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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진민정 작성일: 2013-09-04 카테고리: 미디어
이 글은 진민정의 박사논문인 [인터넷 시대의 아마추어 저널리즘: 공중의 환상인가 혹은 자유로운 표현의 장인가?]을 바탕으로 2013년 8월 20일 한국언론정보학회에서 행한 발표를 발췌, 보충, 편집한 것입니다. (편집자)
2004년, 미국 시민 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댄 길모어는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게 느껴지는 구호를 제목으로 책을 펴낸다. 제목은 ‘우리가 미디어다’(We the Media, 2004)였고, 책은 당시로써는 이례적으로 CC라이센스(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를 채택했다.
2006년,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는 여느 해와 같이 ‘올해의 인물’을 뽑는다. 타임지가 뽑은 2006년을 상징하는 인물은 거물 정치인도 아니고,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도 아니었다. 그 올해의 인물은 바로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 바로 당신이었다. “네, 당신이요. 당신은 정보화 시대를 지배합니다. 웰컴 투 유어 월드.”
2000년 2월 22일 2시 22분.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게릴라’들. 그들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미디어’라는 고지를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9개월에 불과했다. 이제 드디어 무수히 많은 이름없는 시민이 스스로 미디어임을 선언하고, 미디어의 객체가 아닌 미디어의 주체임을 자각했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인터넷,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월드 와이드 웹이 있었다.
1989년, 팀 버너스-리가 월드 와이드 웹으로 명명한 거대한 인터넷망은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저널리즘의 정체성과 지형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 그저 인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인식의 토대가 전면적으로 그 이전과는 달라졌다. 그런 변화를 사람들은 흔히 ‘혁명’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은 혁명 그 자체였다.
인터넷 혁명과 결합한 시민의 자각은 ‘아마추어’ 저널리즘의 확산을 가져왔고, 그 움직임은 전통 미디어 독점 시대를 마감시켰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마추어 저널리즘은 진정한 시민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장이 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답은 부정적이다.
기성 저널리즘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온 인터넷은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진화가 곧 진보는 아니다. SNS와 결합한 모바일 시대, 아마추어 저널리즘은, 기성 저널리즘이 그랬듯,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마추어 저널리즘, 특히 시민 저널리즘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이 위기의 정체를 직시하고, 그 원인을 되돌아 살필 필요가 있다. 먼저 아마추어 저널리즘은 어떤 개념인가.
시민 저널리즘, 풀뿌리 저널리즘, 참여 저널리즘, 아마추어 저널리즘 등 다양한 명칭들로 불리고 있는 이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주1).
루소(J-J Rousseau)는 시민을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표현하는 본질에서 정치적인 존재”라고 규정했고, 사회학자 파트리스 플리쉬(Patrice Flichy, 2010)의 개념 규정에 따르면아마추어는 “자신의 활동 분야를 선택해 자유롭게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만족을 위해 대응하는 존재”다.
이런 개념 구별을 수용해 이 글에서는 ‘비직업 기자가 주로 인터넷을 매개로 수행하는 모든 저널리즘 행위’를 아마추어 저널리즘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시민(참여) 저널리즘은 아마추어 저널리즘의 한 특수한 형태로 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공공 이익과 관련된다. 그러면 인터넷 시대의 시민 저널리즘은 어떤 과정으로 겪으며 성장했는지 살펴보자.
한국은 그 어느 곳보다 인터넷 이용자의 정보 생산이 활발한 나라다. 군부 독재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억압했던 엄혹한 상황은 반대급부로 자유에 관한 갈망을 억눌린 가슴 속 깊이 잉태시켰다. 더불어 정치권력, 자본권력과 담합한 기성 언론은 시민적 자각과 더불어 그 정치적 반작용을 강화했고, 1990년대부터 정부가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한 정보 인프라의 확대는 한국 사회를 그 어느 사회보다 정보통신 기술과 친한 사회로 만들었다.
이런 정치적이고, 기술적인 배경에서 태어난 전 세계 시민 저널리즘의 상징이 바로 오마이뉴스다. 오마이뉴스의 성공은 수많은 신생 뉴스 사이트의 창간으로 이어졌고, 이슈투데이(2000), 민중의소리(2001), 프레시안(2001) 등이 이 시기에 창간한다. 이후 인터넷 언론은 양적으로 팽창해 2013년 현재, 3,200여 개의 인터넷 신문이 등록된 상태다.
그리고 시민 저널리즘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블로그’다. 오마이뉴스가 시민 저널리즘이 조직화한 형태라면, 블로그는 민주주의의 맹아이자 기본 단위로서의 개인주의가 미디어로 표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블로그 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1인 미디어 시대가 개막한다.
1999년 도입된 블로그는 2003년 이후 급속하게 대중화한다. 네이버와 다음이 이 시대적 흐름에 합류했고, 블로그 전문 사이트 이글루스(2003)가 출범했으며, 독립 설치형 블로그 툴을 제공했던 오픈소스 태터툴스(2004)가 등장한다. 그리고 2003년 7월, 드디어 ‘천만 블로거’시대가 개막한다.
블로그를 한데 모아 서비스하는 ‘블로그의 광장’ 역할을 한 메타블로그는 블로그 영향력 확대에 기여했다. 대표적인 메타블로그인 블로그코리아(2003), 올블로그(2004), 블로거뉴스(2005)가 차례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블로그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이들은 전통 미디어와는 다른 대안적인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정보 공급자로서 기존 언론의 독점적인 지위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한국의 시민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사건. 바로 촛불이다. 2002년부터 한국의 시위 문화는 광범위한 인터넷 망을 이용한 ‘촛불 시위’라는 형태로 진행됐다. 특히 2008년 촛불 시위는 시민이 더 이상 단순한 뉴스 수용자가 아니라 새로운 뉴스 생산자의 지위로 올라섰음을 보여줬다.
촛불 시위 기간 동안 포털 포럼 사이트인 다음 아고라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촛불의 발원지이자 주된 토론 공간이었던 아고라는 시민운동에 합법성을 부여하면서 여론을 주도했다. 이용자 스스로 개방적 플랫폼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활발하게 소통하며, 기성 저널리즘이 생산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콘텐츠까지 생산해 낸 촛불 시위의 체험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가 없는 시민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다음 아고라는 촛불 시위의 온라인 발원지이자 중심적인 토론장 역할을 했고, 비정치 성향 사이트를 망라한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촛불을 크게 확산시켰다. 휴대화된 디지털 영상 기기와 관련 서비스들이 촛불 콘텐츠의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기여했으며, 하이퍼텍스트링크로 연결된 무수히 많은 블로그들은 촛불이라는 거대한 정치 담론을 그 뿌리까지 미시적으로 연결시켰다.
촛불 시위는 기본적으로 ‘이명박 탄핵’,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구호로 상징되는 정치 운동의 성격이 짙지만, 한편으로는 기득권 세력만을 옹호하는 기성 보수언론에 대한 반대를 표출하는 대안적 미디어 운동으로서의 성격 역시 겸유한다. 촛불을 상징하는 ‘느슨한 연대’, ‘수평적 네트워크’, ‘자발적 참여’는 웹 2.0의 가치를 함축하는 ‘개방’, ‘참여’, ‘공유’의 정신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이 일치는 우연이 아니다.
촛불 시위가 뚜렷한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는 사이 포털은 그 영향력을 점점 더 확대했다. 네이버와 다음의 뉴스 서비스 강화는 뉴스 소비를 포털에 집중시켰다. 탈미디어적인 뉴스 소비 흐름 속에서 디지털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주류 언론들은,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독자를 유인하기 위해 포털에 뉴스를 파는 여타의 군소 뉴스 사이트처럼 단순한 콘텐츠 제공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9년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이미 약 96%의 네티즌이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었다.
한편,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각국의 언론 그룹들은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봉착했다. 프랑스에선 유력 경제일간지 라트리뷴(La Tribune)은 재정난에 허덕여 종이신문을 폐간했고, 오랜 전통의 프랑스수와(France Soir)는 신문 발행 중단에 이어 파산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광고 시장의 이동이다. 인쇄매체로서 신문과 잡지는 더 이상 광고주에게 매력적인 매체가 아니었다. 그렇게 인쇄매체를 떠난 광고주들은 인터넷에 상품을 광고하기 시작했고,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으며, 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주2).
신문에 관한 신뢰의 위기 또한 심각하다. 1987년 6.29 선언 직후 56.2.%로 정점을 찍었던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서 신문의 위상은 2011년 11.8%까지 떨어졌다. (아래 인용한 자료에서 6.29 선언이 1988년이라고 적시한 것은 오류입니다. 편집자 주)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은 포털 등의 인터넷 미디어나 아마추어 저널리즘의 확산이 신문의 위기를 만들어낸 주범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문제는 외부 환경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언론사 내부에 그 원인이 내재되어 있으며, 그 주된 원인으로 뉴미디어 전략의 부재를 말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은 뉴스의 가장 중요한 유통 수단이 되었지만, 언론사들은 디지털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주3).
절대다수 독자가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상황에서 트래픽 지상주의에 빠진 한국의 온라인 신문들은 통신사가 배포하는 그 날의 주요 뉴스를 손쉽게 편집하거나 포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반응하면서 무의미한 기사를 양산했고, 네이버 뉴스캐스트를 통해 유인되는 독자를 상대로 미끼 제목 낚시질에 매진했다. 그렇게 언론사가 스스로 네이버 의존성을 키우면서 매체로서의 물적 독립성과 저널리즘 구현을 등한시했던 대가는 혹독했다. 언론사의 미끼 제목 경쟁이 도를 넘자 네이버는 기존 뉴스캐스트를 ‘뉴스스탠드’로 개편했고, 온라인 신문에 유입되는 트래픽은 그 즉시 급속하게 감소했다.
언론이 독자의 기호에 맞는 정보만 생산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미끼질만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노스웨스턴 대학의 파블로 복즈코우스키(Pablo Boczkowski, 2010)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인 것처럼 내가 소비하는 정보가 곧 나다. 사람들이 영양가 없는 흰 빵을 선호하는 것처럼 대다수 독자의 정보에 대한 기호는 스포츠, 오락, 잡보기사에 집중되어 있다. 언론이 이런 기사에 주목한다면 사회적 혹은 정치적 쟁점들은 결국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물적 기반으로 작용하는 시민의 대화 공간, 즉 공론장을 확대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도미니크 까르동(Dominique Cardon, 2010)은 인터넷이 일반적인 공론장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은 새로운 형태의 공유와 의견 교환을 가능케 했고, 이 독특한 공간 안에서 대중의 토론 양식을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공적 토론 참여는 민주적 토론 공간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적 공론장은 정부의 인터넷 규제 시도로 축소하고 있다. 2008년 촛불 정국 이후 이명박 정부는 인터넷 정화를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강력한 인터넷 규제 법안들을 도입했다. 익명성이 악플과 정보 왜곡을 양산한다는 이유로 도입되었던 인터넷 실명제의 적용 범위를 확대했고(주4), 포털의 불법 정보 모니터링을 의무화했다. 최진실의 죽음 직후에 졸속으로 추진된 사이버 모욕죄 도입 시도는 수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정부의 인터넷 규제는 인터넷 게시글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9년, 정부는 불법다운로드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소위 ‘삼진 아웃제’라 불리는 저작권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많은 네티즌은 이 조치가 여론 형성에 있어 점점 그 역할이 커지는 포털과 블로그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라 반박했다.
사실, 한국 인터넷 규제의 독특한 점은 규제 대부분이 포털을 통한 간접규제라는 점이다. 그러나 포털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정보 유통과 콘텐츠 생산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 서비스 및 모바일 앱 규제를 선언하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SNS마저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트위터 아이디 @2MB18nomA에 대한 방송통심심의위원회의 심의 결정은 “행정기관이 표현물 내용을 규제하는 건 검열”(프랑크 라 뤼, UN 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이라고 비판받았고, ‘웃자는 데 죽자고 덤빈다’는 말처럼, 북한 정부에 대한 조롱과 패러디에 재갈을 물린 ‘박정근 사건’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단계와 맞지 않은 구시대적 악법”(국경 없는 기자회)인 국가보안법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시민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현실을 보여줬다.
모바일 대중화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보다는 SNS를 중심으로 정치적 표현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과도한 규제와 처벌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억압하는 ‘빅 브라더’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빅 브라더의 악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 30% 지역에서 자유로운 인터넷 접속 불가능하고, 60여 개 국가에서 인터넷 검열 존재하며, 한국과 호주 그리고 프랑스는 국가에 의해 ‘감시 중’인 나라로 분류된다(국경 없는 기자회 보고서, 2010).
2009년 1월 미네르바의 체포 이후 인터넷 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이용자의 숫자는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네티즌의 자기 검열 현상은 크게 확산하는 추세다. 자유로운 표현 공간으로 여겨졌던 인터넷은 점점 더 권력의 감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프리즘 사건은 이를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건 빅 브라더만은 아니다. 20세기 최고의 미디어학자로 평가받는 닐 포스트만은 올더스 헉슬리의 [달콤한 신세계](Brave New World, 1931)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1984년이 다가왔고 (조지 오웰의) 예언이 들어맞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조지 오웰의 암울한 예언 옆으로 또 다른, 약간 더 오래되고 약간 덜 알려진 어두운 예언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오웰은 외적으로 우리를 압제하는 세력에 의해 우리가 지배당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반면 헉슬리의 혜안은 사람들에게서 개인의 자주성, 성숙함, 그리고 역사성을 뺏는 데는 빅 브라더 같은 사람이 필요 없다고 내다보았다. 바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에게서 생각할 능력을 빼앗아 간 테크놀로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오웰이 두려워했던 것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할 것을 두려워한 반면, 헉슬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망칠 것을 두려워했다.
- 닐 포스트만,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 1985) 서문 중에서 (번역: 아거)
신진 학자인 에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 2012) 역시 젊은 인터넷 이용자가 사이버 액티비즘보다 사이버 쾌락주의에 더 이끌린다고 지적한다. 이제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이끄는 동력이 되기보다는 또 다른 민중의 ‘아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콘텐츠 시장에서 뉴스 미디어가 생산하는 뉴스 콘텐츠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웹사이트와 수백 개의 케이블 채널들이 영화, 비디오게임, 오락물, 포르노그래피 등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콘텐츠들을 제공하고 있고 바로 이들이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김영욱, 김광호, 2010).
사실, 오늘날 문화산업을 지배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오락이나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유희성을 강조한 자극적인 콘텐츠에 집중한다. 손바닥 안 스마트폰으로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뉴스를 접할 수도, 게임이나 오락물을 접할 수도 있다. 물론 이용자는 뉴스보다는 주로 개인적인 소통과 실용 정보, 오락 기능이 있는 앱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전통 뉴스 매체에 적대적인 환경은 뉴스 매체 스스로 자신을 오락적이고, 선정적인 정보 제공에 연연하게끔 한다. 여기에 더해 진화한 시장 환경에 적응한 다수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는 독자의 구미에 맞는 수많은 연성 콘텐츠를 생산함으로써 이런 현상을 가속한다. 모바일과 결합한 SNS와 메시지 서비스의 생활화는 편리하고 빠르지만, 의미 없는 정보, 때로는 잘못된 정보가 양질의 정보보다 더 가시성을 갖는 ‘즉시성’의 사회를 만드는 중이다. 점점 더 속도를 더 하며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앞에서 독자는 이제 생각할 여유마저 빼앗긴다. 끝없이 정보를 받아먹지만, 정보의 영양실조를 호소하는 ‘정보의 역설’ 현상이 무한 반복한다.
진화가 곧 진보는 아니다. 모바일 시대로 진화하는 디지털 저널리즘은 초기 인터넷의 이상을 현실화하고 있는가? 커뮤니케이션 기술 혁명을 통해 디지털 민주주의는 가능할 것인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상업적 이익을 멀리하고, 디지털 세계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인터넷 선구자들, 그리고 수많은 익명의 오픈소스 개발자 덕분에 인터넷은 ‘한 때’ 창조와 혁신, 그리고 연대와 공유의 공간으로 상징됐다. 거의 십 년 동안 한국의 네티즌은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했다. ‘이름 없는’ 수많은 네티즌은 포털 블로그 서비스나 뉴스 기사의 댓글 공간, SNS에 ‘공짜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왔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이처럼 이용자가 제공한 정보에 기반한 경우가 허다하다. 포털과 SNS 서비스 대부분은 이용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에 거주하는 수많은 네티즌의 ‘참여’ 덕분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엘 포시옹(Joel Faucilhon, 2010)은 ‘참여의 환상’을 지적한다.
“(이러한 사이트들을 이용하면서) 인터넷 이용자들은 집단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몇몇 거대 기업들의 콘텐츠를 풍성하게 하는 자발적인 ‘봉사자’들일 뿐이다”
오래전부터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서비스는 웹의 많은 블로거와 미디어 활동가에 의해 비판받았다. 대형 포털에 의해 ‘가두리 양식장’이 되어버린 한국 인터넷 생태계가 인터넷의 진보를 막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는 이제 전 세계를 수렴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급속하게 진화하는 모바일 환경 속에서 ‘옛날이야기’처럼 현실감 없이 들린다.
아마추어 저널리즘 활동은 수많은 새로운 뉴스 매체들을 양산했고, 전통 미디어의 독과점 시대를 마감했다. 하지만 마케팅 논리가 주도하는 현실 속에서 아마추어 저널리즘은 점점 더 무비판적으로 일상화하고, 도구화한다. 여전히 계속되는 포털의 온라인 지배는 전통 미디어의 위기뿐만 아니라 정보의 미래까지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각종 인터넷 검열과 규제 장치들은 네티즌의 자기 검열을 은연중에 내면화한다. 모바일 시대는 속도와 편리를 가져왔지만, 정보를 파편화하고, 성찰을 증발시켰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시민은 ‘참여의 환상’ 속에서 자신 만의 물적 온라인 근거지를 버리고, 거대한 SNS 제국의 자발적인 ‘봉사자’로 열심히 경쟁적으로 순응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토록 ‘달콤한 신세계’에서 시민 저널리즘의 영토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민 저널리즘의 토양으로서 아마추어 저널리즘은 혁신의 잠재력을 거세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1. 애초에 시민 저널리즘은 현재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시민 저널리즘의 기원을 ‘공공 저널리즘’에서 찾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 팽배해있던 언론과 정치인에 대한 공중의 불신에 맞서 몇몇 도시에서 일부 신문사를 중심으로 시민과 언론을 다시 연결해보려는 취지로 새로운 저널리즘 실험이 시작됐다. 이 실험을 뉴욕대 제이 로젠 교수는 공공 저널리즘이란 표현을 사용해 정의 내렸으며 미국 저널리즘의 자성을 촉구하며 저널리스트들이 시민의 일상적인 문제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
3. 인터넷 뉴스 미디어의 뉴스 생산 및 유통구조가 왜곡돼 있어 온라인 저널리스트가 저널리스트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김위근, 2012).
4.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는 2007년 7월부터 2012년 8월 위헌 판결로 사실상 폐지될 때까지 시행됐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팀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 제한적본인확인제 시행에 따른 게시판 내 글쓰기 행위 및 비방과 욕설의 변화를 중심으로’(2009. 11.)에서 실명제 효과를 조사한 바 있다.
위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 실명제는 “자신의 글을 스스로 삭제”하는 자기 검열을 강화했고(시행 전 삭제글 비율27% → 시행 후 39.5%), 악플은 다소 감소했지만(시행 전 5.1% → 시행 후 2.1%) 게시글은 약 70% 감소(시행 전 1,319건 → 시행 후 399.7건)했으며, 댓글은 약 50% 감소(시행 전 4,259.5 건 → 시행 후 2,156.4 건)했다.
우지숙 교수는 연구에서 “실명제가 비방과 욕설 감소 목적을 달성한다 하더라도, 이 제도로 인해 이용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절대량이 적어지고 참가구성원이 달라지며 의사소통 내용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결론에서 밝혔다.
참고문헌
BOCZKOWSKI Pablo, News at Work. Imitation in an Age of Information Abundance,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2010, 272 p
CARDON Dominique, La democratie d’Internet, Promesses et Limites , Paris : Seuil, 2010, 102 p
FAUCILHON Joel, Reveurs, marchands et pirates : Que rest-t-il du reve de l’internet ? Paris: Passager Clandestin, 2010, 160 p
FLICHY Patrice, Le sacre de l’amateur : Sociologie des passions ordinaires a l’ere numerique, Paris : Seuil, 2010, 96 p
GILLMOR Dan, We the media, Grassroots Journalism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New York: O’Reilly, 2004, 299 p
ROSNAY Joel de, La revolte du pronetariat, Paris : Fayard, 2005, 250 p
MOROZOV Evgeny, The Net Delusion: The Dark Side of Internet Freedom, New York: PublicAffairs, 2012, 428 p
김사승, 뉴스 블로그의 성격에 관한 분석, ‘언론과학연구’(한국지역언론학회), 6(2), 2006, pp. 113-148
김영욱, 김광호, 뉴스미디어의 미래: 델파이 조사와 시나리오 기법을 통한 탐색, 서울 : 한국언론진흥재단, 2010. 219 p
김은규, 인터넷과 시민참여 미디어: 오마이뉴스의 성과와 과제, 동서언론 제9집, 2005,12, pp. 325-350
김은미, 김경모, 김예란, 임영호, 저널리즘의 미래 변화, KISDI, 2007, 238 p
김익현, 뉴스 공론장으로서 블로그의 가능성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논문, 2008
김위근, 온라인 저널리즘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노동, 한국정보학회,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57호, 2012.2, 7-32
우지숙,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 제한적본인확인제 시행에 따른 게시판 내 글쓰기 행위 및 비방과 욕설의 변화를 중심으로’, 2009. 11
아거, 닐 포스트만의 타계에 부쳐, 게이터로그, 2003. 10. 10.
첫댓글 이 좋은글을 지금 보네요..추천!!
오래전부터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서비스는 웹의 많은 블로거와 미디어 활동가에 의해 비판받았다. 대형 포털에 의해 ‘가두리 양식장’이 되어버린 한국 인터넷 생태계가 인터넷의 진보를 막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는 이제 전 세계를 수렴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급속하게 진화하는 모바일 환경 속에서 ‘옛날이야기’처럼 현실감 없이 들린다. ===> 특히 공감가네요!!ㅎ
네.. 저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 커뮤니티 속에도 포털의 자극적인 소재와 언어에 익숙해져 결국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해서 올렸습니다. 내용 중 이 말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삭제된 댓글 입니다.
손발은 디스토피아에 담고, 머리는 유토피아에 담으신다구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