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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경위사(經經緯史)
경학을 날줄로 삼고 역사를 씨줄로 삼는다는 뜻으로, 경전 공부로 중심축을 걸고 나서 여기에 역사 공부를 얹어야 바른 판단을 세워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經 : 경서 경(糹/7)
經 : 경서 경(糹/7)
緯 : 씨 위(糹/9)
史 : 역사 사(口/2)
추사 김정희의 글씨 중에 ‘경경위사(經經緯史)’가 있다. 경(經)은 날줄, 위(緯)는 씨줄이니, 날줄을 세로로 걸고 씨줄이 가로로 오가며 한 필의 베를 짠다. 그러니까 경경위사란 말은 경경(經經), 즉 경전(經傳)을 날줄로 걸고, 위사(緯史) 곧 역사책을 씨줄로 매긴다는 뜻이다.
경도와 위도를 알아야 한 지점을 정확히 표시할 수가 있듯, 경전 공부로 중심축을 걸고 나서 여기에 역사 공부를 얹어야 바른 판단을 세워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이 말은 예전에 독서의 차례를 말할 때 늘 하던 말이다. 임헌회(任憲晦)는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경전을 먼저 읽고 역사책은 나중에 해야 한다. 근세에 ‘소미통감(少微通鑑)’을 가지고 처음 배우는 자에게 가르치는 것은 절대로 성현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선경후사(先經後史)’는 경경위사와 뜻이 같다.
왜 그랬을까? 조병덕(趙秉悳)의 설명은 이렇다. “정자(程子)는 남을 가르칠 때, 먼저 ‘논어’와 ‘맹자’를 읽고, 그 다음에 여러 경전을 읽은 뒤에야 역사책을 보게 하였으니, 그 차례가 어지러워서는 안 된다. 경경위사와 선경후사의 뜻은 공부하는 첫 단계에서 마땅히 조심해야만 한다.”
오희상(吳熙常)도 “경전은 이치이고 역사는 사실이어서, 경전은 순수하고 역사는 뒤섞여 있다. 그래서 옛사람의 독서법은 반드시 경전을 먼저하고 역사를 뒤로 하였다(經理而史事, 經純而史雜, 故古人讀書之法, 必先經後史).”
역사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바탕을 두므로 선악과 시비가 구분 없이 섞여 있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권모술수가 진실에 앞서 통한다.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이 중심의 줏대를 세우지 않은 채 역사책을 먼저 읽으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무슨 수를 써도 이기면 그만이라는 식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공부는 판단의 기준을 세우기 위함인데, 방편의 효율과 수월성만 따지면 못 하는 짓이 없게 되고 안 하는 일이 없게 된다. 공부뿐 아니라 모든 일은 순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다. 순서를 헝클면 열심히 해서 더 나쁜 결과를 얻고 만다.
▣ 옛 것에서 새 것을 찾는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동양의 지식인들은 통시대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춘추전국시대에 형성된 제자 백가 사상의 논리들은 인류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제사상의 원론을 기본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사상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유가 사상이 중국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사상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적 면모에 기인한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이다. ‘옛 것을 제대로 알고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기본적인 태도야말로 안정성의 기초이다.
인류의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선 상에서 전개되고 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역사에 대한 중시였고, 거기서 강조된 것이 경경위사(經經緯史) 정신이다. 경전의 진리를 영원히 불변하는 것으로 전제하여 날줄로 인식하고,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이 변화하는 역사를 씨줄로 인식함으로써 경전과 역사를 날줄과 씨줄의 관계로 엮은 것이 경경위사의 정신이다.
예컨대 진선미(眞善美)라든가 효도와 같은 인류 보편적인 진리는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철학(경학)과 역사를 상호 보완하여 인간사를 파악하는 경경위사의 정신은 동양 사회가 면면하게 지켜 온 인문 정신이며 동양의 정신 문화를 고양시킨 토대가 된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마다 이 정신은 조금씩 논리를 보강하면서 새 시대의 대응 논리로 기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18세기 박지원에 의해 제창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논리라든가 19세기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1894년 갑오경장 후 제기된 구본신참(舊本新參)의 논리가 모두 그러한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세동점의 대응책들은 20세기 제국주의의 틀 속에 함몰되거나 근대화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게 되고, 동양 사회는 1세기 이상 서구 이념의 각축장이 되어 표류하게 된다.
서세동점의 길고도 긴 터널에서 동양 사회가 빠져 나오려는 현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살려 내야 하는 정신 중의 하나가 경경위사의 정신이다.
식민지화 이전 시대인 조선시대의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일과, 그 시대 사상인 유학,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리학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 선비정신과 사랑방 문화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며 한국인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이미지를 고취해 나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한 국가 외교정책은 물론 범국민적 정신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하면 신사의 나라를 연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분명한 국가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과학 기술이 어느 정도 보편화 되면 문화가 최고의 상품이 되어 국가 경쟁력의 축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정신문화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전통이 있다. 선비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조선왕조가 준 최고의 선물이다.
조선은 세계에서 유래가 드문 장수 국가다. 힘이 아닌 교화를 통해 다스리려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기에 오백 년이나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성리학적 명분에 근거한 왕도정치를 지향하였고, 그 바탕에 선비라는 모범적 인간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선비는 조선왕조가 설정한 최고의 이상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원래 선비라는 말은 몽고어 '박시'에서 왔다고 한다. 또, 신채호는 선의 무리 즉 선배(仙輩)가 어원이라고 하고, 김동욱은 선배(先輩)와 같은 개념으로 신라의 화랑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어질면서도 지식이 충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훌륭한 사람의 자취나 착한 행실은 반드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선비 논 데서 용 난다'는 속담도 이래서 생겨난 듯하다.
선비는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며 학예일치(學藝一致)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였다. 문사철(文史哲)을 통해 이성적 판단 능력을 높이고, 시서화(詩書畵)를 통해 감성 근력을 키웠다.
선비는 이성 교육과 감성 교육을 아우름으로써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려 하였다. 머리는 차고 가슴은 따뜻한 인간을 지향하였던 것이다.
원칙을 지키되 그 범위 안에서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하는 유연성(經經緯史), 남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정신력(薄己厚人), 공적인 일은 먼저하고 자신의 일은 뒤로 미루는 책임의식(先公後私), 강자에게 당당하지만 약자에겐 도움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抑强扶弱) 등이 선비정신의 대표적인 덕목들이다.
부정과 타협하지 않으며 솔선수범을 우선으로 삼는 성기성물(成己成物)의 태도는 물론, 멋과 풍류를 곁들여 삶 자체를 이상화 하려는 여유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열린 공간이 사랑방이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서 사랑방은 가부장의 주거공간인 동시에 손님과 정담을 나누는 문화 쉼터이기도 하다. 신독(愼獨)을 위한 개인의 광장인 동시에 인정을 나누는 소통의 마당이었던 셈이다.
이런 전통 덕분인지 70년대만 하더라도 동네 사랑방이 더러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각 가정의 애경사를 같이 슬퍼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 가 없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사랑방 문화나 선비정신은 오늘날 되살려야 할 빛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국제적으로 자랑할 만한 명실상부한 한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통을 살려 나간다면 한국은 동양의 모범적인 신사인 선비가 많이 사는, 정과 품격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국격도 저절로 상승하리라.
▶️ 經(날 경)은 ❶형성문자로 経(경)의 본자(本字), 经(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실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巠(경; 세로로 곧게 뻗은 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옷감 짜는 날실, 씨실인 緯(위)에 대하여 일컬음이다. ❷회의문자로 經자는 ‘'지나다'나 '다스리다', '날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經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巠(물줄기 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巠자는 '물줄기'라는 뜻이 있지만, 본래는 베틀 사이로 날실이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날실이)지나다'는 뜻은 巠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巠자가 '물줄기'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여기에 糸자를 더한 經자가 '지나다'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經자는 후에 비단 실을 엮어 베를 짜듯이 기초를 닦고 일을 해나간다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나 '경영하다'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經(경)은 (1)경서(經書) (2)불경(佛經) (3)주기도문(主祈禱文) (4)판수가 외는 기도문(祈禱文)과 주문(呪文) (5)피륙에 세로 방향으로 놓여 있는 실인 날실 (6)경도(經度) (7)경선(經線) 등의 뜻으로 ①지나다 ②목매다 ③다스리다 ④글 ⑤경서(經書) ⑥날 ⑦날실 ⑧불경(佛經) ⑨길 ⑩법(法) ⑪도리(道理) ⑫지경(地境: 땅의 가장자리, 경계) ⑬경계(境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이(厘), 다스릴 발(撥), 다스릴 섭(攝), 다스릴 치(治), 지날 력/역(曆), 경영할 영(營), 다스릴 리/이(理), 지날 과(過),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씨 위(緯)이다. 용례로는 액운이 지나감을 경겁(經劫), 약이나 세균 따위가 입을 통하여 몸 안으로 들어감을 경구(經口), 종교의 교리를 적은 글 또는 성인의 말이나 행실을 적은 글을 경전(經典), 경전과 그것의 해석서를 경전(經傳), 나라를 다스림을 경국(經國), 계속하여 그치거나 변하지 않음을 경상(經常), 두 지점의 정도의 차이를 경차(經差),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을 경학(經學), 현재까지 직업 상의 어떤 일을 해 오거나 어떤 직위나 직책을 맡아 온 경험을 경력(經歷), 경전을 실은 문장을 경문(經文), 인류가 재화를 획득하여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활동을 경제(經濟), 계획을 세워 사업을 해 나감을 경영(經營), 주로 회계 및 급여에 관한 사무의 처리를 경리(經理), 시비나 선악이 분간되는 한계를 경계(經界), 거치어 지나감을 경유(經由), 오장 육부에 생긴 병이 몸 거죽에 나타나는 자리를 경락(經絡), 경락에 있어서 침을 놓거나 뜸을 뜨기에 알맞은 곳을 경혈(經穴), 세사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함을 일컫는 말을 경세제민(經世濟民), 나라 일을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함을 일컫는 말을 경국제세(經國濟世), 세상을 다스려 나갈 만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세지재(經世之才), 온 세상을 다스림 또는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림을 일컫는 말을 경천위지(經天緯地), 학문은 실제 사회에 이바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유학의 한 주장을 일컫는 말을 경세치용(經世致用), 국사를 경륜할 만한 능력 또는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국지재(經國之才), 그때 그때의 처지나 형편에 따라 알맞은 수단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경달권변(經達權變), 세상을 다스려 나갈 만한 품성을 일컫는 말을 경세도량(經世度量), 스스로 목매어 도랑에 익사한다는 뜻으로 개죽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경어구독(經於溝瀆),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업을 일컫는 말을 경국대업(經國大業), 경학에 밝고 행실이 착함을 일컫는 말을 경명행수(經明行修), 자식을 위하여 황금을 남기느니보다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을 일경지훈(一經之訓),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등에 쓰인다.
▶️ 緯(씨 위)는 ❶형성문자로 纬는 간체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실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둘러싸다의 뜻을 가진 韋(위)로 이루어졌다. 직물의 날실에 휘감기게 한 씨실의 뜻이 전(轉)하여 가로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緯자는 '가로'나 '씨줄', '짜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緯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韋(다룸가죽 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韋자는 성(城)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발을 그려 넣은 것으로 '둘레'라는 뜻이 있다. 緯자는 이렇게 '둘레'라는 뜻을 가진 韋자에 糸자를 결합해 '실을 두르다'는 뜻을 표현했다. 여기서 '실을 두르다'는 것은 날실을 실패에 빙 둘러 감는다는 뜻이다. 緯자에서는 이것을 '가로 방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緯자는 실을 가로 방향으로 휘감는다는 의미에서 '가로'나 '짜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緯(위)는 ①씨, 씨줄 ②예언서 ③현, 악기(樂器)의 줄 ④가로 ⑤짜다, 만들다 ⑥묶다 ⑦구상하다(構想--) ⑧다스리다, 주관하다(主管--)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核(씨 핵, 씨 홀, 풀뿌리 해), 種(씨 종), 讖(예언 참) 등이고, 반의어로는 經(지날 경/글 경)이고, 통자로는 葦(갈대 위)이다. 용례로는 직물의 날과 씨 또는 경도와 위도 또는 사건의 전말이나 일의 내력을 경위(經緯), 적도에 평행하게 지구를 남북으로 재는 좌표를 위도(緯度), 피륙의 가로 건너 짠 실을 위사(緯絲), 궁성이나 병영을 호위하는 군사를 위병(緯兵), 지구상에서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지구의 극으로부터 등거리의 지점을 이은 가상의 선을 위선(緯線), 적도로부터 북쪽의 씨도를 북위(北緯), 앞일의 길흉화복의 조짐이나 예언 또는 그러한 술수의 책을 참위(讖緯), 미래의 일과 점술에 관하여 기술한 책으로 하도와 위서를 도위(圖緯), 은하 좌표상의 위도를 은위(銀緯), 신비스러운 내용을 실은 책을 비위(祕緯), 적도로부터 남쪽의 씨금을 남위(南緯), 천구 위에서 적도로부터 북이나 남으로 재어 나간 각거리를 적위(赤緯), 온 세상을 다스림 또는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림을 일컫는 말을 경천위지(經天緯地), 무武를 날실 문文을 씨실로 하여 나라를 짜낸다는 뜻으로 문무로써 나라를 다스림의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위무경문(緯武經文),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드는 길이라는 뜻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떳떳한 이치를 일컫는 말을 천경지위(天經地緯), 주나라 때에 길쌈하던 한 과부가 부족한 씨 걱정은 않고 주나라가 망하여 화가 자신에게 미침을 두려워하였다는 뜻으로 초야의 이름 없는 과부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대장부로서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이 없어서 되겠느냐라는 말을 이불휼위(嫠不恤緯) 등에 쓰인다.
▶️ 史(사기 사)는 ❶회의문자로 㕜(사)는 고자(古字)이다. 中(중)과 又(우; 손)의 합자(合字)로, 中(중)은 신을 모실 때 쓴 나뭇가지, 또 천문(天文)을 조사할 때 쓰는 계산용 막대이고, 又(우)는 손, 손에 가지다의 뜻으로, 나중에 천문이나 나랏일을 기록하는 관리라는 말에서, 기록, 역사의 뜻이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史자는 ‘역사’나 ‘사관’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史자는 口(입 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지만 ‘입’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또 史자를 中(가운데 중)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史자는 본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관을 뜻했던 글자였다. 사관들은 제를 지내거나 점을 칠 때 사용하던 주술 도구를 지니고 다녔는데, 史자는 그것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후에 사관이 임금의 언행이나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지금은 ‘역사’나 ‘사관’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史자는 이외에도 다양한 글자로 파생되어 있는데, 좀 더 자세한 내용은 使(부릴 사)자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史(사)는 (1)고려(高麗)의 침원서(寢園署), 제릉서(諸陵署), 사온서(司醞署), 공조서(供造署), 경시서(京市署), 선관서(膳官署), 장야서(掌冶署), 도교서(都校署), 전악서(典樂署)와 기타 마을의 구실아치 (2)신라(新羅)의 執事省, 兵部, 조부(調府), 京城周作典, 봉덕사성전(奉德寺成典), 창부(倉部), 예부(禮部), 승부(乘部), 사정부(司正部), 예작부(例作府), 선부(船府), 영객부(領客부(府), 위화부(位和府), 좌우이방부(左右理方府) 따위와 기타 각 마을의 하급(下級)의 벼슬아치. 위계(位階)는 대사(大舍)로 조위(造位)까지, 등의 뜻으로 ①사기(史記) ②역사(歷史), 기록(記錄)된 문서(文書) ③사관(史官: 임금의 언행을 기록하거나 국가의 공문서 작성을 맡은 사람) ④문인(文人) ⑤문필가(文筆家), 서화가(書畫家) ⑥화사(華奢)하다, 꾸밈이 있어 아름답다 ⑦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용례로는 역사에 정통한 사람을 사가(史家), 역사를 편수하는 관리를 사관(史官), 역사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사실(史實), 역사로 전하여 내려온 기록을 기초로 하여 쓴 전기를 사전(史傳), 간략하게 기술한 역사을 사략(史略), 역사의 연구 편찬에 필요한 문헌이나 유물을 사료(史料), 사초를 쓰던 신하를 사신(史臣), 사관이 될 만한 재능을 사재(史才), 사관이 역사를 기록하는 필법을 사필(史筆), 사서를 쓴 관계로 인하여서 입는 화를 사화(史禍), 역사적 현상을 전적으로 파악하여 이것을 해석하는 입장을 사관(史觀), 역사를 기록한 책을 사기(史記), 역사에 관해 적은 기록을 사록(史錄), 역사에 관한 주장이나 이론을 사론(史論), 역사의 개요 또는 그것을 쓴 책을 사요(史要), 역사 상으로 남아 있는 중대한 사건이나 여러 가지 사실의 자취를 사적(史蹟), 역사 상의 사실과 일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사화(史話),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을 여사(女史), 정확한 사실의 역사를 정사(正史), 민간에서 사사로 지어 엮은 역사를 정사에 맞대어 하는 말을 야사(野史), 역사가 있기 이전을 선사(先史), 거짓으로 꾸민 역사를 위사(僞史),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을 사학가(史學家),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시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사적지(史跡地),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재才 학學 식識의 세 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사유삼장(史有三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