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에서 피의 학살이 벌어졌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던 한 소녀에게 이 사건은 그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는 그녀에게 아직 세상은 껍질 안의 세상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선배로부터 듣게 된 광주이야기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갑자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될 만큼이요. 영문과를 지원할 당시에도 그저 부모님 등살에 밀려 선택한 것이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학업에 전념할 수가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방황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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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윤숙자 회장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
1984년에 봉제공장에 들어가 노동자의 삶을 시작한 윤숙자씨는 1990년까지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그 와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갖게되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 자신이 알게된 것은 육아의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어요. 아이도 소중하고, 아이와 저의 관계도 소중했지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잘하는 것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노동운동가로서 활동만 해왔던 그녀에게 '아이'는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한 수녀님의 권유로 성남 '만남의 집'에서 운영하는 모임 중의 하나였던 '성남 함께하는 부모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그 곳에서 2년간 다른 부모들과 고민을 함께 나누며, 자신과 아이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갔다. 더불어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잃었던 자신감도 되찾았다.
그렇게 2년의 활동을 하는 동안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일명 '아줌마통신'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경쟁교육을 부추기는 것 외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육아 단계에서 초등교육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녀는 어머니들 사이에서 주고 받는 입담으로는 풀리지 않는 난관에 봉착한 것이었다.
이윽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에 빠진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고민을 해결해 줄 마땅한 모임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이하 참교육학부모회)에 대해서 알게 됐다.
'참교육'
세상 어느 부모인들 자신의 자녀에게 참교육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참교육'의 이상이 평등교육,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라는 것을 익히 알았던 그녀에게 '참교육학부모회'는 단순한 만남을 넘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처럼 느껴졌다. 또한 그녀 자신에게도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날개를 달아준 소중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참교육학부모회 성남지회 초대 지회장직을 맡기도 했던 그녀는 2년 뒤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시 1년의 휴식기를 거친다. 애초에 5명으로 시작했던 성남지회는 윤숙자 회장의 공백으로 다소 힘겨운 시기를 보내다가 지회가 운영하는 작은 소모임 하나를 맡아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일주일에 한번 모임만 운영해달라고 그랬어요.그런데, 다시 성남지회에 복귀하니 이번에는 수도권 위원장을 해달라고 그러더군요. 당시 참교육학부모회는 영남권,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으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지부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권역별로 묶여 있었던 것이죠. 재밌는 건 저보고 위원장을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모임만 하시면 됩니다 그러더라구요"
그녀는 2002년도에 수도권 위원장을 하면서 성남지회를 벗어나 좀더 넓은 지역에 걸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에 참교육학부모회 조직위원장직을 수행하는 등 활동의 무대를 좀더 전국으로 넓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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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은 돈벌이를 위한 방안이 아니라 한 아이의 미래를 위한 고민에서 시작되죠"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
"달라진 것은 좀더 장기적인 안목과 시선을 필요로 한다는 것 정도. 지역에서 활동할 때에도 본부의 지침에 따라 여기 저기 참석했었던 만큼 사실 지부나 본부나 활동하는 것은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에요. 단지 역할만 달라졌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수년의 경험을 통해 입시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느껴왔던 바, 상층 조직의 활동을 통해 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알게 되고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2007년 마침내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에 선출됐다. 하지만 이 즈음 그녀의 지난 십년을 돌아보는 과정에 한편으로는 답답함이 남았다. 희망을 만들고 키워왔던 십년이었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지난 십년간 학교교육은 오히려 더욱 악화됐습니다. 입시 경쟁교육이 더욱 강화되었고 사교육 증대와 공교육에서 각 부모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높아지면서 부모들의 역할 또한 증대됐죠. 사회의 미래를 담당하는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이 증대되니 당연히 교육간 빈부 격차도 커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경쟁과 선택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정말 끔찍할 정도이죠. 경쟁의 격화가 아이들에게는 너무 무겁고 가혹합니다"
교육의 위기. 어제 오늘의 말은 아니지만, 그녀는 참교육학부모회와 걸어온 지난 십년을 돌아보며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참교육학부모회가 있고, 그녀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다. 희망은 여전히 그녀의 편인 것이다.
"2007년은 대선정국, 교육문제는 대선의 주요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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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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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는 부자에서 서민까지 그 누구라고 해도 자녀를 가진 사람이라면 주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대선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가 교육문제일 수밖에 없음은 윤숙자 회장만의 생각만은 아니다.
윤숙자 회장은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은 바로 '평등교육'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모가 지방에 살든, 돈이 없든, 장애인이든 상관없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균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 공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하겠죠. 정부는 재정을 확대해서 사실상의 의무교육이 정착되도록 해야겠죠"
"현재의 의무교육은 3분의 1짜리 의무교육입니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학교예결산의 60%를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적으로 의무교육에 대한 국가부담이 35%밖에 못미치는 현실을 되새겨보게 합니다. 의무교육 조차도 기본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때 우리의 교육은 효율성을 앞세우고 경쟁을 부추기기 보다는 기본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선 주요쟁점이 평등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윤 회장의 신념은 단지 신념에서 그치는 문제는 아니다. 서민의 교육비 지출은 십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계급.계층간 교육격차는 지역격차와 소득격차로 벌어지면서 끝없이 분화되고 있다.
특히 영어 사교육의 격차가 수도권 내에서 강남과 구분되어지고, 다시 수도권이 서울과 경기도, 경기도 내에서 교육도시와 비교육도시, 다시 수도권과 지방, 지방에서 광역도시와 중소도시, 중소도시와 농어촌 등 끝없이 분화되어 가는 과정은 지켜보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균등한 교육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미래를 가진 아이들에게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차별적인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 국제고등학교 등은 모두 사교육으로 단련된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들 학교에는 투자되는 교육재정의 양도 일반적인 교육기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많습니다 "
부에 부를 더하고, 빈에 빈을 더하는 구체적인 과정에 교육이 작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
"부모 개개인의 부담이 높아지면서 오늘날, 교육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상품으로 전락했습니다. 평등교육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아이들은 미래를 저당잡힌 채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 대선에서 대선주자들은 각자 나름의 철학으로 교육문제 해법을 내놓을 것입니다"
당면 교육 투쟁은 평등교육 위한 넓은 연대 속에서 진가를 발휘해야 참교육학부모회는 당면한 교육현안으로 2월 임시국회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고교평준화를 보완한다는 미명하에 교육격차만 더욱 벌려놓는 학교다양화정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개혁의 담론들이 사회개혁의 담론과 함께 후퇴하고 있습니다. 일반 학부모들이 공감하는 교육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교육개혁 주체들의 역량이 예전에 비해 부족함을 느낍니다. 교육담론이라는 것이 사회개혁과 정치개혁등 다양한 개혁과제들이 농축된 형태로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현재의 교육이 기존의 권력과 부를 세습시키는 주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교육개혁 세력들이 지금보다 더욱 연대를 공고히 해야한다고 봅니다. 자기 처지에 대한 이해관계에만 입각해 논쟁하기 보다는 상대를 존중하고 때로는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며, 아이들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윤숙자 회장은 "전교조가 학부모와 학생곁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다양한 교육주체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해에 전교조와 학생인권, 교원평가제 등과 관련해 여러 모임을 함께 했지만 원활한 소통과 협력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숙자 회장은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이 현장에서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부재하고 아이들의 인권이 교육주체들의 이해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각 교육개혁 주체들의 공고한 연대 속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교육은 어른들의 이해관계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아이들의 미래이자 우리 자신의 미래로 이해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해요"
아이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 온 참교육학부모회. 아이의 미래를 위해 걸어왔던 참교육 실현의 길.
윤숙자 회장은 자녀들이 잘 성장해주어서 한 시름 놓았지만, 꾸준히 짊어졌던 참교육에 대한 책임과 믿음은 아직 내려놓을 시기가 아니라며 넉넉한 웃음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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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