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누가는 이방인 백부장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방인 백부장은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사람으로 유대인을 위해 회당을 지어줄 만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에게 사랑하는 종이 있는데, 그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고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 장로들을 보내어 그 종을 구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집도 가까웠습니다. 그 때 백부장은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오심을 감당하지 못하여 다른 종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릅니다. 카이저(로마 황제)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군대의 백부장의 입에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인 “주”라는 말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은 그의 신앙의 바름과 깊이를 보여줍니다(1-10). 그는 이 세상의 참된 주인이 예수님이시고, 그분이 하나님과 동등된 분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나인 성에 사는 과부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주십니다. 이것은 과거 엘리사가 사렙 과부의 아들을 살려준 것과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참된 선지자로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가장 능력이 많으신 선지자이십니다(11-17). 요한은 이 소문을 듣고 제자 둘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분이 메시야인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하신 사역을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메시야가 오면 있게 될 모든 일을 행하고 계셨습니다(이사야서35:5-6; 29:18-19; 61:1을 복합적으로 인용하심). 이 이야기를 들은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임을 믿었을 것입니다(18-23). 요한의 제자가 떠난 후에 예수님은 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보다 뛰어난 요한이라고 소개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메시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길을 닦아 놓는 선지자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보지 못한 메시야 왕국의 실체를 신약의 백성들은 보고 즐기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백성과 세리들, 곧 자신들을 죄인으로 여기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예수님 곁에 있는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고 인정받는 반면에,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아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24-30).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잘못을 꼬집습니다. 아이들이 피리를 불고 춤추는 것은 혼인 잔치 놀이입니다. 그리고 애곡하고 우는 것은 장례식 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는 혼인 잔치 놀이도, 요한이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며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장례식 놀이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거부했습니다. 어느 것에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지혜이신 예수님은 그 자녀들, 곧 그분을 따르는 자들로 인해 옳다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 때 그 마을에서 죄인으로 취급 받던 여인이 식사 중인 예수님께 나아와 울며 그분의 발을 자기 머리 털로 닦고 향유를 그 발에 부어드렸습니다. 시몬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만약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죄인인 것을 알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시몬에게 많은 빚을 탕감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빚을 탕감해준 주인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여자가 시몬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그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 하나로 생각하고 식사에 초대는 했지만, 그분을 자기의 죄를 사해 주실 분으로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빚지고 있는 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예수님을 귀하게 여겼으며 감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죄가 용서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방인 백부장과 여인,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생각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여깁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하러 오신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그저 위대하고 좋은 분 정도로만 여깁니까?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께 많은 빚을 탕감 받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오늘 하루가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