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도서관
설날 연휴가 끝난 첫날이던 어제는 열차로 삼랑진을 지난 원동으로 나가 순매원을 찾아 이제 막 피려는 매화를 완상하고 왔다. “벼랑에 잔도 남은 낙동강 강변으로 / 물길과 나란하게 철길이 달리면서 / 열차는 원동역에서 잠시 멈춰 떠난다 // 갯버들 수액 올라 연초록 물이 들면 / 순매원 매실농원 봉오리 꽃잎 펼쳐 // 봄소식 눈으로 전해 코끝에도 닿는다” ‘순매원 매향’이다.
이월 둘째 수요일은 아침부터 하늘이 흐리고 강수가 예보되었다. 새벽에 전날 원동으로 나가 완상한 매화로 시조를 한 수 남기고 아침 식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번 겨울은 비가 잦아 산불이나 가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비가 내리고 연이어 다음 주 초반에도 강수 예보가 나왔다. 비가 오는 날은 안식과 함께 도서관으로 나가 하루 내내 지내 시간 활용에는 문제가 없다.
설날 연휴에 들기 전 두 곳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배낭에 챙겼다. 운영 주체가 시청인 용지호수 작은 어울림 도서관과 경남교육청이 운영하는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이다. 먼저 용지호수 어울림 도서관으로 나가 업무 시작 전이라 관외 대출 도서를 문밖 무인 반납기에 넣어 두었다. 이후 호숫가를 한 바퀴 걸었는데 비가 오려는 아침이라 산책 나온 이들이 없어 호젓해 좋았다.
몇 해째 용지호수로 찾아와 겨울을 넘기는 고니 한 쌍이 있었다. 재작년 가을에는 그 고니 한 쌍은 북녘 본향에서 새끼를 쳐 어린 고니 두 마리까지 데리고 왔다. 작년 가을 나타났던 고니 가족 중 새끼 두 마리는 몸집이 불어나 어미와 구분 안 될 만큼 성체로 자라 같이 왔더랬다. 호수를 찾은 산책객이 던져 주는 빵조각이나 과자부스러기를 받아먹던 고니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설 이후 용지호수에 보이지 않는 고니 가족은 북녘으로 먼 행로를 떠난 듯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해 철새들이 예년보다 귀향을 서둘러도 될 듯하다. 호숫가에 한 그루 자라는 능수버들은 수액이 오르는 기미를 보여 가지가 늘어지고 벚나무 가지에 달린 꽃눈도 도톰하게 부풀어갔다. 진해에서 여는 군항제도 올해는 3월 22일 개막되어 4월 첫날 막을 내릴 거라는 기사를 봤다.
인적 드문 호숫가를 거닌 뒤 용호동 상가 원이대로를 건너 주택지에서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거쳐 창원도서관으로 갔다. 사서들이 차를 몰아 출근하는 속에 나보다 나이가 젊어 보인 한 사내는 우산을 든 채 걸어왔다. 별관 열람실로 올라 업무 개시와 동시에 대출했던 책은 반납하고 신간 코너 서가로 가서 읽을 책을 몇 권 골라냈다. 고승의 산문과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을 뽑았다.
2층 창가에서 지상 뒤뜰이 내려다보인 열람석에서 향봉이 쓴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를 펼쳤다. 스님은 현재 익산 미륵산 사자암 주지로 상좌도 공양주도 없이 홀로 밥 지어 먹고 글 쓰고 산책했다. 젊은 날 해인사 선방에서 수행 행자 시절 고승과 알력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기도 했고 전방의 하사관 후보생 교육을 거쳐 군법사나 경찰청 경승으로 지낸 이력이 이채로웠다.
때가 되어 휴게실로 건너가 컵라면으로 한 끼니 때우고 북카페 커피로 양치를 대신했다. 이후 열람석으로 돌아와 오전의 속편에 해당할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을 읽었다. 두 권 다 지난해 여름 동시 출간된 책이었는데 스님이 인도와 네팔과 티베트와 중국으로 떠돈 15년간의 수도 만행을 엿볼 수 있었다. 부제로 붙인 ‘자유롭고 당당하게 오늘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고승의 책을 덮고 관외로 대출되지 않는 웨인 다이어의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를 일별했다. 저자는 꽤 알려진 심리학자였고 영적 멘토라는데 나는 처음 접한 인물이었다. 이어 국립과학천체관에서 펴낸 ‘11인의 과학자가 펴낸 미래과학트렌드’는 과학의 세부 영역 필진이 쓴 제목만 읽고 책장을 닫아두었다. 하굣길에 집으로 오다가 동네 카페에서 꽃대감을 만나 종례를 했다. 2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