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용사들이 다 모이다
낮이면, 매미가 푸름을 지키려 애타게 바락 거리고 밤이면, 귀뚜라미가 가을맞이 향연을 펼치고 있다. 매미가 제 아무리 안간힘을 쓴들 바람난 여인 치마끈 풀리듯, 산조차 녹아내릴 것 같았던 여름의 끝도 스르륵 산모롱이를 돌아가고, 귀뚜라미의 부름에 가을은 징! 하게 당신의 가슴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제2의 봄’이라 했던가. 우리처럼 나이 잡순 사람들의 계절이다. 여름 내내 눅눅하던 몸과 마음을 이부자리 말리듯 뽀송뽀송 말리고 싶다.
추석 연휴가 끝난 후다. K의 초청을 받았다. 올 8월 교장정년퇴임연회에 덕담을 해달라기에 잡담을 해주었더니, 그 날은 바빠 챙기지 못했다면서 집으로 초대했다. 엇쭈구리, 역전의 용사들이 소복이 모여 있지 않는가. 사모님의 성근 미소는 세월이 꾀나 흘렀지만 괴란쩍었다.
나의 교감 초임지는 군위 의흥이다. 사달은 부임 첫날부터 벌어졌다. 나를 위한 1차 환영회는 끝나고 2차는 꾼들만 모인 심포지움이 열렸다―심포지움이란 말의 기원은, 풀라톤이 제자들과 과음을 한 다음날 모두 해장술로 속을 달래며 ‘사랑’에 대해 가볍게 토론을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심포지움이란, 술을 한 잔 걸치며 이바구 하는 것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젊은 날 나는 하루돌이로 심포지움을 개최한 편이었는데, 그 날도 심포지움의 주제가 여자에 관한 것이었다.
―당신은 여자의 어디에 마음이 혹하는가?
학부형 회장이 말했다.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여자는 역시나 청노루처럼 긴 목에 호수 같은 맑은 눈을 가진 여자에게 나는 지금도 뿅, 갑니다. 풍덩 뛰어 들고 싶거든요.”
‘짜석, 생긴 꼬라지 치고는 운치가 있네.’
박목월의 ‘청노루’까지 들썩일 건 또 뭔가? 나는 의봉(김종화)이 생각났다. 의봉은 술 한 잔 걸치면 박목월의 청노루를 읊는데 정말 분위기 좋고, 맛깔스럽다.
교무가 말했다.
“사랑은 눈으로 오지만 결국 입술에서 만난다고 봅니다. 남성의 코를 생식기에 비유해서 보듯 여자의 입술도 조개의 조갯살 같은 맥락으로 보면 틀림없지요. 의학적으로도 여성의 입술은 생식기와 관계가 많다고 합니다. 도톰하고 촉촉한 한 장의 꽃잎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면 진정 벌이 아니지요. 아마 여자의 입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천 가지도 넘을 겁니다.”
“하 참, 내사 뭔 말인지 전차에 받힌 거 같소.”
듣고 있던 학교 아저씨가 끼어들며 인생의 고참답게 투박한 말씨로 강다짐하듯 말했다.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엉덩이가 실해야 하는 기라. 고것이 팡팡하고 날렵해야 맷돌을 잘 돌린다고. 어매, 생각만 해도 나 죽소.”
모두 주사의 질펀한 펌프질에 숨이 넘어갔다. 술이 또 한 순배 돌고나자 아니나 다를 가 K가 내게 정조준 했다.
“교감선생님은 여자의 어디가 좋습니까?”
“여자에게 마음 가는 곳이라?”올 것은 오는 법이다. ‘그래, 어차피 인간은 망가지면서 사는 거잖아.’ 나도 같이 망가져야지 굳이 독야청청할 일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이란 게 뭐 그리 거창한가. 가로지나 세로지나 삶은 속임수이고 과장이고 다 엉터린걸.
“허리!”
표기법이 달랐던지 모두 내입만 쳐다보았다. 이때는 능청을 좀 떨어야한다. 간 타게. 나는 잔을 비우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숨이 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배냇병인지는 몰라도 소싯적에는 치마만 두르면 어디 견적 뽑았나요? 바늘로 연못 팔 일도 없고. 볼 장 다 봤지요.”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물 흐르듯 잘 흘렀다.
“그런데 요샌 낭창낭창한 허리를 가진 여자가 좋더라. 허리에 비계만 끼지 않았으면 원 나잇 스탠딩 하지요. 부서질 것처럼 깡마르면 더 좋고. 말라야 갈비뼈가 드러나고 갈비뼈가 드러나야 연주를 하지. 여자 몸은 악기니까. 연주에는 일가견이 있다 이 말씀. 내 손만 가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 난 변태 기질이 있거든….”
뭐, 대충 씨도 먹히지 않는 사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 같다. 엄밀히 말해 사람 밥 먹고 개소리한 셈인데 되도 않는 나의 레파토리에 용기를 얻은 듯 K가 너스레를 떨다 결국 눈물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교감 선생님. 뭐니 뭐니 해도 여자는 가슴입니다, 가슴! 여자의 가슴은 모양에 따라 대접 형, 포탄 형, 절벽 크게 세 종류로 나누는데 포탄 형이 으뜸이지요. 포탄 형은 대체로 비상한 가능성과 비상한 위험성을 양날의 칼처럼 항상 내포하고 있는데 내 목이 잘리더라도 그 큰 가슴에 코를 박고, 죽고 싶습니다.”
K의 소원은 아~주 쉽게, 금방 이루어졌다.
우리가 있는 방과 옆방은 전체가 여닫이문으로 이루어 져 있었는데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정말 깡마르고 고목에 매미가 붙은 것 같은 가슴을 한 여인이 들어서며 일갈했다.
“그래, 이 새끼야. 내 가슴이 절벽이여서 미안타. 이왕 터진 입인데 더 지껄여 보지.”
그녀는 다짜고짜 시르죽은 목소리를 하는 K의 멱살을 부여잡고 밖으로 끌어내며 좌중에 삐라 뿌리듯 시니컬하게 한마디 던졌다. 눈은 신임교감이라는 작자에게 레이저를 쏘며 땍땍거렸다.
“선생들이 모여 자~알 놀고들 있네요?”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만 사모님의 말은 잘 벼린 칼끝을 보는 것처럼 오싹했고 그 말은 비수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대략난감 했다. 그녀가 나간 후 그러니 K가 끌려 나간 후, 돌아보니 모두 폭탄 맞은 것처럼 표정들이 산지사방 중구난방이었다. 스텝이 엉켜 멍청한 내게 교무가 말했다.
“K 사모님입니다. 우리가 노가리 까고 있는데 하필 옆방에 계셨네….”
사모님이 옆방에 있은 것이 무슨 죄며 가타부타 따잡아 본들 무엇 하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구로 줄행랑을 놓았다―훗날 안 일이지만 간호사인 사모님이 주인 노파에게 영양제를 놓아 주고 있었다.
그때 그 용사들이 고대로 모여 있었다. 나는 사모님 술잔을 받으며 닭살 대사를 날렸다. K를 탈 없이 제대시켜 주느라 수고 했다고. 정말이다. 나는 그녀가 k를 위해 헌신하고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세월이 흘러도 차마 뱉지 못한 말들이 입가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건 그대로 화석이 되어도 별 볼일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며 술을 따르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림을 나만은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손은 깡, 말랐고 정맥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가슴은 더더구나 더 절벽이었다. 그나저나 어쨌거나 간에 아직도 허리는 낭창낭창했다.
기억이란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내게 와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저주가 될까?
첫댓글 맛갈스런 문장력, 솔직 담백한 표현력, 속살까지 까집는
자네의 글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한게일까?
내사 통 뭔 말인지 모르겠다
선반 위의 블루칩은 선반 밑의 마이너리티를 진정 이해하기 어렵지.
웃자고 한 이야기다.
뭐 어뜨면 낭창낭창하냐?
물비늘의 유연한 주름과 금방 잡아 올린 생선 같이 팔딱이는
여인의 시퍼런 열기
난 맨 처음 방美에 시선이 꼽힌다.ㅎㅎㅎ ㅡ義 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