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일어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만족 해야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쪽에서 70%이상의 승리 확률을 확신하고, 전쟁으로 얻게 되는 이익이 전쟁에서의 비용(피해 포함)보다 큰 경우다.
그래서 지금 북한 김정은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재래식 군 전력에서 비교도 안되게 열세이고, 가만히 있으면 북한의 지배자로 살 수 있는데 지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타산이 안맞는다.
한국의 보수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많이 가지고 있기에 가장 많이 잃을 수 있어서 타산이 안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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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8월1일. 한창 중일전쟁 중이던 일본에게 미국의 최후 통첩이 전달 되었다. 미국에 80%를 의존 하던 석유의 금수조치와 중일전쟁의 중단 및 만주 포함 모든 점령지의 반환 요구였다. 일본이 미국의 석유 없이 좀처럼 진척이 없어진 중일전쟁을 승리 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일본은 선택해야 했다. 막대한 전쟁 물자와 인명손실 을 무릅쓰고 점령한 만주를 포함한 모든 중국 점령지를 토하든, 미국과 한판 붙든
일본 군부도 미국과의 전쟁의 승산이 높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특히 야마모토 이소루쿠 연합함대(해군)사령관을 포함한 미국 유학파의 전망은 비관적이였다. 그러나 여기서 전쟁을 멈추면 군부정권이 무너짐을 너머 천황을 기망한 죄로 할복을 해야 하거나, 1936년 2.26사건 처럼 청년장교단에게 살해 당할 판이였다.
우리의 합참격인 대본영은 승리했을때의 거대한 떡밥과 자기의 목숨을 포함한 가진것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미국과의 전쟁을 결심하고 천황의 재가를 받아낸다.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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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5년 2월. 남송의 재상 가사도는 본인이 총사령관이 되어 13만의 병사와 2500척의 전함을 이끌고 몽골을 공격하기 위해 출전하였다. 이동하는 전함의 대열이 40킬로에 달하는 대군이였다.
그런데 수군사령관 하귀가 가사도에게 "송의 역사는 320년(서기 1280년)에 끝난다"라는 글을 주었는데 가사도는 고개를 숙일 뿐이였다. 이번 전투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한 것이기에 정상적 상황이라면 참형이다.
16년전 1259년. 몽골군이 남송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였다. 남송군이 악주와 강릉, 사천에서 악전고투하자 (사천방면군 사령관 여문신은 전사) 송의 이종은 가사도를 우승상에 임명하고 악주를 구원케 한다. 그러나 수성전 중 1만3천명의 군사와 초기 맹활약 했던 장승이 전사하는등 함락 직전까지 몰렸다.
가사도는 독단적으로 쿠빌라이에게 군대를 물리면 공물을 바치겠다는 밀서를 보냈고, 몽케 칸이 조어성 공략 도중에 급사하여 쿠빌라이가 아리부케와의 칸 쟁탈전을 위해 군을 물리면서 극적으로 위기에서 탈출했다.
가사도는 자신이 쿠빌라이를 물리쳤다고 선전했고, 이게 먹혀 승상에 오름과 동시에 조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았다. 다시 몽골이 쳐들어왔음에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유능한 장수에게는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한 궁녀가 송황제 도종에게 몽골군의 침입을 알리자 북쪽의 적은 퇴각한지 오래라고 한 후 궁녀를 죽였다.
1273년 양양성이 4년의 포위전 끝에 함락 되었다. 이제 몽골의 수군이 한수와 장강으로 밀고 내려와도 막을 거점이 없어졌다. 김용의 영웅문에도 나올 정도로 양양성 함락은 엄청난 사건이였다. 송의 조정과 태학(조선의 성균관)에서는 구국의 영웅 가사도가 출전하여 이 위기를 해결 해야한다는 요청이 빗발 쳤다. 만일 가사도가 이번에도 출전 하지 않는다면 실각은 기정사실이였고 악주 전투에서의 거짓말이 들통나 목이 달아날것이 뻔했다.
하귀의 편지에서 보듯이 그도 승산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 살아날 확률은 더 희박했다. 지난번 처럼 억세게 운 좋게 협상에 성공하거나, 10번 싸우면 한 두번은 이기는 남송군의 기적과 같은 활약을 기대하며 몽골을 공격하는 전쟁을 일으킨다.
정가주에서 남송군과 몽골군이 수군과 육군 모두 격돌하였다. 개전 전에 가사도는 또 다시 화의를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바얀의 기병과 아술의 수군이 남송군을 괴멸시켰고 13만 병사는 대부분 전사하였다. 안전한 후군에 있었던 가사도는 양주로 도주 했다가 탄핵되어 유배 중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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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지금 코너에 몰려있다. 만일 토요일 탄핵이 기각되고 시간을 번 상황에서 위기를 타게 하는 방법은 2차 계엄뿐이다.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가 아니고 그 방법 뿐이라 생각해 실행할거다. 앞 글에서 언급 했듯이 군은 안 따를것이므로 극우세력을 이용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게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첫댓글 고퀄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빨리 끌어내려야할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