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계곡 노루귀
이월 둘째 월요일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설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달력에는 그 전 금요일부터 나흘간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어제는 의림사 계곡으로 들어 가랑잎을 비집고 피어난 변산바람꽃을 만나고 왔다. 그와 함께 붉은대극이 내미는 순과 봉오리를 맺은 노루귀 한 송이를 찾아냈다. 새벽잠을 깨서 변산바람꽃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겨 지기들에게 사진과 같이 보냈다.
아침 식후 야생화 탐방 동선을 장유 대청계곡으로 정해 길을 나섰다. 창원대삼거리로 나가 김해 삼계로 오가는 58번 버스를 탔다. 도청과 법원 앞을 둘러 남산동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쳤다. 창원터널을 통과해 윗상점으로 빠져 대청계곡 입구를 지날 때 내렸다. 근년에 대청계곡 들머리는 용지봉 자연 휴양림 시설이 생겼는데 경내로는 들어가 보지 않아 내부 사정은 아는 바가 없다.
당국에서는 연전 대청계곡 돌부리를 비켜 가며 산책로를 잘 다듬어 놓았다. 계곡 건너편 바윗돌과 우거진 활엽수림 사이로 만든 탐방로에는 야자 매트를 깔아 산책로로는 좋다. 그러함에도 그쪽으로 가질 않고 폭포교 건너 생태 탐방 센터에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걸었다. 봄이 오는 길목 활엽수림 바닥의 부엽토와 가랑잎을 비집고 피는 야생화를 탐방하기 위해서다.
장유사 오르는 포장도로를 얼마간 걸어가니 길섶에서 가까운 산비탈에 엎드려 사진을 찍는 이가 보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야생화를 찾아 나선 이로 여겨졌다. 창원 근교 여러 곳으로 야생화 탐방을 다녀도 장유계곡으로는 처음 나선 걸음이다. 초행 등산객이 산행지에서 들머리 등산로를 쉽게 찾아내야 하듯이 야생화 탐방에서도 목표로 둔 꽃이 자생하는 장소를 예측해냄이 중요하다.
아까 버스 하차 지점 대청계곡 들머리에서 노루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세 군데를 짚어본 가운데 첫 번째 장소였다. 나머지 두 군데는 용제봉이 흘러내린 산등선 너머 남향 양지와 공군부대가 위치한 화산 자락의 북향 약수산장 부근으로 가 볼까 싶었다. 발품을 파는 고생을 하지 않고 야생화 전문가를 만났다. 내보다 젊어 뵌 사내도 이른 아침 창원에서 넘어왔다고 했다.
어제 의림사 계곡에서는 한 송이만 본 노루귀였는데 거기서는 여러 송이 만났다. 며칠 전부터 야생화 탐방객이 다수 다녀가 가랑잎이 덮인 산비탈은 반질반질한 길이 나 있었다. 창원에서 왔다는 사내는 전문가급 카메라로 노루귀를 앞에 두고 숲 바닥 엎디어 피사체로 삼아 셔터를 눌러댔다. 노루귀 솜털을 잘 드러내려면 폰으로도 역광을 활용해 찍어보십사 조정해주어 고마웠다.
공들여 찍은 야생화 사진을 콘테스트에 응모하느냐 여쭈었더니 블로그에 올린다고 했다. 누적 자료가 많을 듯했는데 올해 처음 올린 사진은 복수초라 했다. 그는 울산 북구 주전 바닷가 어물동까지 가서 찍어 왔다고 했다. 나는 미산령에서 본 복수초는 고산지여서 삼월 하순 피더라 했다. 그는 의림사 계곡에서 피는 변산바람꽃도 알고 있어 오후는 거기로 찾아갈 예정이라 했다.
꽃쟁이(?)와 작별하고 장유사로 오르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걸으니 정초에 절집을 찾는 이들의 차량이 간간이 지나갔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다가 바윗돌을 쉼터 삼아 앉아 간식을 겸한 점심이 될 요기를 때웠다. 어제 오후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들고 헤어지던 꽃대감 친구가 사준 군고구마와 달걀은 한 끼 식사로 훌륭했다. 호박고구마는 삶았을 때보다 군고구마 맛이 더 좋았다.
장유사로 드는 갈림길에서 절로 가지 않고 산등선을 돌아가는 용지봉 누리길을 걸었다. 산중이라 공기가 명징한 숲길에서 떠오른 몇 구절 시상은 폰에 남겨 놓았다. 인적도 산새들의 지저귐도 그친 적막한 임도를 걸어 비탈로 내려서니 남해고속도로 냉정 분기점이 나왔다. 냉정에서 진영을 출발해 진례 들녘 마을을 거쳐온 버스를 타고 장유로 와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