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온이 영하 7.1도이다.
그야말로 공원에는 나 혼자뿐이다.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시간을 좋아하고 즐긴다.
두텁게 옷을 입었기에 빨리 걷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쌍둥이 손주 녀석 중, 사내 손주 녀석 이야기이다.
손녀는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나를 기피하지만, 사내 녀석은 다르다.
빨리 안아주지 않으면 소리를 질러댄다.
엄마나 할머니가 오라고 해도 오직 내 품에 있기를 원한다.
어쩌다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울며불며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곤욕을 치른다.
아내가 큰 손주 녀석을 목욕을 시켜달라고 한다.
허리가 부실해 씻기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렴! 씻겨줘야지! 내 제사를 지내줄 녀석인데!!"
이 녀석은 할머니를 훨씬 좋아하지만, 누가 더 좋냐고 물으면 똑같다는 말만 한다.
눈치가 100단이다.
녀석이 좋아하는 성장 비타민 드롭프스를 한꺼번에 두 통씩 사주는 할아버지를 무시할 수 없으렷다!
녀석을 씻기고 나니 곧 어둠이 올 시간이다.
3~40분 걸릴 거리라 해도 밝을 때 가는 게 좋다.
쌍둥이 손주 녀석의 시선을 피해 아내와 석별의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살그머니 나온다.
큰손주 녀석이 현관까지 따라니와 손을 흔든다.
기특한 녀석이다.
나오지 말라고 해도 언제나 현관까지 따라나온다.
한 번도 방 안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보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흐뭇한 기분을 안고 왔다.
아내가 만들어놓은 무청 시래기를 삶아 양념에 버무린 것으로 막걸리를 마신다.
건강을 생각해 가능하면 집에서는 막걸리를 마신다.
소주는 화학주라서 아무래도 막걸리가 더 나은 것 같은 생각에서이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좋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꼭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장인께서는 매일 됫병 소주 한 병을 드셨어도 97세까지 천수를 누리셨다.
적당한 술은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술이 술을 마신다고, 과음은 피할 수 없는 술의 속성이다.
내일 마실 것까지 네 병을 샀는데, 두 병을 마시니 한 병만... 딱 한 병만... 유혹이 일어난다.
'안 돼! 손주 녀석들 결혼하는 것까지 봐야지!'
'아니야! 장인처럼 증손주까지는 봐야겠지!'
정말, 장인께서는 증손주가 고등학교까지 다니는 것을 보시고 돌아가셨다.
장성한 손주까지 보아도 만족한 인생을 살았다고 보아도 좋을 우리네 인생 아닌가!
그렇지만 장인께서는 증손주까지 장성한 모습을 보시고 돌아가셨으니 호상 중 호상이다.
그런 모습을 보았으니, 내가 욕심을 낸다 한들 누가 주책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병으로 끝낸다.
그러니 새벽 4시에 일어나도 거뜬히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증손주를 보려면 일찍 결혼을 시켜야 하는데, 과연 녀석들이 결혼을 하려면 20년?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녀석이 결혼 적령기까지라면 29살?
그런데,,, 요즘 29살에 결혼을 하느냐 말이다.
서른 살에 결혼한 나는 노총각이라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아내는 23살이면 적당한 나이었다고 했던 시절 ㅡ
요즘은 평균수명이 늘어서인지 서른 살은 애기 취급을 하는 시대가 아닌가!!
지금 내 나이에 넉넉히 30을 더하면,,,,,,?
으악! 끔찍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수명이 짧은 원인 1위가 '스트레스'란다.
대개 '스트레스'는 직장이나 직업에 의한 것이 많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에게는 편한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일 일도 원만히 할 수 있고, 활력도 얻는다.
나는 요즘 활력이 넘친다.
집으로 들어오면 아내가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게다.
마주치는 순간부터 긴장감을 조성하는 여편네가 없으니 이 얼마나 천국이겠나!
"돈을 못 버네, 옷을 잘 못 입네, 양치를 제대로 해, 팬티는 매일 갈아입어라!"
"누구네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응응'을 한데, 누구네는 차를 바꿨데, 남편이 밍크코트를 사줬데!"
이런 소리를 듣지 않고 사는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가 아닐까!!
어젯밤에도 아내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내 얼굴이 보고 싶어서일까?
천만에 말씀!
내 위치를 확인하려 꼼수를 부렸다는 것을 내가 모를까?
거실에서 받으니 손주들 사진이 걸린 액자를 보았으니 의심을 거둔다.
말은 우한폐렴이 극성을 부리니 술집을 가지 말라는 말 ㅡ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동네 바람난 과부와 눈이라도 맞을까 노심초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의부증 때문이다.
이러니 내가 산속 자연인으로 가고 싶지 않겠냐 말이다.
평생을 우려먹었으면 이제는 놓아줄 만도 할 텐데, 이런 스트레스로 어찌 천수를 누릴까!
스트레스를 받아 남편이 빨리 죽어도 남과의 로맨스는 허락하지 못 한다는 뜻인가?
아무리 설득해도 믿지 않는다.
"돈 못 버는 사람은 연애 못해!"
"누가 나 같은 가난한 놈에게 연애를 하자고 할까?"
"요즘은 재벌 마누라도 돈 못 버는 놈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우리 친구 마누라들은,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 바람을 피라며 돈까지 준데!"
점심 시간이 오면 또 영상통화가 올 것이다.
내가 먹느냐 못 먹느냐가 아니다.
누구와, 어디서, 점심을 먹느냐가 중요한 관찰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혼자 라면을 먹으면 웃고, 식당에서 이웃 여자 중개사와 먹으면 죽음이다.
그래서 이제는 여자가 있으면 받지 않는다.
사무실로 돌아와 전화를 건다.
"전화했네?"
"왜 전화 안 받아?"
"아! 건망증! 전화를 두고 나갔다 왔어!"
"아니, 영업하는 사람이 전화기를 두고 다녀?"
"당신도 내 나이 먹어봐! 옛날 같으면 고려장을 열 번도 더 갔을 나이 아니야?"
.
.
"...........................................!!"
.
.
.
"내가 날마다 청춘인 줄 알아?"
"이젠 새벽에 텐트도 안 쳐!!"
"이젠 여자가 돌로 보인다고!!"
".....................................!!"
첫댓글 아직도 열혈 부인 있으니
좋은건가?
너무 좋아도 걱정
보기싫어도 걱정
세상살이 고해
의부증.. 의처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부사이라도 너무 과한 관심(?)은 좋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다가 손주들 거두느라 늘 바쁜 나날이겠거만 남편을 늘 그리 감시한다는건 남편을 신뢰를 떠나 아마도 아내분의 성격인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남자를 만나도 똑 같다고 하더군요
한번 의심에 필이 꼿히면 의심이 또 의심을 낳고 나이따라 그 고문같은 끈을 좀 놓아버리면 서로가 편해질텐데 ...
그래도
사랑과 관심이 있으니
영상전화를 합니다
부럽습니다
빙그레....
고맙습니다.
오, 남성들이여!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는 날'은 언제일까요?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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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병원으로 떠나는 날^^^^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