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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왕조의 몰락을 예견한 관상쟁이 최천중, 그는 격동하는 한말에 분연히 일어나 나라꼴을 누추하게 만들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조선을 뒤엎고 이상국가를 세울 웅대한 꿈을 품는다. 조실부모하고 입신출세의 길이 막힌 천출 최천중은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나라를 물려받아 군림할 자식을 얻기 위해 양가집 유부녀까지 겁탈하고, 마침내 왕이 될 사주팔자를 가진 아들을 얻는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천하를 좌지우지할 바람과 구름과 비를 직접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나이. 최천중은 이상국가를 세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재와 인재, 호걸을 모은다. 작가 이병주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이 작품은 방대한 사료를 통해 얻어낸 작가만의 날카로운 역사의식, 지적 편력을 정교하게 교직해놓았다.
작가 이병주는 「지리산」을 쓰기 시작할 때, ‘실패할 각오로 나는 이 작품을 쓴다’고 말했다. 작품으로서는 실패해도 좋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 지식인이 어떻게 참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과제가 문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도 절실하다는 듯이 아니었겠는가. 작품의 완성도라든가, 문학이 안고 있는 예술적 기쁨을 넘어서는 작가 이병주가 대형 작가인 이유가 이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를 비롯한 이병주 문학의 대중성의 근거가 이에서 말미암는다.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교수)
역사에서 누락된 패자의 삶, 영웅도 아닌, 주류에서 벗어난 야인들의 삶을 통해 민초의 꿈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과 구름과 비」는 영웅 중심의 다른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병주 문학의 대표작 바람과 구름과 비는 등장인물이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필치, 신선한 역사 의식, 유장한 문체, 장대한 스케일,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도도히 흐르는 대하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순원(소설가)
이병주 문학은 역사가 상명을 얻자면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작가적 신념의 소산이다. 대표작 바람과 구름과 비 지리산 산하 그 해 5월 등이 그런 신념 하에서 씌어졌다. 그 가운데 특히 바람과 구름과 비는 민족의 앞날이 어두웠던 한말을 배경으로, 난세를 사는 시민들의 기막힌 공화국에의 꿈과 희망을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회한의 민족사에 뜨거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 이어령(문학평론가, 전 문화부장관)
「바람과 구름과 비」는 한국의 사마천을 꿈꾸었던 작가 이병주가 가장 공들여 쓴 소설이다. 조선왕조 말기이자 우리나라 근대의 맹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방대한 사료와 날카로운 역사의식, 그리고 박물지적 지적 편력을 정교하게 교직해 내놓은 작가의 대표작의 하나이며 야심작이다. 혼미를 거듭하는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최천중과 그 휘하의 젊은이들이 권문 호족들을 상대로 벌이는 신출귀몰하며 담대한 모험담의 재미는 무협지를 능가하고, 갖가지 기구한 사연과 인연으로 맺어진 이들이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펼쳐내는 이야기의 방대함은 삼국지에 비견할 만하다. -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