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는 안식일에 있었던 일화를 전해줍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날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습니다. 그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는 추수를 할 수 없다는 율법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이 자기와 그의 부하들이 시장할 때 성소에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은 적이 있는 것을 말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을 이어지는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는 것을 통해서 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은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병자들을 고치는 것이 선한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더욱 악한 마음을 가집니다(1-11).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에 많은 제자들 중에서 열 둘을 택하시며 그들을 사도(왕이 사명을 맡겨 보냄을 받은 자를 뜻함)로 세웁니다. 이 열 두 사도와 함께 무리들 가운데서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의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쫒아내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파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지켜야할 삶의 방식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의 삶이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욕을 당하고, 악하다고 모함 받을 때에 복이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지금 여기서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즐기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은 이미 그들의 복을 다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설교의 대상은 제자들입니다. 어제 보았듯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고, 주리고, 자기의 죄 때문에 애통하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배부르고, 부요하고, 웃고, 즐기면서 삽니다. 하진만 두 그룹의 결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전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고, 위로를 얻고, 배부를 것이지만, 후자들의 마지막은 화가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의 방식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에게 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을 대고, 구하는 자에게 주고, 가져가는 자에게 갚으라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 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잘 대해 주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내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는 자세로 살고, 비판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악인에게도 자비로운 것 같이, 우리도 악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자비롭게 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살피고, 좋은 열매로 선함을 증명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렇게 행하면 믿음이 견고하여 질 것이라고 합니다. 내적인 성품의 변화가 없는 외적 열매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12-49).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얼마나 다른지요! 주님은 제자들에게 당시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라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변했는지, 변하고 있는지 오늘 말씀에서 묻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이 변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살아가기 편합니다. 그러나 변하고 있다면 갈 수록 살아가기 불편해집니다. 우리는 천국의 삶의 원리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들임을 드러내며 살라고 하십니다. 천국의 소유자들 답게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천국의 삶의 원리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