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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9-07-02 11:31:33 (2009 . 6 기 사) |
그렇다면 꿀벌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일까. 일부에서는 나무만 보고 숲을 놓쳤기 때문에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을 탐구해 왔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본 시각으로만 문제에 접근했다. 그 결과 훨씬 포괄적이고 진실에 가까운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유전자 조작 작물, 농약, 병원균, 전자기파, 지구온난화 가운데 병원균을 제외하면 나머지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모두 인공적인 것이다. 즉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은 현대 문명의 여러 가지 폐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꿀벌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화된 농업 방식이다. 원래 꿀벌이 인간에게 사육된 것 자체가 농업을 위한 것이었다. 각종 영양분은 물론 풍미가 뛰어난 꿀을 얻을 수 있는데다 가루받 이를 통해 과실을 영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농업에도 효율성의 극대화, 즉 투자 대비 산출 효용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게 됐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기계로 하는 대규모 기업 형태의 농업이다. 광대한 땅에 빈틈없이 작물을 심어놓고 거름주기, 약치기, 수확 등을 사람이 일일이 하는 대신 기계로 대신해 버리는 것. 물론 농기계를 사는 데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작물을 수확하게 됨으로써 단위면적당 또는 단위생산량 당 원가는 가내 수공업 형태의 농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지게 됐다. 당연히 가격경쟁력 면에서도 기존 방식의 농업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사용하는 도구만 기계화되는 것이 아니다. 거름이나 농약도 과거의 친환경적인 천연제품 대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화학제품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런 화학물질의 세례를 받은 농토가 얼마나 피폐해질지는 과학자들도 쉽사리 답을 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가급적 적은 자본으로 많은 농작물을 수확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특히 미국과 같이 광활한 대지를 갖고 있는 나라의 경우에는 "농토가 피폐해지면 딴 곳으로 옮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기계화를 통해 '저비용 고효율'로 처리하는 기업 형태의 농업도 몇 가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충매(蟲媒) 방식으로 과실을 만들어내는 것, 즉 여러 작물의 가루받이다. 일반적으로 꽃은 꽃가루를 받아 과실을 맺는데, 바람을 통해 동류의 꽃에게 꽃가루를 전파하는 풍매(風媒) 방식보다는 꿀벌이나 나비 등의 수분 매개동물에게 꿀을 주고 대신 그들의 몸에 꽃가루를 묻혀 전파하는 충매 방식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무인도에서 빈 병 여러 개에 편지를 집어 넣고 바다에 띄워 보낸 후 그 중 단 한 개만이라도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풍매 방식이라면 충매 방식은 전화로 택배회사 직원을 불러 목적지까지 최대한 신속 정확하게 문서나 물건을 보내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농작물은 충매 방식으로 가루받이를 해 씨앗이나 과일을 맺는다. 문제는 기업 형태의 농업을 위해 농작물을 너무 큰 땅에 너무 많이 심다보니 해당지역에 있는 꿀벌만 가지고서는 원하는 양만큼 가루받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이것을 모두 사람 손으로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 기업 형태의 농업에서 추구하는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꿀벌 임대사 업, 즉 이동 양봉이다. 이동 양봉이란 돈을 주고 여러 곳의 양봉업자들이 가진 꿀벌을 필요한 기간 동안 농장으로 불러 가루받이를 시키는 것이다. 이동 양봉, 꿀벌 실종에 중요 역할 이동 양봉은 꿀벌의 실종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모두 만들어 내는 온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꿀벌 임대사업을 시작한 양봉업자는 네파이 밀러. 그가 1908년 겨울부터 미국 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돈을 받고 농장주들의 가루받이를 해준 것이 시초였던 것. 이후 꿀벌 임대사업은 기업 형태의 농업을 추구하는 미국 농업의 특성상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양봉 업자들은 생산한 꿀보다 꿀벌 임대사업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정도였다. 그리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이 같은 꿀벌 임대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미국의 양봉업자들이 꿀벌 임대사업을 위해 벌집을 가지고 이동하는 거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어느 양봉업자의 경우 벌집을 가지고 1월에는 아이다호에 서 캘리포니아로, 3월에는 워싱턴으로, 5월에는 노스다코타로, 11월에는 다시 아이다호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떤 양봉업자는 플로리다를 출발해 뉴햄프셔, 텍사스를 거쳐 매년 1월에는 대표적인 기업 형태의 농업이 이루어지는 아몬드 가루받이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기도 한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양봉업자들도 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임대료를 쫓아서 벌집을 가지고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다. 문제는 이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꿀벌이 이렇게 엄청난 장거리 이동을 소화해낼 수 없다는 것. 벌집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꿀벌은 정해진 곳에 둥지를 지어놓고 주변의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며 살아간다. 겨울이 돼 꿀과 꽃가루를 구할 수 없게 되면 벌집 속으로 들어가 저장해 둔 먹이를 먹으며 버틴다. 이렇게 정착생활을 하던 꿀벌에게 1년 내내 장거리 이동으로 혹사시키는 만큼 무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꿀벌의 체질에 맞지 않는 끊임없는 이동은 꿀벌의 체력과 생산력, 면역능력 등 꿀벌의 생활력 전반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꿀벌을 만나게 됨에 따라 타지 꿀벌이 가진 풍토병, 바이러스, 그리고 응애도 옮게 된다. 여러 가지 꽃의 꿀이나 꽃가루를 먹지 못하고 한 가지 작물의 꿀과 꽃가루만 먹게 되는 것도 문제다. 더욱이 기업 형태의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살포된 각종 농약은 꿀벌의 체내로 고스란히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은 장기 이동으로 인해 떨어진 꿀벌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든 고당도 옥수수 시럽, 그리고 병충해로부터 꿀벌을 지키기 위해 항생제를 먹인다. 하지만 무리한 이동을 제거하지 않은 채 증상만 없애는 대증요법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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