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보도부문 사장으로 손석희를 영입한 일에 대해서는 이런 분석을 했던 적이 있다.
http://murutukus.kr/?p=4459
그리고 급기야 JTBC에서는 손석희의 뉴스 9 에서 심상정 의원을 초대해서 삼성의 무노조 전략이 담긴 문서를 공개하는 보도까지 나오고 말았다.
손석희와 나란히 앉은 심상정, 뒷면에 삼성 로고가 보인다.
과연 이런 변화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종이신문의 몰락
단언해도 좋다. 우리 사회의 종이신문, 그 중에서도 메이저인 조중동은 망할 것이다. 최소한 지금 같은 규모의 거대한 미디어로 남아 있지는 못하게 된다. 심각한 변화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적으로도 전통적인 종이신문의 강자들은 하나하나 무릎을 꿇고 있다. 136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워싱턴 포스트 역시 닷컴의 강자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에게 인수되는 시절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요즘에 누가 종이신문 보나” 라는 단순한 문장 하나가 이들의 몰락을 기정사실화 해 주고 있다. 제프 베조스는 WP를 인수하면서 앞으로 종이신문은 일종의 럭셔리한 고급 상품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모두가 모니터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일부 상류계층이나 보수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유지되는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종이신문이 남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어차피 뉴스는 속도의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대량의 종이를 풀어 윤전기 돌려 찍어 배달차에 실려 배급소를 거쳐 아침마다 가정에 배달되는 종이신문의 성격상 그 속도에 있어서 인터넷과 경쟁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종이신문은 대중 매체의 선봉에 서 있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베조스의 예측은 매우 합리적이다.
우리 상황은 더 심각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서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릴 정도로 엄청난 신뢰도를 가지고 있었던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부수는 고작 50만부 수준이었다. 3억이 넘는 미국의 인구를 고려하자면 이 숫자는 정말로 작다.
인구 오천만의 남한 사회에서 조선일보가 180만부를 넘어가는 우리의 사정과 비교하자면 꽤 놀라운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저 수준의 발행부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WP가 매각될 정도라면, 조중동은 도대체 뭘 믿고 버티고 있단 말인가.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급속히 감소되는 와중에 조중동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광고의 힘이다. 그것도 광고효과를 위해 광고를 싣는 기업들이 있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광고 안 실어주면 자신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기사를 싣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울며겨자먹기로 돈을 내어놓는 부정한 기업들이 조중동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명실상부한 조폭언론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이대로는 얼마 못간다는 사실을 조중동 등의 메이저 종이신문들이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먼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종편 아니겠는가.
종편의 상황
하지만 종편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어차피 무너져 내리는 종이신문 보다야 낫기 때문에 조중동은 하나같이 사력을 다해 돈을 끌어 모아 종편 시장에 진출을 해 버렸다. 종편에 진출하기 위해 이명박 정권과 줄다리기를 펼쳤고, 이명박 정권은 이들에게 종편이라는 당근을 흔들면서 극단적인 친정권적 보도를 요구했고 이끌어 냈다. 그 여파로 인해 조중동은 극단적으로 수구화되어 버렸고, 동아 같은 경우는 아예 종편 설립 자금을 대느라, 자금난에 빠져 휘청거리고 있는 중이다.
거대한 지상파 방송이 버티고 있는 시장에 겨우 케이블 기반의 종편을 설립한다고 해서 조중동의 살길이 바로 열리지는 않은 것이다.
종편 역시 광고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가뜩이나 축소되어 버린 광고시장이 종편까지 먹여 살리는 것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살아남기 위한 조중동의 발악이 오히려 시장을 더 왜곡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가는 진짜 같이 망하게 될 판이다.
그러다보니 잔뜩 기대를 모으며 개국한 종편들의 시청률이 0.1%대의 애국가 시청률(지상파 방송에서 방송 마감할 때 나오는 애국가의 시청률이 저 숫자라고 한다.) 수준으로 드러나며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 집단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치적 입장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마감되면서 정치권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무척이나 중시하면서 권력의 힘으로 장악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던 정권이다.
그 결과 원래 친정권 적이었던 조중동은 기본이고, KBS, MBC 등의 지상파 방송까지 정권의 편으로 돌아서 버렸다. 이 과정에서 무척이나 많은 잡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언론의 수준은 수십년 이상 후퇴해 버렸다.
그 와중에 조중동이 만들어낸 종편은 어떨까? 그들이 별다른 차별적인 입장을 찾아낼 수 있을까? 지상파와 구별되는 색다른 방송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불러 모을 장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들은 무식한 길을 택했다. 지상파나 기존의 종이 신문에서 보기 힘들었던 수준으로 더욱 극단적으로 수구화 된 컨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사안들을 아예 보도라인에서 배제해 버린 지상파와는 달리 종편들은 동네 복덕방 노인네들 뒷담화 수준의 정치평론 방송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몇번이나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뒤집는 기괴한 보도를 내놓았고, 그로 인해 방송위로부터 경고도 무수히 먹게 된다. 518 광주 당시 북한군이 내려왔었다는 얘기 같은 전혀 근거도 없는 황당한 주장을 여과없이 내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과감하고 천박한 영업전략으로 인해 종편의 시청률은 약간 상승했다. 거기에 지상파 방송들이 완전히 정치 현안에 눈감아 버린 틈을 타서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켰던 면도 있다.
그러나 그 전략의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이 사회에 진보적 성향을 지닌 능동적인 참여자들은 작게는 3%에서 많아야 10% 전후밖에 안된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수구 성향을 보이는 시청자들의 비율도 그리 높지 않다. 많이 봐야 20% 미만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마련이다. 종편들은 시장의 선택을 잘못한 것이다.
제아무리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수구성향의 방송을 한다 하더라도, 그 시장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런 방송의 천박함에 대해 지식인들은 연일 성토를 하고 있다. 극단적인 수구성향을 지닌 노년층을 제외한 다수의 시청자들은 종편에 대해 “수준이 좀 떨어지는 방송”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고 정치에 무관심한 시청자들, 특히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은 M.net 등의 음악 방송으로 시선을 두지 종편을 보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종편들이 선택한 길은 “확장성”이 결핍되어 있는 시장이라는 얘기인 것이다.
JTBC의 차별화 전략
그 와중에 JTBC는 손석희를 영입한다. 수구적인 시청자들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청자 그룹에게 신뢰를 받고 있던 대표적인 뉴스 앵커이며, 엄청나게 긴 시간동안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는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출근길 시민들의 정보 공급처 역할을 해 왔던 손석희가 친정 MBC를 버리고 JTBC로 옮겨 타게 된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뉴스가 될 정도였다.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단 하나, 그저 그런 종편 중의 하나였던 JTBC의 성격과 손석희의 성격이 전혀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둘이 결합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충격은 컸고, 곧 이어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JTBC가 변할 것인가, 손석희가 변할 것인가.
언제나 그렇듯이 해답은 저 두가지 질문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현재로 봐서는 JTBC는 손석희에게 간판 뉴스 프로그램 뉴스9의 편성에 대해 전권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종편 뉴스와는 차원이 다른 편집으로 지상파 방송에 못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유일한 종편 프로그램이 손석희의 뉴스9이다. 지상파 방송에 비해 한 수준 떨어진다는 JTBC의 스텝들을 데리고 손석희가 거의 혼자 만들다시피 한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어떤 면에서는 이명박 정권이후 붕괴되어 버린 지상파 방송 보도국의 수준에 비해 JTBC의 뉴스9이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손석희의 뉴스 9에 심상정 의원이 나와 삼성의 무노조 전략을 담은 문건을 폭로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중앙일보에는 단 한글자도 보도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JTBC가 변한 것일까? 하지만 손석희의 뉴스9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JTBC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오로지 주 5회 평일 저녁 9시에 방송되는 그 프로그램 하나만 다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JTBC는 차별화 전략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후줄그레한 다른 종편들과 달리 참신하며, 정치적 중립을 위해 노력하며, 지상파 못지 않은 수준 높은 방송을 만들고 있다는 이미지를 위해, 황금시간대의 방송 한 코너를 통째로 잘라내어 손석희에게 맡겨 버렸다는 것이다.
그 전략으로 JTBC는 극단적인 수구성향의 시청자들이 노는 시장을 벗어나, 중도층, 나아가 진보성향의 시청자들의 관심까지 끌어 당기면서, 보다 넓은 시장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이나 동아의 종편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넓은 시장이다. 아마도 JTBC는 살아남을 것이고, 궤도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현대 사회는 무척 복잡한 사회이다. 누가 누구의 편인가를 따지는 단순한 관점으로는 이 복잡한 사회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JTBC가 우리편인가 아닌가를 놓고 백번을 고민해봐야 답은 안나온다.
JTBC는 자기들 편일 뿐이다. 조만간 다가올 종편 재심사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자기들만의 독보적인 시장을 형성해서 시청률을 높이고 실질적인 광고수주를 통해 수익율을 올려 생존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전형적인 영리기업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 따위는 별 관심없다.
아니 관심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기업인 것 처럼 이미지를 포장해서 시청자를 끌어 모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책임을 생각하는 척을 할 수 있다. 그게 기업의 윤리이다.
손석희가 JTBC에 가서 자신만의 색을 가진 방송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삼성도 비판하고 정부도 비판하고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들을 밝은 햇빛아래로 까발려 개선될 수 있도록 한다면 손석희는 훌륭한 언론인이다.
그러나 그런 의지는 어디까지나 JTBC의 기업적 이익과 부합하는 동안에만 현실로 발현될 것이다. 어느 순간, 손석희의 보도 태도가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드는 시점이 되면 손석희는 당장 보도 방식을 바꾸거나 물러나게 될 것이다.
이게 현재의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정치적 정의, 언론의 책무, 기자의 윤리, 이런 것들 모두가 자본의 이익과 부합될 때 발현되고, 자본의 이익과 충돌하게 되면 매장당하게 된다.
JTBC의 교활한 전략이 손석희의 태도와 맞물려 작동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고마운 일일 뿐이다.
누군가를 우리 편으로 상정하고 무조건 옹호하거나, 누군가를 적으로 상정해서 무조건 비난하는 그런 태도로는 이런 논리를 따라가기 힘들다. 힘들 뿐 아니라 그런 태도는 절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닌 것이다. 이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이 사회가 좀더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그 힘을 모아 일이 돌아가는 방식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교활한 JTBC는 그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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