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외 1편
김도연
예천읍에서 감천 읍내로 가는 시골길
그 길에서 마주친
옛날 우리 친정집 이웃에 사시던 영실어매를
꼭 닮은 할머니
구부정한 허리에 분홍 조끼를 입으시고 걸어간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은
꽃가지에 만개한 벚꽃을 꽃비로 흩날리는데
가던 길 멈춰 선 할머니
꽃잎이 다칠까봐 허공으로 조심스럽게 손바닥 내밀어
떨어지는 봄을 받으려 한다
벚꽃은 난분분 서럽게 뜨겁게 날리는데
한 계절의 별서에 든 젊은 여인으로
방금 도착한 꽃잎연서를 받아든 소녀처럼
두 손 공손히
할머니는 꽃잎편지를 받혀 읽는가 보다
햇살 가르며 무수히 쏟아지는 봄
백미러에서 멀어져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자꾸만 돌아보아도
백발의 할머니는 아직도 벚나무 아래에 여전히
꽃비에 흠뻑 젖고 계시다
나의 별서
기다리면 오는 것이지만
목련꽃 하얗게 침입한 오늘 아침 이 순간에도
작은 창가에 부딪히는 그 모든 풍광이 지겹지 않다
봄날은 가는 것이고
또 내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한순간 애틋한 문을 열었다가 닫을 것이고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또 옷깃 여며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슬픔은
서럽다거나 애틋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별서이므로
후회의 밤은 그래서
길다
논산역 귀퉁이 작은 플랫폼 뒤꼍에 엄마는 피어났고 봄꽃처럼 그렇게 떠나보냈었다. 그때 웃으며 붉은 눈시울 꾹꾹 참아가며 등 돌리는 엄마를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며칠 전 우리 집 뜰에 다시 제비꽃이 피었다. 살아낸다는 것은 이 문과 저 문 사이를 부지런히 통과해서 무심히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말자. 엄마를 만나고 엄마를 보내며 사는 일이 슬픔을 비껴서며 외로움을 견디는 나의 별서 아니었던가. 그렇게 엄마는 엄마의 논리로 엄마답게 봄을 건넜고, 나는 참으로 무덤덤하게 엄마를 만나고 보내는 중이라고 애써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김도연
충남 연기 출생. 2012년 시사사 등단.
시집 엄마를 베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