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0. 6 주일예배설교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시편 46:1-11)
Ⅰ. 서론
여러분!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혹시 여러분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준 말씀이 있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교 개혁자 루터는 종교 개혁을 하면서 절망에 빠졌을 때,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46편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었고, 독일어로 번역하여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로 시작되는 찬송가 585장입니다. 그는 또한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보름스 국회에 호출을 받고 고민하고 있었을 때, “비록 보름스에 있는 기왓장만큼 악마가 많아도 나는 가리라.”는 용기를 이 시편 46편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인생의 환난으로 인해 절망 가운데 빠진 분이 계시다면 루터처럼 이 시편의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풍성해지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Ⅱ. 본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노래하고 있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시입니다. 이 시편은 다른 몇몇 시편들(48, 76, 84, 87, 122편)과 함께 ‘시온의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 속에 ‘시온’이라는 단어가 명백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4절에 ‘하나님의 성’과 ‘지존하신 이의 성소’라는 표현이 시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특별한 곳입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으며, 이곳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체험하였습니다.
이 시편은 유다 왕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에서 예루살렘이 구원된 사건(B.C. 701년 경, 왕하 19:35-37)을 배경으로 고라 자손이 쓴 ‘찬양시’입니다.
이 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마칩니다(1, 7, 11). 따라서 이 시는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가 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는 1-3절, 4-7절, 8-11절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상황 속에서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신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상황 속에서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십니까?
첫째, <자연의 격변> 가운데서도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3절).
2-3절에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연의 격심한 이변, 즉 지진이나 산사태(2절), 해일이나 홍수(3절)와 같은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위기상황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자신들의 피난처시요 힘이 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3절에 나타난 것과 같은 그러한 엄청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큰 도움이 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창조주 하나님(창세기 1:1-3)에 대한 믿음과 구원의 하나님(출애굽기 15:17)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요동한다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힘이 되어주시고 큰 도움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때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환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역사의 격변> 가운데서도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4-7절).
우리는 앞 단락(1-3절)에서 모든 자연의 격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피난처가 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단락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또 다른 역사적 격변을 경험하게 됩니다.
6절에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하나님의 성 시온에 쳐들어오는 것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또 다른 역사적 격변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하나님의 성 시온은 어떠한 곳입니까? 그곳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과 평안이 풍성히 임하는 곳입니다.
4절에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시내’는 2-3절에 나타난 ‘바다’라는 단어와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바다는 온 세상을 뒤엎고 세상에 파멸을 가져왔지만, ‘한 시내’는 고요하게 흘러 하나님의 성에 풍요와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한 시내’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과 평안’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은 ‘지존하신 이의 성소’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곳’인 <시온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4절의 말씀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 가운데 누리게 되는 최상의 평안과 기쁨의 상태를 묘사해줍니다.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놀라운 은혜와 복과 평안과 기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러한 상태를 5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과 평안과 기쁨이 있는 하나님의 성에 세상 나라들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롭게 거하는 그곳에 또 다른 역사적 격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6절에 그것을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의 격변 가운데서도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6절 하반절에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시온성에 쳐들어온 세상 나라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시매 그 하나님의 권능 앞에 온 나라들이 땅이 녹듯이 완전히 멸망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시인은 이제 7절 말씀을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는 천만 대군을 이끄시고 전쟁을 수행하시어 반드시 승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7절에나타난 ‘만군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세력을 멸하시는‘하나님의 권능’의 모습을 강조하고, ‘야곱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셋째, <다가올 종말> 가운데서도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8-11절).
이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 백성들에게 8절에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행적은 상당히 파괴적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반역하는 세력을 저지시키면서 ‘땅을 황무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방의 모든 군대가 다 쓰러졌고, 시체들로 가득찬 황무지의 모습이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최종적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열방을 무찌르신 것은 더 높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9절의 말씀처럼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하고 활을 꺽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심”으로써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0절 말씀을 통하여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은 이제 뭇 나라들을 향하여 무모한 전쟁을 그치고 당신이 하나님 됨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권위와 뜻을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온 세상에서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실 때, 온 세상에 참된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진정 다가오는 종말에도 믿는 자의 전정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제 시인은 마지막 후렴을 통해 예배 공동체가 기쁨에 넘쳐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이것은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로 시작하여 같은 찬양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능하신 주님을 알고 그분의 구원을 체험한 온 회중은 기쁨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제 전능자의 날개 아래 피하고 싶어하며,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맡기며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로다.’라는 아름다운 고백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Ⅲ. 결론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늘 환난과 고통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전쟁이 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전쟁보다, 루터의 전쟁보다 더 큰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 최후의 종말론적인 전쟁, 적그리스도와의 묵시록적인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모든 원수들이 다 일어날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 되시는 주님을 늘 의지함으로 기쁨과 평안이 넘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