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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황우석과 함께하는 부산 시민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지상에서영원으로
갈릴레이는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고정되어 있다"는 설을 제기하였다는 죄목으로 1633년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 그가 받은 형벌은 ‘코페르니쿠스’식 견해를 포기하고 감옥에 들어가 3년간 일주일에 한번씩 7번의 고해성시를 반복해서 암송하는 것이었다.
종교재판소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종교재판소로부터, 태양이 중심이며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견해를 전부 철회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거짓된 교리를 주장하거나, 지지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금지 당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의 실수와 이단적인 발언, 아울러 이 성스러운 교회의 교리에 위반되는 일반적인 다른 모든 주장들까지 전부 철회하는 바이며, 그것들을 저주하고,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공판에서 그가 중얼거렸다고 하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공판에서 네 번이나 "그래도 코페르니쿠스식의 견해를 믿느냐"는 질문에 매번 부인을 했다. 너무 나이가 들어 고문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단 혐의를 받게 되면 종교 재판 전에 고문이 시작되는데, 고문은 자백을 할 때까지 계속되며, 일단 자백을 하게 되면 바로 화형에 처하게 된다.
참고로 중세의 마녀사냥은 그 희생자가 최소 삼백만명 이상, 평균 추정치로 약 6백만명정도로 추산되며, 학자에 따라서는 일천만명 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단 마녀로 인정받으면 여성의 경우 날카로운 긴 창끝에 올려 지는데, 그렇게 되면 여자는 자기 몸무게에 눌려서 성기에서 시작하여 입까지 꿰어지게 된다. 그런 연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약간의 자비를 베풀었으니 그것이 바로 화형이었다. 물론 죽은 자로 창에 꿰어진 채 화형을 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세시대의 마녀를 재판하기 위해 행하는 마녀 고문은 마녀 처형보다도 더 무섭고 고통스러웠기에 누구든지 이단 혐의를 씌고 재판을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니 그것을 아는 갈릴레이는 단자론을 제기한 브루노 같은 위대한 과학자처럼 이단으로 재판받아 처형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갈릴레이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리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어쩌면 갈릴레이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던 말인지도 모른다.
이솝 우화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와 같은지 어쩐지 모르지만, 갈릴레이의 이 항변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그로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뒤에 프랑스 신부 ‘이라이유’가 쓴, 부정확하기로 소문난 ‘문학 논쟁’에 나오게 처음 나오게 된다. 아무튼 갈릴레이가 했다는 이 말이 그 이후 아주 크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법과 제도, 신학과 과학에 부분에 있어 카톨릭 교회의 횡포에 대한 적대감이 당대에 널리 퍼져 있었던 탓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바티칸에게도 마음씨 좋은 교황은 있었다.
인정 많기로 소문났던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중세시대에 캐톨릭이 행한 마녀 재판에 대해 사과했으며, 캐톨릭이 범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학살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에 대하여도 사과했다. 그리고 다른 종교와 벌인 전쟁과 갈등에 대하여도 사과했고, 과학의 탄압에 대하여도 사과했다. 그리고 필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는 아마 그 이외에도 많은 사과를 한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그 마음씨 좋은 교황마저도 용서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절대 용서가 안 되는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스티븐 호킹이다.
스티브 호킹은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자다. ‘시간의 역사’로 유명한 호킹에게 바오르 2세는 우주의 대폭발 이전에 대하여는 연구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것은 바로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바티칸 입장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절대 용서가 안 되는 인물이었으나 그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었음으로 이미 신의 벌을 받고 있다 생각되기 때문에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영국은 아일랜드와는 달리 캐톨릭으로부터 독립한 영국 국교회가 일치감치 자리 잡고 있는 세계 최강국 중의 하나임으로, 호킹이 병이 없이 건강하다 한들 어떤 학문적 위해나 물리적 제제를 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열렬한 캐톨릭 신도이며 마음씨 착한 전 부인이 호킹을 버려두고 떠나간 것 외에는...
옛날의 마음씨 좋은 교황은 죽었고, 바오로 2세의 충직한 추기경인 베네딕트 16세가 현재 새로운 교황이 되었다.
그 베네딕트 16세에게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와 같이 절대 용서가 안 되는 인물이 한사람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황우석 교수다.
황우석 교수는 교황청의 눈 밖에 난 사람이다. 지금교황인 베네틱트 16세는 엄격한 보수적 원리주의자로서 “지금 한국은 브레이크 없는 비탈길로 가고 있다”는 등 황우석 교수 사태 이전부터 황우석 교수 연구에 적극적인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 우려 표명 뒤에는 항상 김수환 추기경의 황우석 연구에 대한 생명윤리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교황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황우석 교수는 분명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다. 그가 감히 신의 영역에 들어서려고 하기 때문이다. 캐톨릭의 입장에서는 인간배아 줄기세포는 엄격히 말해 이단이다. 오직 허용할 수 있는 범위는 인간의 성체줄기 세포다.
황우석 박사는 자신의 독창적 복제기술을 이용하여 영롱이와 스너피를 만들 때부터 이미 교황청의 주목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신의 대리인 교황청의 권고를 무시하고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고자 했으니 종교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황우석 교수는 지금 종교재판을 받고 있다. 그 법정이 교황청이 아니라, 매스컴과 석연치 않은 성격의 사람들로 구성된 서울대 조사기관이라는 것뿐이며, 그 법정형이 사형이 아니라, 학계로부터의 매장과 실험실에의 접근 금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우려될 만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은 황우석 교수에 대한 경호 해제다.
늙고 겁 많은 갈릴레이는 고문과 처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지만 우직한 황우석 교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래도 줄기세포는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황청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교회로서는 최대한 자비를 베풀고자 했지만 계속 이단 행세를 하여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탄은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캐톨릭은 교황청 수호를 충직하고 용맹한 스위스 사람들이 하지만, 근위병 외에 캐톨릭의 비밀 군대 역할을 하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다. 이 군대 조직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런데 이들 외에도 수억의 캐톨릭 신자들이 있는 바 이들은 전통적으로 자국의 이익보다는 캐톨릭 교황청의 명령을 우선한다. 이것은 흡사 중세시대 교황의 말을 따라는 신부와 신도들로 인해 교황의 권위가 국왕들의 권위보다 우월했던 경우와 같다. 그것은 황우석 교수팀의 핵심이며 천주교 신자인 안규리 교수가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김수환 추기경님의 눈에 다시는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드러난다.
이 이외에도 황우석 교수를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외국의 유명한 정보기관들, 거대 다국적 기업들 등 등, 이들은 ‘황우석을 스카웃하느냐? 매장하느냐?’로 합종연횡의 경쟁관계에 있을 것이며, 지금 황우석 사태만큼이나 그 이해관계가 무척 복잡할 것이다.
거물 정치인으로 유명한 사람이 몇 년 전에 죽었다. 김윤한이라고 한다. 호가 빈배라는 뜻으로 허주다. 그 허주는 킹메이커로 유명한 사람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 이 허주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이회창을 당총재와 대선후보로 밀었으나 여지없이 팽 당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덧없이 빈 배가 된 사람이다. 그런데 이 허주가 죽을 때는 빈 배가 되지 못했으니 그 이유는 이렇다. 허주가 죽을 때 신부 하나와 유명 정치인인 한사람이 찾아 왔다. 이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사람으로 이름은 김상현이다.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허주에게 찾아와 천주교 영세를 받을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허주는 죽음을 앞에 두고 기력이 없어 말도 못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처지라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여 눈물밖에 흘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김상현과 신부는 허주가 천주교에 입문하여 영세를 받는 것이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며 세례명을 지어주고 세례를 베풀어 주었다.
때문에 허주는 그의 빈 배에 영세명을 싣고 저승으로 떠나게 되었다. 한 편 생각해 보면 천주교인 이회창에게 팽당한 불교인 김윤한이 죽음을 앞두고 천주교 신자가 되어 저승으로 떠났으니 너무 기가 막혔을 것이다. 때문에 필자의 이모도 이런 잔인한 방법으로 불교인이었으나 돌아가실 때는 천주교인이 되어 버렸다. 그 영향으로 종교가 없는 우리 친척 누님도 천주교인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캐톨릭이 베푸는 신의 마지막 은혜로 캐톨릭이 세계 도처의 과학자들과 유명인들에게 수 없이 많이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생전 캐톨릭을 부정했던 무신론적 과학자들이 죽을 때는 이상하게도 캐톨릭 신자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캐톨릭과 경쟁관계에 있던 개신교도 구교의 영향을 받아 경쟁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다.
아마 황우석 박사도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나면 불교인보다는 캐톨릭 신자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황우석 박사가 기도를 통해 치병한 전등사는 강화도 마니산에 있다. 강화도 마리산의 전등사는 원래 그 기원이 불교의 절이 아니다. 이 전등사는 원래 삼랑이 머무르던 곳이었다. 삼랑이란 우주와 인간 생명의 뿌리인 삼신을 수호하던 단군조선시대의 벼슬이었으며, 삼랑은 신탁을 받아 임금을 보좌하고 백성을 교화하였다.
그러던 것이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신교의 전등사는 불교의 전등사로 신교의 환웅전은 불교의 대웅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황우석 교수가 치병에 효험을 얻은 전등사는 그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할 것이다. 단군조선 초대 왕검 51년 무오에 운사 배달신이 단군의 명을 받아 혈구인 강화도 마리산에 쌓은 것이 삼랑성이며, 제천단이고 전등사이기 때문이다.
황우석의 고향은 부여다. 부여란 먼동이 부연하게 솟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부여는 광명정신을 상징한다. 그런 그가 동쪽에서 광명을 열려 하는데 한 무데기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감히 태양을 가리려 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상말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라고 한다. 그 말의 기원은 이렇다. 중국은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나오는 기록처럼 고려시대나 지금이나 ‘때놈’이라고 부른다. 더러운 때가 몸에 너무 많기 때문에 때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놈은 그 성질이 예나 지금이나 아무데서나 똥을 눗는다. 그 가운데 양반이라 치면 길 가운데 똥을 싸다가도 누가 지나가면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데, 이 것을 가리켜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며, 부끄럽되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짓거리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어설픈 수작으로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우석 죽이기는 이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수준을 뛰어넘어 지록위마에 가깝다. 지록위마란 진시황이 죽고 2세황제 호해가 등극하자 그 권신인 이사가 자신의 권세를 내세워 사슴보고 말이라고 한데서 유래된다. 이사 앞에서 말보고 사슴이라 하지 않고 말이라고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마찬가지로 지금 어떤 힘 있는 세력이 방송과 언론을 앞세워 “황우석 교수팀에게 줄기세포는 없다”를 강요하고 있다.얼마 전에는 학맥의 대표인 정운찬 서울대학장이 황우석의 줄기세포는 돌연변이 처녀생식이라는 요상한 말을 하며 명백한 학문적 범죄행위라고 떠들었다.
구름이 앞을 가리더라도 동쪽에서 찬란한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사슴을 말이라 해도 말은 말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정명사상이다. 공자는 제자가 벼슬을 하시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실 것이냐고 하자 정명이라고 하였다. 제자는 공자의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공자의 입장에서 이 세상이 혼란 한 것은 말이 혼란하기 때문이었다. 공자가 살아간 혼란한 춘추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를 처녀생식 돌연변이였다고 하고,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미리 결론을 내리고,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매도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서양 문명의 한 축인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이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신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 전해주고 그 벌로서 잔인한 형벌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황우석 교수는 지금 인간을 위해 인간 복제 배아 줄기 세포를 만든 죄로 잔인한 형벌을 받고 있다. 그리고 황우석은 황우석이 사랑한 한국인에 의한 신의 제물이 되어 코카사스 산맥의 바위에 대못이 박히우고 쇠사슬로 묶여 있다. 그리고 외신과 내신은 매일 그의 간을 뜯어 먹고 있다. 흡사 신이 보낸 인간에 대한 저주인 판도라의 저주를 온 몸으로 대속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
그 판도라의 저주는 알렉산드르에게서 나왔다. 알렉산드르는 황사영의 세례명이다.
우리가 충격을 받는 것은 조선말 황사영 백서 사건의 내용이다.
“황사영 백서 사건의 주 내용은 '청이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거나 조선을 아예 한 성으로 편입시켜 천주교를 공인하거나, 서양의 천주교 국가들에게 호소하여 군사 수만과 배 수백 척으로 조선을 협박하거나 정복하라”는 내용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 독사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를 떠나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위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그렇다. 지금 황우석의 간을 파먹고 있는 것은 알렉산드르다. 한국 천주교 103위 순교성인에 오른 황사영이 성난 독수리가 되어 로마 바티칸시티 캐톨릭의 힘을 등에 업고 동족동성인 황우석의 간을 파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황우석에게는 스위스의 용맹한 병사도, 스페인의 군대도, 수억의 신도도 없다. 조선의 일개 군졸도 그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 그런 그가 이제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학교와 교계와 방송과 언론 그리고 정당으로부터 수 없이 두드려 맞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제 목전에 남은 것은 학문적 죽음에 이어 물리적 죽음뿐이다.
그런데 그에게 우리겨레는 “황우석이가 잘 견디고 있고만, 그놈 매집 한 번 쎄고만!”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불구경도 재미있지만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재미가 있다.
고려 공민왕 때에 정승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은 단군세기 서문에 “남생, 발기의 역심이 서로 합세하여 낮도깨비같이 백주 대낮을 돌아다니며 나라를 위하는 자를 억누르고 짓밟으니, 도리와 기강이 모두 무너지고 형체와 영혼이 서로 상실된 이 세상에 어찌 스스로 편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지금이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북부여가 한나라에 밀리고, 고려가 원나라에 침탈당한 그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이민족의 영혼과 정신을 가지고 스스로 우리민족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사대주의에 넋 빠진 유학자가 중국을 ‘우리나라’하고 조선을 ‘너희나라’라고 역사에 기록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마이클잭슨이 있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는 세계 최일류 가수다. 그런 그의 코를 보면 구멍이 나있다. 백인이 되고 싶어 성형수술도 하고 백인 미녀에게 장가도 들었는데, 그만 너무 많은 수술을 하여 얼굴의 코가 빵구가 나고 만 것이다. 지금 우리들 중에도 얼굴에 빵구난 자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모습을 절대 자랑스러워하지 한 점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마치 동포를 억누르는 조센징 출신 일제 고등계 형사가 동족의 피를 파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일제에 아부하며 출세를 바란 것처럼, 주인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판이다.
이솝 우화에 원숭이가 탄 배가 난파되어 원숭이 섬에 표류하게 되었다. 그 원숭이는 그 섬에 도착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 섬의 원숭이는 모두가 외눈박이 원숭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원숭이는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외눈 원숭이들이 모두 두 눈을 가진 병신 원숭이라고 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원숭이는 수 없이 번민을 하다 자기 손으로 자기 한 눈을 찌르고 말았다.
지금 이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일제 소좌 출신 성직자가 해방 후 고위 성직자가 되어 수 없이 많은 졸개 원숭이들을 거느리고 황우석 교수팀에게 두 눈 달린 멀쩡한 원숭이라고 놀려대고 있다. 그 중 고민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원 몇 명은 자기 한 눈을 스스로 파버린 이도 있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이도 있다.
동학혁명을 일으킨 봉준 전명숙 장군은 참형에 임박하여 일제의 회유를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시를 남겼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내 편이더니
운을 다하니 영웅도 어찌할 길 없구나.
백성을 사랑한 정의 무슨 허물이더냐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아주리!
황우석 박사는 지금 이 말이 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줄기 세포는 있다.”
*원문출처:네이버 치우천황카페~송호국님글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를 현대적으로 재 해석한 곡
첫댓글 장문이지만 필독해야 할 글입니다. 꼬옥 읽어보세요
좋은 글 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청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내 편이더니 운을 다하니 영웅도 어찌할 길 없구나. 백성을 사랑한 정의 무슨 허물이더냐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아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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