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창동 9도라는데 새벽 공기 탓에 초겨울 느낌입니다. 똑바로 걷기 3일째, 달리기가 훨씬 편해졌어요. 내일도 '할머니 걸음걸이'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4 時 멸치 국숫집'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다들 나처럼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한성질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한 2년 동안 누가 시비 거는 사람이 없어 착하게 잘 지냈습니다. 초저녁부터 모기의 집요한 시비를 피해 도망 다녔는데, 새벽 3시에는 패트리어트급의 공격을 받고 개빡쳤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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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으니 각오하시라! 방문을 모두 때려 닫고 모기향을 피운 후, 각개전투로 일일이 압사시켰고 남은 모기는 질식해 뒈질 것입니다. <암살자들 2026/허진호> 때문에 북한 사람 닮아 슬픈 배우 유해진(57) 이, 배우 인생 최대 위기를 맞고 있고, 허진호(63)감독은 까딹하다가 청문회까지 불려오게 생겼습니다. 극우 형님들 워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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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 때 발사한 실탄이 문세광이 쏜 실탄보다 2발 많다며(6발의 총성, 4발의 탄피, 2발 행불) 진보 측에서 먼저 박정희 음모설을 제기하자, 꼭지가 열린 보수 전사 김태규가(60)가 5.18-12.12, 부엉이 바위까지 들먹거리며 염장을 질러 대는 걸 보았습니다. 와우, 보수에도 이런 싸움꾼이 있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솔직히 모처럼 속이 시원했어요. 한동훈-이진숙-김태규-전한길 리스펙트! 나는 왜 이재명을 지지하면서도 김태규를 응원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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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할멈 최민희가 진보의 선봉에 서서 반격을 했어요. 누가 이길까요? 청군 이겨라! 백군이겨라! 백수 때는 영화는 맘대로 보았었는데 먹고살려다 보니 <오디세이> <스파이더맨> <암살자들>까지 개봉관을 모두 놓쳤어요. 그나저나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영화 한 편에 이 난리 블루스를 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레드콤플렉스, 마조히즘, 나르시시스트까지 복잡합니다만 어차피 영화도, 상징 계도, 허구가 아닌가.
2.
새벽 모기와 정치 논쟁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처음에는 무시하려 한다. 그런데 계속 귓가를 맴돌고 물고 달아나면 어느 순간 이성보다 분노가 먼저 출동한다.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는 표현처럼 말이다. 정치에서도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이념적 소속에 따라 반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지지하는 편보다 상대편에서 거침없이 반격하는 사람에게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왜 이재명을 지지하면서도 김태규를 응원할까?”라는 질문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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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반드시 정치적 모순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사람에게는 정당이나 이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권위에 맞서는 사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쏟아내는 사람에게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정책에 대한 동의와는 별개의 감정이다. 다만 그 통쾌함이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쾌감으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논쟁의 내용보다 ‘우리 편이 상대를 때려눕히는 장면’을 소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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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논란도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다. 영화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삼으면서 공식 수사 결론과 다른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고, 제작진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창작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이를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상영 중단과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까지 요구하고 있다. 즉 지금 벌어지는 싸움은 단순히 영화의 완성도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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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허구가 어디까지 다시 말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충돌이다. 여기서 라캉을 끌어오면 더 재미있어진다. 다만 한 가지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라캉에게 허구적 구조와 가장 가까운 것은 ‘실재계’가 아니라 ‘상징계’다. 상징계는 언어·법·역사·기호를 통해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질서이고, 실재계는 오히려 그 기호체계로 완전히 붙잡히지 않는 잔여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가 허구라는 말은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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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영화라는 허구가 우리가 이미 진실이라고 믿어온 또 하나의 서사를 건드리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다. 역사적 사실은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 자체를 맨몸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기록·수사보고서·신문·증언·교과서·다큐멘터리 같은 상징적 장치를 통해 만난다. 영화는 거기에 또 하나의 서사를 집어넣는다. 바로 그래서 영화 한 편이 무서운 것이다. 허진호 감독 자신도 사건을 단정하기보다 남은 의문을 질문의 형태로 제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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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객에게 영화는 두 시간 뒤 사라지는 단순한 가상이 아니다. 강렬한 영상과 배우의 얼굴, 음악과 서사는 기억 속에서 실제 역사와 섞일 수 있다. 그러므로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게 된다. 어느 한쪽만으로 간단히 끝낼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 결국 <암살자(들)>을 둘러싼 소동이 보여주는 것은 ‘영화가 허구라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의 정반대다. 우리는 허구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허구를 놓고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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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쩌면 선생님이 청군도 응원하고 백군도 응원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느 진영이 이기는가보다 양쪽의 확신이 충돌하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진실의 틀’에 금이 가는 장면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금 사이에서 곧바로 또 하나의 음모론을 진실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해석과 허구가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끝까지 따져보는 일이다. 모기는 잡아도 되지만, 생각까지 때려잡을 필요는 없다. 논쟁이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질문도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2026.10.4.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