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라토 ( Castrato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는 성경말씀을 잘못 해석한 중세 교회는 음악사의 한부분을 비극으로 만들었다.중세 암흑시대의 기독교는 종교뿐아니라 정치, 사회,예술의 모든 분야를 지배했고 종교의 부패와 잘못된 성경해석은 많은 비정서적인 사례를 남겼다. 그중의 하나가 여자들이 교회에서 큰소리로 노래하는것을 금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교회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밖에서도 여자들은 제한을 받았다. 16세기에 로마교황청의 시스틴채플에서 카스트라토(Castrato·남성거세가수 주로 소프라노)들이 활약했다는 기록이 있고, 카스트라토의 전성기 때인 18세기에는 이탈리아에만도 1년에 4천여 어린 소년들이 거세 되었다. 당시 정상급 카스트라토의 인기와 영화는 요즘 영화배우나 오페라 가수들을 능가할 정도다. 카스트라토는 젊은 사람들의 우상이 됐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 목소리는마치 외계에서 온듯한 신비감을 주었다. 음성이 좋은 어린 아들을 둔 가난한 부모는 아들을 카스스라토를 만들어 부귀를 누리려 했다. 작곡가 조셉 하이든도 음성이 좋아 카스스라토가 될뻔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거세를 면했다. 헨델은 그가 작곡한 46개 오페라중에서 적어도 16개를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었다. 모짜르트도 카스트라토에게 성악이론을 배웠고 또한 「이도메네오」등 여러 오페라에 카스트라토역을 작곡했다.많은 카스트라토의 이름들이 역사에 남아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가수가 몇년전 우리나라에 수입된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1705∼1782·예명 파리넬리)다. 원래 오페라 작곡가였던 헨델이 오페라를 그만두고 오라토리오작곡을 주로 하게된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파리넬리 때문이었다. 헨델이 고용한 카스트라토 「세네시노」가 라이벌 오페라회사의 파리넬리 인기를 따르지 못하는등으로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다. 로마교황청의 공식적인 입장은 소년들의 거세를 금했지만 시스틴채플에 카스트라토를 고용했다. 18세기 시스틴채플의 성가대 구성은 28명의 남자성가대원으로 4부가 각각 7명으로 되어있어 7명의 소프라노가 필요했다. 1810년대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카스트라토를 엄하게 단속하고 교회도 카스트라토의 고용을 제한해서 19세기말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1902년4월, 그라모몬의 「가이스버그가 로마교황청을 찾아갔다. 교황 리오 8세의 허락을 받아 시스틴채플의 성가대를녹음했다. 속셈은 성가대 지휘자이며 소프라노 솔리스트인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 1858∼1922)의 음성을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하마터면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을뻔했던 카스트라토의 음성이 음반으로 보존된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예일대학교 음대 「구노」의 「아베 마리아」등 17곡의 모레스키 음성이 담긴 CD를 시판했다
파리넬리는 누구 ?
파리넬리는 18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카스트라토일 뿐만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악가로 칭송받았던 사람의 이름입니다. 생존시에도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을 받았는데, 목소리가 훌륭했을 뿐만아니라, 예쁘장한 남자(?), 씩씩한 여인(?)의 모습을 두루 갖춘 반남반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파리넬리는 기교가 뛰어난 성악가였습니다. 목소리 자체가 극히 아름다웠음은 물론이었고 감정 표현이 완벽에 가까웠으며, 음역이 넓었고, 호흡 조절은 자유자재였다고하니 글자 그대로 당대 최고였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음역은 세 옥타브 반이었는데, 한 호흡으로 음표를 250개나 노래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한 음표를 1분 이상이나 쭈-욱 길게 노래했다고도 전하는데, 정말 대단하죠?그당시 일부 사람들은 파리넬리가 뭔가 특수장치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수근거렸답니다.그럼 이제 파리넬리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조목조목 소개를 하겠습니다. 본명: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출신:1705년에 나폴리의 안드레아에서 태어났습니다.당시 대부분의 카스트라토는 대부분 하층 계급 출신이었지만 그는 나폴리의 음악 一族으로서 알려진 소귀족 계급인 브로스키가의 출신입니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작곡했던 형 Ricardo와는 여덟살 터울이었습니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형이 아닌 파리넬리의 아버지가 거세를 시켰는데, 몹시 아팠던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데뷔: 1720년 톨렐라 군주의 궁정에서 스승인 Porpora(포르포라)가 작곡한 "Angelika and Medoro"로 데뷰했습니다 활동:나폴리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파리넬리는, 로마와 볼로냐를 거쳐 베니스의 San Giovanni Grisotomo 극장 공연을 마친 후, 1728년에 유럽 순회 공연 나섰고, "노래의 제왕"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1734년 런던에서 포르포라가 헨델의 오페라에 대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는데, 이면에는 파리넬리의 인기에 힘입은 바가 많았다고 합니다. 1736년 스페인의 펠립5세를 섬겨 정치적으로 중용되었는데, 평소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필립 5세는 파리넬리의 노래를 듣고나서 치유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옵니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그 당시 사람들은 카스트라토, 즉 거세가수의 목소리는 천사의 목소리를 닮았다고 생각하여 악귀를 불리치는 힘이 있다고까지 믿었다는군요 은퇴:1759년에 은퇴를 했지만 모짜르트나 글룩처럼 유명한 음악가들이 계속 그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귀향: 1760년에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사망:1777년에 볼로냐로 돌아와 1782년 7월 15일에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신은 볼로냐의 한 언덕에 묻혔는데,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훼손되어 지금은 무덤이 남아있지 않는다는군요. 사망후:스페인에서나 이태리에서나 파리넬리는 자선사업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죽으면서 전재산을 조카들과 하인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고 합니다.
카운터 테너 ( Contratenor) 카운터 테너란 음의 가성을 내는 남자가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 카운터 테너라는 용어는 르네상스 시대 다성음악(Polyphony) 에서 테너음역의 바로 윗 성부에 해당하는 '콘트라테노르 (Contratenor)'를 가르키는 것이다. 이 성부는 가성(Falsett o)을 사용함으로써 점차 여성의 음역에 가까워지고 현재 여성의 알토나 메조소프라노 음역에 해당하는 소리를 내게 되었으므로 음악사학에서는 그냥 '남성 알토(Male Alto)' 라고 부르고 또 프랑스에서는 오뜨-콩트리(Haute-contr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은 가벼운 하이(높 은)테너에게 붙이는 경우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기존의용어를 배제하고 소리내는 방식을 중요시하여 팔세티스트(Falsettist)라고 한다.
카운터 테너의 역사...
카운터 테너의 역사는 유럽 음악사와 전통 아랍 음악의 종교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 14장 34절에서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 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 볼 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라고 한것에 의해서 중세의 교회에서는 여자들의 교회 안에 의 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모하메드도 어느 날 한 남자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젊은 여자들을 현혹시킬 위험이있으니 크게 노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여러 상황 이 남성이 남성들 앞에서 혹은 여성이 여성들 앞에서 노래하는 경우를 제하고는 지금까지도 일부에서는 성별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연주를 제한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아마도 8세기경부터 가성(Falsetto)의 사용이 일반화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연주상에서 남녀의 구별을 뛰어 넘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서기 822년 술탄(회교도의 군주를 칭하는 말) 하룬 아르 라쉬드 시대에 당시의 유명한 가수 Ziryab이 당시 술탄의 지배하에 있었던 코로바도 (현 스페인 도시)에 와서 그 유명한 가성발성을 전하였고 이 기술은 트르바도르(당시의 방랑시인들)에 의해 다시 널리 퍼져 급기야는 로마 교황청에 근무하는 성악가들에게도 전해졌다. 당시 여성들의 교회 내의 음악활동을 금했던 상황에서는 이 발성법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도양질의 변화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600년 까지 가성이 거의 모든 성악 부문에서 압도적인 추세를 이루다가 사회의 구조와 상황의 변화에 의하여그역할은 카스트라토(Castrator, 남성 호르몬을 억제시켜 변성기 전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거세된 가수)에 넘겨졌다. Farinelli가 이에 속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훈련을 받아 음악이 영글은 데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남성의 신체적 특징(넓은 가슴, 단단한 성대등)에 힘입어 여자들이흉내내기 힘든 예술의 경지에 이른 그들의 발성법은 그 이후 오페라 혹은 오라토리오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였다.카스트라토가 비인간적인 방법에 만들어 진다는것 때문에 그들의 수는 점점 줄어 들었고 19세기에는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성당 합창단과 궁중에서는 옛날 가성 발성을 남자 어린이에거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 음악에 필요한 높은 성부를 담당하게 되었다.1922년 마지막 카스트라토였던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가 죽자 성인 남자 가수가 여성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그 어떠한 발성법도 그와 함께 사라진 것으로 여겨 졌으나 1940년대에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와 80년대의 아리스 크리스토 펠리스(Aris christofellis)등에 의해 가성 발성은 다시 그 아름다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독일 등의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바로크 오페라의 부흥은 이들 새로운 기성가수들인 카운터테너들에 의해 그깊이를 더해갔다.
|
첫댓글 거세의 유행(?)이 없었다면 유전학적으로 볼 때(무지하지만), 더 좋은 성악가들이 배출되었을텐데....솔직히, 카운터 테너를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별의 편견에 젖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테너와 바리톤이면 충분하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 파리네리의 노래를 누가 불렀는지 아시나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