 아버지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금강산에 가면, 1만 2천 봉이 있다던디...'
사람들은 이 말을 귀로 들었지만 아들은 가슴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이 말을 듣고 아버님을 모시고 금강산에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사실 그는 충청남도 서산 빈농에서 7남매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7남매 막내까지 대학까지 보내느라 평생 허리한번 못 펴고 사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콧등이 뭉클해져서,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혼자 다짐하기를 '네, 아버지! 금강산 아니라 금강산 할아버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아버님 생신 날 모여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산악을 타야하는 산행이니 휠체어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며칠 밤 고민을 했습니다. '만일 업고 간다면?' 그런데 그것도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를 업을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꼭 붙잡아야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꼭 붙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지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지게 위에 아버지 의자를 만들면 되겠구나!' 그러나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니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게 자체도 무거운데 의자까지, 거기다 아버지를 업으면? 아이쿠...
그래서 또 연구에 연구를 시작하여 최고로 가벼운 지게를 만들기로 생각합니다. 가볍고도 강한 그래서 낸 결론은 알루미늄 지게를 만들기로 하고 설계자를 찾아 나섰지만 모두들 못 만든다며 손사래를 치거나 터무니없는 제작비를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지게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술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특수 용접한 지게가 탄생하게 되어, 이름을 이렇게 붙이게 됩니다. '금강산 유람을 위한 아버님 전용 지게' /할/
이렇게 하여 만든 지게를 휴전선을 통과할 때 북측 안내원이 보고는 정색하며 뭐냐 물었고, 그래서 아버님 모실 지게라고 대답했더니 아버님 연세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흔 둘에 아들 등에 업혀 금강산 가신다 했더니 북측 안내원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하하 통과하시라요'
이렇게 해서 금강산 여행은 시작되었고, 아버지를 모신 덕분에 여행 내내 스타가 되었습니다. 계절은 초여름, 혼자 걷기도 험한 산길을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 여행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아버지도 처음에는 아들이 고생한다며 한사코 말리고 그 지게에 타고 갈 것을 거부했지만 점점 여행에 익숙해지면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저기가면 뭐가 있다냐? 아이고, 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이러면서 좋아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게 무게가 줄잡아 15kg. 아버지가 올라앉으시면 60kg이 넘었기에, 산행을 하면 할수록 어깨와 팔은 뻣뻣하게 굳고 허리는 끊어질듯 아팠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잘 견디었습니다.
마지막에 금강산 온천엘 갔는데 몸을 보니 상반신의 온 몸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좋았답니다. 이렇게 아버님을 지게에 업고 금강산 유람을 시켜드리는 지식이 있는가 하면, 아버님을 지게에 업고 귀찮다고 내다 버리는 자식도 있었습니다. /할/
▶이런 유머 한 토막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우연히 아들과 며느리가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답니다. '자기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그야 물론 당신이지! 당신은 영원한 나의 1번이야!' '그럼 그 다음은 누가 좋아?' '우리 멋진 아들이지!' '그럼 세 번째는 누가 좋아?' '우리 예쁜 딸이지!' '그럼 네 번째는 누구야?' '당신 낳아주신 장모님이지!' '그럼 다섯 번째는 누구야?' '음... 우리 강아지!' '그럼 여섯 번째는 누구야?' '그... 그것은 우리 엄마!'
시어머니가 너무 기가 막혀서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새벽 같이 일어나 집을 나가면서 냉장고에 메모하나를 남겼습니다. '아들과 1번 보아라! 6번 밖에 나간다. 잘 먹고 잘 살라'
그리고 집을 나갔답니다. 참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이 유모 속에 오늘의 세태 풍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자식들의 마음속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자리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바쁘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에 쫓기다 보니 점점 부모님을 잊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최근 주목할 만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정재기 교수의 '한국의 가족 및 친족간의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의 양상'이란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부모 자식간의 유대관계가 부모의 재산에 좌우된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OECD 15개국을 함께 조사했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14개국이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와의 접촉빈도가 반비례하고 있는데 비해, 유독 우리나라만 정비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가 재산이 많을 경우 상대적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져서 자녀와의 만남의 빈도수가 그 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재산이 적을 경우 시간적 여유가 많아 자녀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부모가 소득이 많을수록 자식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부모와의 만남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소득이 적을수록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만남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부모를 필요할 때 부모를 찾지만, 부모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 부모를 잘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표적인 불효입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우리나라만 이렇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동방예의지국'이 '동방불효지국'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할/
①행복한 가정의 원리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⑴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원리입니다. 옛 말에 경천자(敬天者)는 복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인생의 모든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128:1-2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아멘!/
⑵가정의 화목의 원리입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처럼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힘을 쓰십시오. 잠17:1절에서 솔로몬은 '마른 떡 한 조각 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물질이 풍성한 것보다 화목이 중요하고, 일이 잘 되는 것보다 화목이 중요합니다. 부모와 화목, 형제들과의 화목, 이웃과의 화목이 바로 천국입니다. /아멘!/
⑶섬김과 헌신의 원리입니다. 가족 서로간에 헌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회적인 봉사활동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가정에서 가족들을 위한 봉사가 없으면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보다 가족 전체의 유익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것, 나 보다 서로의 행복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헌신입니다. /아멘!/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세계적인 팝 가수 '셀린 디온'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맑은 음색을 지닌 '세계 최고의 여가수'입니다. 인기 정상을 달리던 그가 돌연 부와 명예를 거절하고 평범한 가정 주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기자 회견장에서 말하기를 '남편이 지금 후두암에 걸려 투병중입니다. 지금은 남편에게 내가 가장 필요한 시간입니다. 남편 곁에서 병간호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가수로서의 영광과 명예가 결코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가정다우려면 서로의 헌신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위해 헌신해야 하고 부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헌신하는 가운데서 가정이 가정다워지는 것입니다. /믿/
▶오래 전에 일본에서 동경 올림픽이 열리기 전해의 일이었습니다. 올림픽 때문에 스타디움을 확장하기 위해서 인부들이 지붕을 헐었습니다. 그런데 지붕을 헐어보니 벽에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채 살아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전에 공사했던 사람들에게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3년 전에 박은 못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인부들은 어떻게 3년 동안 도마뱀이 그런 상태에서 살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사를 중단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한참 지켜보니까 한 구석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나오더니, 그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3년 동안 그 도마뱀 친구를 위해서 하루에도 서너 차례 먹이를 물어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부들은 그 도마뱀의 사랑과 헌신의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멘!/
⑷서로 용납하고 이해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특히 부부는 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부부가 함께 살면서 서로 보완하여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치려고만 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몸의 상태가 다릅니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바라보는 것이 다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자신과 똑같기를 강요한다면 어찌 가정이 화목할 수 있겠습니까? 부부간에도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가정이 평안하고 가정생활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TV 프로그램 한 장면에서 나온 말입니다. 70대 노인 부부가 단어 알아맞히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할머니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당신이 늘 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말' 그러자 할머니가 다짜고짜 대답합니다. '웬수!'
할아버지는 당황하면서도 끝까지 답을 이끌어내려고 설명을 이어갑니다. '아니 네 글자!' 할머니 답이 걸작입니다. '평생 웬수!' 그렇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웬수' 그것도 '평생 웬수'라 생각한다면 그 가정이 행복할까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의 만남을 잘못된 만남이요, 잘못 낀 첫 단추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정은 결코 행복의 보금자리일 수 없습니다. /할/
②기독교는 효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와 조국의 은혜, 이 3대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뿌리 없이 자란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주제가 효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단순한 인륜의 차원에서 마땅한 도리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와 사랑의 차원에서 전하는 권고사항도 아닙니다. 지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몰라서 무식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기독교는 살아생전에 부모님을 잘 섬기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아멘!/
기독교가 불효하는 종교가 아닌 증거는 먼저, 십계명을 보아서 기독교는 불효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약 600여 가지의 계명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계명이 십계명입니다. 이 10계명은 또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으로 1에서 4계명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으로 5에서 10계명입니다.
출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리고 오늘 본문인 신5:16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말씀들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의 말씀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10계명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이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 엡6:2절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할/
▶이 계명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 몇 가지 있습니다.
⑴효도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다움의 우선적 요건이 효도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오늘의 자기를 있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인간다움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⑵효도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에 유일하게 적극적 계명이라는 점입니다.
십계명 중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계명들은 다 '...하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효도에 대한 계명만은 '...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효도는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효도는 잘하면 잘 할수록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⑶효도만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계명과 달리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들은 '...하지 말라'고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 계명들을 지키지 않으면...' 하고 경고가 붙어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효도라는 계명만은 하나님께서 잘 지킬 경우 장수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인센티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서라도 꼭 지키게 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 외에도 효도에 대한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레19:3절을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23:25절에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잠16:31절에서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또 잠30:17절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여 어미를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도 하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효도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효도는 반드시 해야 하고, 만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아멘!/
③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이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것이 옳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의로운 말이다'라는 뜻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합당하다는 의미라고 했고, '칼 바르트'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라고 했습니다.
또 '옳으니라'는 말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봄이 오면 눈이 녹고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합니다. 5월이 되었는데 싹이 나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가 틀림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⑴생명을 부모를 통해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
⑵부모님이 나의 스승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높은 학위를 얻었다는 이유로 교수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학위는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학문적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에게 생명의 기본 원리를 가르친 분들은 우리의 부모님이십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나에게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어린 시절 인간의 기본 됨에 대하여 부모에게 배웠습니다. /믿/
⑶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나에게 아낌없이 주려는 분이 있습니까? 오직 부모님만이 자녀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주고 떠납니다.
⑷부모는 사랑의 원천입니다. 에로스 사랑은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거짓이 있습니다. 친구의 사랑에는 배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진실이요, 순수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네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먼저사랑입니다. 사랑도 값이 있습니다. 먼저사랑이 더 고급사랑입니다. 부모사랑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먼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한 몸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자식이 팔을 다치면 내 팔을 다친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불변한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은 부모들에게 인터뷰를 해 보면 마지막 한마디씩은 남깁니다. '그놈들 잘 살면 내가 보람을 느끼지요' 버림을 받았는데도 사랑이 변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합니다.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이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사랑해도 부모사랑에는 비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하고 잘되면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들이 아프고 실패를 하면 그들의 불행을 안고 또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할/
④어떻게 효도해야 하는가?(엡6:1-2)
⑴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그렇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순순히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순종은 계속 진행의 의미가 있는데 한 번만 순종함이 아니고 계속해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틴 루터'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입니다.
골3: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휘파쿠오'입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귀 기울여 듣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순종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납득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도저히 그 말씀을 납득할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무시해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납득할 만할 때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납득하기 힘들 때는 왜 그렇게 말씀하였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정 따를 수 없을 때는, 당장 판단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할/
▶창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나이 127세이고, 아들 이삭의 나이가 27살 되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뜻밖의 지시를 합니다. 함께 모리아 산에 가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도록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었고, 두 사람의 종이 불과 칼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볼 때,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번제에 쓸 제물인 양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삭은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대해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기가 막힌 일이 생겼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가 번제단을 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아무런 말씀도 없이 자기를 결박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기를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려 하신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무런 말이 없이 선선히 결박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지금 피 끓는 청년입니다. 이에 비해 아버지는 127세의 힘없는 노인입니다. 살려고 한다면, 아버지를 뿌리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아버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할/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저명한 문학가인 '사무엘 존슨'의 일화입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장터 한 쪽에서 이 분이 홀로 몇 시간을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냥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반나절이 지났을까, 그의 낯선 행동에 걱정이 되었던 제자가 다가가 스승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 때 이분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실은 50년 전,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서 헌책장사를 하였다네. 그 날도 장사를 위해 일어나셨지만 몸이 몹시 안 좋으셨는지, 나에게 대신 하루만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 줄 수 있냐고 물으셨었지…'
'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우리 집이 헌책장사 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냐며 거절했지. 그런데 너무 무리를 했던 탓인지, 아버지는 그 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오늘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네'
사무엘 존슨은 50년이 지난 후에도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자신의 행동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도 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큰 아픔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깨닫고 나면 때늦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할/
참 행복한 성도 여러분! 부모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아멘!/
⑵부모님을 바르게 공경해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렇습니다. 효도란 구체적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은 원어로는 '티마'입니다. 이 말은 구약의 히브리 '카베드'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카베드라는 말은 원래가 '무겁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공경이라는 말의 원 뜻은 '중하게 여긴다, 존중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우선 부모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작가 조연경씨가 쓴 '효도별곡' 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서울에서 만두집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부는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두가게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들은 늘 따로따로 가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두를 시켜놓고는 마치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애틋하게 서로에게 먹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두집 주인은 이 두 노인이 아마도 젊은 시절 사랑했던 사이였다가 말년에 그 사랑을 잊지 못해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그날따라 할머니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두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권했지만,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을 뿐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할머니는 자주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먹이곤 했습니다.
한참 뒤에 일어나 만두 값을 치른 할아버지는 그 날만큼은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만두집을 나섰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마치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왠지 가슴 아프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만두집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어느 수요일 정각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만두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만두집 부부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몹시 초췌해 보였고,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부부를 향해 할아버지가 답례로 보인 웃음은 울음보다 더 슬퍼 보였습니다.
만두집 여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마치 독백하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첫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어엿한 부부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큰아들의 집에서,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의 집에서 각각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식들끼리 싸운 결과였습니다. 큰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자기 혼자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서는 바람에, 아들들이 공평하게 한 분씩을 모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서울과 수원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3시만 되면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그 만두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온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서는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할/
오늘 자식들이 부모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큰 부담이요 짐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경은 부모님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시고, 존중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아멘!/
⑶다음으로 공경이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때로 자식 생각에, 할 말씀도 하지 못하실 때가 많습니다. 또 때로는 속마음과 다른 말씀을 하실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공경은 부모님의 속마음을 헤아려서, 그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믿/
▶심순덕님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를 때가 많습니다. 효도를 한다고 해도 다 자기 좋으라고 효도할 때가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효도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⑷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잠17: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렇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상의 효도입니다. /아멘!/
⑸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자식에게 효도를 받는 비결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부간에 갈등이 심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기세 등등하던 시어머니도 나이는 속일수가 없는지 기력이 쇠하여 식사 때마다 손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숟가락도 놓치고 밥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국을 쏟고 그릇도 깨뜨리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침 방구석에서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습니다. 고양이 밥그릇은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밟아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다시 제자리에 놓으면 그 뿐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고양이 밥그릇에 시어머니 밥을 담아 드렸습니다. 나무 그릇을 더 구하여 국도 퍼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릇을 깨뜨리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아들도 참 머리가 좋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부부가 시장에 다녀와서 보니 초등학교 3학년 된 아들이 옆 집 친구와 함께 통나무 속을 부엌칼로 파내고 있었습니다. 방안이 온통 난장판이었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뭐 하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이 다음에 엄마 아빠 사용할 밥그릇 만들고 있어요' 꼭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할/
▶중국 한 나라에 '곽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가난했습니다. 노 어머니와 세 살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노모는 자라나는 손자에게 맛있는 것을 다 먹였습니다. 배고플까 몹시 신경을 썼습니다. 손자에게 주느라고 자신은 굶을 때가 많아 여위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본 곽거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아들을 죽여 구덩이에 파묻자!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다시 얻을 수가 없지 않느냐?'
그는 뒷뜰로 가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두어 자 가량 팠을 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조심스럽게 파보았더니 큰 금 그릇이었습니다. /할/ 그리고 그 속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효자에게 내리는 하늘의 복이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리라' 이같이 효도에는 형통의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아멘!/
⑹성경에는 이런 사실들을 많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 왕을 내쫓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의 후궁들을 육체적으로 범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새를 타고 도망하는 데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리고 노새는 빠져나갔습니다. 요압이 가서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부모에게 거역한 자의 말로였습니다. /할/
또 한번 이삭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아들 이삭은 순순히 잡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아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이삭을 성경 삼대 거부 중에 하나로 삼아 주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압살롬은 일찍 죽었지만 이삭은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압살롬은 청년일 때에 죽었지만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습니다.(창35;28) /할/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밥상에 닭고기가 올라 왔습니다. 잡수려던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이 닭고기 어디에서 났니?' 아들이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 잡수시기만 하세요' 이런 때 탈무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아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할/
⑺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효도는 부모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를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효도는 구체적으로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멘!/
▶옛날 비엔나에서는 죄수를 일정기간 동안 시내 거리 청소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수상이 한가로이 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옷을 말끔히 입은 청년이 눈을 쓸고 있는 죄수에게 다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꾀죄죄한 죄수의 때묻은 손을 잡고 입을 대더니 키스를 합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수상은 그 죄수는 정치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청년은 그의 추종자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궁금하여 그 청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자네가 손에 키스한 그 죄수가 누구인가?'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각하. 그 사람은 저의 아버지입니다.'
그 청년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뜻밖의 사실을 알고 할 말을 잃은 수상은 죄수가 존경 스러워졌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한 아들을 두었을 가하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수상은 국왕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렇게 자식을 잘 기른 아버지는 나쁜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석방되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효도의 방법은 순종과 공경입니다. 여기 '순종하라'는 것과 '공경하라'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중국속담에는 '존경보다 더 나은 것은 순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종과 공경은 늘 함께 하는 단어입니다. 순종하면 공경하고, 공경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공경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까요? 아마 그런 경우는 가짜 공경이고 가짜 순종입니다. /할/
⑤효도하는 자식은 어떤 축복을 받는가?(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십계명을 해석한 말입니다. 출20:12절에 십계명을 기록하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십계명의 말씀을 바울이 약간 변형한 것입니다.
부모 순종의 결과가 '형통과 장수'입니다. /할/ 잘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통입니다. 언제 잘되고 형통합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내 모든 규례와 법도를 행하면 형통하리라, 부모를 순종하면 형통하리라' /할/
장수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자를 장수하게 하십니다. 창15:15절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결론으로 읽겠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할/ ( 어버이주일 설교)
시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