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 순매원으로
설 연휴가 끝난 이월 둘째 화요일이다. 직장인들은 명절을 쇤 첫 출근이고 학사 일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학교에서는 등교가 있지 싶다. 내가 몸담은 자연학교는 설날 연휴도 없이 산천을 주유했다. 낙동강 하구 을숙도로 나가봤고 의림사와 장유 계곡으로 들어 이른 봄 가랑잎을 비집고 피어난 변산바람꽃과 노루귀를 완상하고 왔다. 용지봉 누리길을 걸어본 유유자적한 시간도 가졌다.
우리나라는 북반구 중위도라 사계절이 뚜렷하다. 퇴직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보니 일반적 기준과 다른 내 나름으로 계절을 구분 짓는 방식을 찾아냈다. 땅이 얼고 초목이 시든 겨울은 지우고도 계절은 여전히 네 등분이다. 바람꽃과 노루귀의 야생화와 매화를 만나는 초봄이 겨울을 대신했다. 그리고 봄과 여름과 가을의 산야에서 피고 지는 꽃을 살펴봄으로써 한 해를 보내게 된다.
이월과 삼월 초에 피는 야생화 탐방과 매화꽃 완상까지가 하나의 계절을 차지한 초봄이다. 올해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서 봄꽃의 개화도 예년에 비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앞당겨 피는 듯하다. 낙엽 활엽수가 자라는 산간 계곡 숲 바닥에는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화꽃으로 이름난 김해 용당나루와 건설공고 구지로에 자라는 고매도 꽃망울을 펼쳤다.
화요일 이른 아침엔 직장인들 출근 시간대에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가끔 교류하는 두 문우가 동행이 되어주어 내색은 하지 않아도 고맙기 그지없다. 셋이 가려는 곳은 경전선 상행 열차를 타고 삼랑진을 지나 원동 순매원이다. 창원중앙역까지 진주권에서 타고 온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다수 내렸다. 이후는 좌석이 한산해야 함에도 명절 뒤끝이라 평소보다 빈자리가 드문 편이었다.
진례터널을 빠져나가 진영역을 지나니 화포천 습지는 옅은 안개가 끼었다가 걷혀가는 즈음이었다. 한림정역을 지나는 들판은 비닐하우스 경작이 대부분이었다. 모정터널을 빠져나간 열차는 낙동강 강심을 가로지른 철교를 건너 삼랑진에 멈췄다가 레일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경부선 철길에서 강변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조선시대 영남대로였던 작원과 황산 잔도 벼랑길이다.
셋은 강변의 한적한 원동역에 내렸다. 원동은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가지산이 신불산으로 이어진 배내골로 드는 들머리로 밭뙈기에 매실나무를 많이 가꾸었다. 근래는 산간에서 흘러온 청정 계류로 겨울철에 비닐하우스에서 미나리를 키웠다. 삼월에 매화가 필 때면 축제를 여는데 지역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싶다. 우리는 매화가 만개해 상춘객이 붐비기 이전 찾아갔다.
일행은 원동역을 빠져나가 지방도 갓길을 따라 순매원을 찾았다. 열차로나 불편한 자동찻길 차를 몰아 매화를 보러 원동을 찾는 이들이 들리는 순매원은 섬진강 건너 청매실 농원만큼 유명하다. 사실 원동 매화 1번지는 천년 고찰 신흥사가 소재한 영포리인데 역으로부터 이십 리 남짓 떨어져 외부로 덜 알려졌다. 영포리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불편해 순매원 탐매만으로도 만족했다.
홍매와 분홍매와 백매와 청매는 제각각 망울로 부풀어 꽃을 피우려 했다. 매실나무 잔가지 여러 꽃망울에서 몇 송이 성글게 피어날 때 향기가 짙고 아름다웠다. 매실나무 밑에서 꽃송이를 치올려 보다가 전망이 탁 트인 카페로 들어 커피를 마셨다. 탐매에 나선 셋이 처한 개인사는 달라도 앞을 바라보는 방향은 같았다. 유장히 흐르는 물길과 나란한 철길에는 간간이 열차가 지나갔다.
카페를 나온 셋은 매향과 윤슬이 반짝이는 강물을 뒤로 하고 신촌삼거리 도토리묵을 빚어 파는 최씨 노인 댁을 찾아갔다. 안주인을 마실 가고 바깥양반이 맞아주어 일행은 곰삭은 김치로 감싼 묵을 몇 점 먹었다. 지난해 가을 시골 할머니들이 주워온 도토리로 빚은 묵을 두 통씩 든 봉지를 손에 들었다. 역전으로 가서 추어탕집으로 들어 점심을 요기하고 창원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2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