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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죽변 국민학교 전경
블루웜(Blueworm)-18
제임스와 지영을 태운 회색 벤은 아테네 도심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30분을 달렸다. 거리는 조용한 것으로 느껴졌다. 거의 서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눈을 가리거나 하지 않았다. 벤의 유리창은 검게 코팅되어 있어서 밤의 거리가 침침하게 보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속에 도착한 곳은 의외로 광활한 잔디밭이 펼쳐진 프라이빗 에어포트였다. 멀리 격납고도 보였으며 그 건물 앞으로 8-9대의 경비행기가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검은 활주로에는 45인승 쎄스나가 날고 싶은듯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었다. 제임스와지영은 함께 온 4명에 둘러싸인채 11월 중순의 선선한 바람을 호흡했다. 격납고의 옆 건물에서 헷트라잇을 비추며 다른 벤이 이쪽으로 왔다. 벤 뒤에 어둠속에서도 알 수 있는 검은색 리무진이 도착하고 그 차에서 네명의 큰 키 사이에 밤에도 선명한 황색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장삼같은 초록색 천을 바람에 휘날리며 한사람이 천천히 비행기트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를 그 보다 조금 작은키의 남자와 여자가 따르고 있었다.
"제임스 아저씨. 저기 쿠르타이스 박사예요. 그리고 그의 비서."
"어떻게 알아?"
"어젯밤 파티장에서 그를 만날 때 그의 몸짓과 걸음걸이를 봤어요. 완전 팔자 걸음이었어요. 제가 아주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기억해요. 여자는 짐작이예요."
지영의 기억과 예리함이 맞았다. 황색터번과 쿠르타이스 일행이 비행기트랩에 올라 기내로 사라지자 아카보 총을 든 그들의 요원 4명이 제임스와 지영을 비행기로 몰았다.
"쿠르타이스 박사! 아직 술기운이 남아있을테니 도착 할 때까지 편히 주무셔도 됩니다. 그러나 도착 전에 도착해서 곧 한국에서 온 김 박사와 백신을 완료할 프로세싱 플랜을 완성하도록 하시오."
황색터번을 쓴 그도 말이 매끄럽지 못하였다. 몇시간 전에 마신 술들이 이제 한참 몸속에서요동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말을 마치자 옆에 대기하고 있던 총신이 짧은 머신건을 들고 호위하고있던 여전사를 대동하여 뒷쪽 침실로 사라졌다. 그 비행기에는 이미 키스와 벨리스가 함께 있었다. 그들도 자유스럽지 못해 보였다. 두사람이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 비행기안 후미쪽 의자에 키스와 벨리스가 앉아 있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지영이 그들을 먼저 발견하고 제임스에게 말했다.
"제임스 아저씨. 저쪽에 키스와 벨리스가 있어요."
제임스는 고개를 우측으로 돌려 보았지만 후미 좌석에는 좌우로 8명의 경호원들이 자리에 앉아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순간 두 사람은 자리를 뜬 것 같았다. 지영이 본 것이 맞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비슷한 사람을 본 것이다. 너무 예민해 졌구나."
지영은 분명 보았는데 지금은 다시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중동 사람들 얼굴 모습은 비슷하니까 착각했는가 보다 생각하였다.
비행기는 후미와 중간과 선미로 나누어 있었다. 후미에는 경호원들과 몇 몇 그들 요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키스와 벨리스가 그들과 같이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승객실 중간부분에는 탁자와 쇼파 두 셋트 그리고 60인치 티비가 중간부분의 어디에서든 볼 수있게 위치하고 있었다. 제임스와 지영은 그 중간에서 작은 쇼파에 앉아 있었다. 선미부분에는 조정석과 이층 메인 룸이 있을 것이었다. 비행기가 출발한 후 정상괘도로 들어가자 일렁임이 멈추고 순항하는 것 같았다.불이 켜지고 퍼~ㄹ 셔(persia) 계통의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보기좋게 묶은 검고 큰 눈을 가진 여성이 와서 메뉴를 두 사람 앞의 탁자 위에 두고 식사 전에 마실 것을 주문하라 하였다. 영어였다. 지영이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어딜 가고 있는거예요? 도착지가 어디예요?"
"저는 몰라요. 이 비행기는 퀘벡으로 갑니다."
여승무원이 좌우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캐나다 퀘벡?"
대답없이 여승무원은 스커트끝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서 갔다. 여승무원이 간단하게나마 도착지를 말해 주어서 생각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 비행기는 그들 전용기가 아니고 전세기임을 나타내었다.
지영과 제임스는 놀랐다. 퀘벡이라면 캐나다의 퀘벡이 아닌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캐나다인데... 그렇게 하루속히 돌아가길 바라든 곳을 이렇게 잡혀서 가다니. 지영은 허탈함에 패닉상태가 되는 것 같았다. 머리속에는 블루웜이 서울 도로를 꽉채우며 사르륵 소리와 함께 막 돌아다니고 있고 사람들이 우왕 좌왕하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지영이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급기야는 울고 말았다. 제임스가 옆에서 그런 지영의 손을 잡아 내리고 손바닥으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지영이 흐느끼며 제임스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제임스 아저씨. 어떻게해요. 어쩌면좋아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빈 손으로 돌아가다니요."
"지영아. 아직 그렇게 실망할 때가 아니야. 너가 잃어 버리지 않았다면, 백신을 만들 수 있는 핵심요소는 너가 가지고 있는거야. 저들이 누군지 몰라도 이 일에 관여하고 있다면 너를 함부로 하지는 않을거다.지영아-"
"네. 아저씨."
지영은 제임스의 냉정한 판단이 야속하였지만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바른 말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어요. 기전도 기억할 수 있어요.그러나 맛치의 미생물을 만나야 해요. 어머니가 토론토에 도착했는지도 궁금해요. 퀘벡은 토론토와 가깝잖아요? 우리가 토론토로 갈 수 있을까요?"
지영은 불안을 쫏아내려고 제임스를 향해 따발총을 쏘아대었다. 제임스는 한발도 피하지 않고 다 받았다.
"그래. 지영아. 우리는 지금 캐나다로가고 있는거야. 토론토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 아테네에서 퀘벡까지는 8000km이고 이런 비행기로는 약 10시간이 걸려. 아마도 맛치는 무사히 토론토에 도착하여 필요한 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도착하든 토론토로 가야하니 이제 잠을 좀 자두어야 한다. 그 기전을 잊지말고 잘 활용할 수 있게 머리속에 정리를 해두는 것도 좋아. 나는 너를 꼭 어머니에게 데려가야 돼. 그러니 어서 자도록해라."
지영은 제임스의 말이 큰 힘으로 가슴을 채우고 있음을 느꼈다. 혼자서 왔다면 이미 모든 일은 그르쳐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든든한 보디가드가 옆에 있으니 어쩧든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머리를 제임스의 가슴에 묻고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더 물어 볼 것이 있는데... 지영은 쌕쌕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너무 젊어요' 하듯이.
제임스는 그의 가슴에 안겨 곤히 자고있는 지영을 본 후 머리를 의자 뒷받침에 대고 눈을 감았다. 이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이들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며 블루웜과 어떤 관계인가. 키스와 벨리스는 어떤 관계로 그들과 함께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가. 이들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인가.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지영이와 함께 데려가는가. 쿠르키우스 박사는 어떤관계로 그들 조직에 합류하여 같이 가는가. 그가 기억해낸 헤즈볼라와 알 카에다 그리고 지하드의 심볼을 합친 것 같은 새로운 심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연 지영이를 무사히 김선애 앞에 데려갈 수가 있을까? 그도 스스로의 물음에 대답을 만들지 못하고 스스르 잠속에 빠져버렸다.
31.
"쿠르키우스 박사. 저 아가씨가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요?"
"저의 기전을 이미 완전하게 분석했을걸로 짐작합니다. 그러나 저도 뭔가 부족하여 만들지 못한 기전을 김 박사가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쿠르키우스 박사의 말을 듣고 있던 황색 터번이 물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말했다.
"당신이 저 아가씨. 아니지. 뭐라고? 김 박사? 그 김 박사와 함께 레디슨(Radisson)에서 백신을 만들어 완성하도록 하시오. 3일내 KE363을 이용하여 완전한 백신을 만들어야 하오. 3일간의 시간을 주겠오."
그는 좌측 창가의 쇼파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40대 중반의 두 사람을 보며말했다.
"당신 부대는 곧 바이어와 접촉하도록 하시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든 40대의 남자가 고개를 들고 황색터번을 보며 말했다.
"옛서. 회장님. 현재 각국에 있는 복수의 바이어와 접선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실 말씀은?"
그는 회장으로 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기다렸다.
"늦어도 3일안에 백신을 공급받기 위하여 대금을 입금하라고 하시오. 우리는 일단 KE373의 공급을 중단하겠오. 그것은 zanara 계획의 잠시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요. 백신의 발현이 완성된 후 우리는 백신의 기전을 쌤플과 함께 보낼 것이요. 각 국에 한번씩. 그들이 기전으로 백신을 직접 만들 것이고 알아서 공급할 것이오. 우린 쌤플과 백신의 기전 제공까지요. 더 없오. 알겠오?"
회장 우측 옆 소파에 앉아 있던 검은 턱수염을 10cm정도 길이로 더부룩하게 기른 중년의 중동계 남자가 플레인 그린 군복에 부착된 방한모를 벗어며 톤이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장군님."
전혀 장군같이 보이지 않은 잘생긴 남자에게 다만 군복을 입었다고 그렇게 부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는 회장보다 먼저 결정하여 명령하였다. 회장과 그가 개인침실로 들어가자 쿠르타이스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인 클라라는 쿠르타이스 박사와 같이 회의실을 나오다 그가 불러서 다시 들어가고 혼자서 계단을 내려와 중간에 섰다. 그도 중간에서 머물어야 한다. 중간에는 특별히 개인침실은 없다. 발을 올려놓거나 팔을 편하게 올려 놓거나 티비를 보거나 등받이를 제치고 길게 눞거나 할수 있는 좌석이 두개가 한조로 우측에 2개가 있고 그 앞에 반원형 우유빛 가죽쇼파가 있었다. 좌측에 일인용 좌석이 4개 나란히 있었다. 그때 지영은 제임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자고 있었고 제임스는 지영의 머리에 얼굴을 올린 채 자고 있었다. 쿠르타이스는 그들 뒤 일인용 좌석 마지막에 앉으려고 가다가 약간 벌어진 커튼 사이로 후미를 보고는 돌아서 다시 앞으로 와 첫번째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보았다. 우측의 둘은 자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Excuse me."
제임스는 말소리에 눈을 떳다. 앞에는 여 승무원이 서있었다. 제임스는 의아해하며 긴장한 채 지영이를 먼저 찾았다. 제임스의 어깨에 머리를 둔 채 어린아이같이 아직 쌔근 쌔근자고 있었다. 그는 승무원을 올려다 보았다.
"두사람의 여권을 주시겠어요. 캐나다 입국수속을 해야합니다."
그는 놀랐다. 아직 운항 중인데 벌써 캐나다에 도착하였단 말인가.
"캐나다에 벌써 도착하였습까? 여긴 아직 기내인데?"
"저희가 입국수속을 한 후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특별한 소지품이나 문제가 없다면 좋겠습니다."
"아. 저희는 문제나 특별하게 신고해야할 소지품은 없습니다."
그 때 지영이 잠에서 깨어나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제임스 아저씨. 벌써 캐나다에 도착한다는 거예요?"
"아직 아니야. 입국절차를 위하여 여권이 필요하다고 하니 찾아봐."
지영이 한손으로는 머리칼을 매만지며 한손으로는 빽팩을 뒤져 여권을 찾아 주었다.
"이런 여권은 처음보네요. 참 아름다워요. 어느나라 여권이예요?"
여승무원은 신기하다는 듯 지영의 여권을 살펴보았다. 그것이 첨단 전자기기의 나라 한국의전자 여권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자여권이예요. 그 여권 속에는 전자칩이 내장되어 있고 그 내장된 전자칩 속에는 개인정보가 다 들어있어요. 전자여권답게 디자인을 특이하게 하여 캐나다와 다른 나라에서 발행되는 전자여권과는 달라보이지요."
그녀는 제임스의 캐나다 전자여권과 김지영 박사의 특이한 대한민국발행 전자여권을 받아 돌아갔다. 이건 인질(kidnapping)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스에 여행갔다 캐나다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뭔가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은 불안함을 떨칠 수가없었다. 지영이도 잠이 깨어 밖을 내다보며 그제서야 한가한 상황이 아님을 느낀 지영이 불안해 하였다.
"제임스 아저씨"
"지영아. 제임스든 아저씨든 하나만 불러라. 너무힘들겠다. 왜?"
"그럼 제임스로 부를래요. 제임스-"
“그렇게 간들어지게 부르지말고 하던대로 해라. 응. 지영아."
"어휴. 뭐가 이렇게 힘들어요. 할말 다 잊어버렸어요."
"아. 미안해. 천재 박사께서 잊다니 그럴 수는 없지. 어서 말해봐."
"어이구- 분위기하고는...요. 저가요. 제임스에게 눈아래 펼쳐진 하얀 벌판이 눈인지 얼음인지 놀라서 물으려 했단말예요. 그런데 아저씨가 분위가 팍 깨어버렸어요. 저러니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까요?"
"김선애!"
"어이쿠. 엄마는 눈에 뭐가 쒼게 틀림없어요."
제임스는 지영이 말을 듣지않고 몸을 창가로 기우려 밖을 보았다. 시야는 이 얼어버린 호수에 덮힌 눈으로 천지사방이 하얗게 보였다.
"벌써 호수가 얼고 그 위에 눈이 하얗게 덮혔구나. 저런 눈벌판에서는 스키두를 타야 제격인데... 김지영 박사는 스키두 타봤어?"
"아휴- 제임스. 제가 여장부나 되는줄 아세요. 저는 저런 광활한 눈벌판에서는 못타보고 블루마운틴 스키장에서 잠깐 타는 것 배워본 적은있어요. 제임스는 요?"
"겨울이면 가끔 심코호수에서 즐겼지. 육지에서 타는 것과는 또 달라. 신호등도 없고 중앙선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어서 거칠 것 없이 겨울 공기 속에 스피드를 즐길 수 있어서 눈 온 겨울에는 아주 좋지. 내가 김지영 박사를 가르쳐 태워 줄 기회가 있을려나. "
"아흐- 좋겠다. 제임스. 우리 토론토로 돌아가면 꼭 스키두 타 봐요. 제임스하고 같이 타보고 싶어요."
"김선애는?"
"ㅎㅎㅎ 엄마? 놓치지 않고 따라 올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