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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隨處作主)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라는 뜻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놓여도 진실하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주인공으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隨 : 따를 수(阝/12)
處 : 곳 처(虍/5)
作 : 지을 작(亻/5)
主 : 주인 주(丶/4)
열흘 전 폭염 속에 초의차(草衣茶)의 자취를 더듬어 남도 답사를 다녀왔다. 초의 스님이 머리를 깎은 나주 운흥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적 하나 없는 적막 속이었다. 다시 초의차의 전통으로 떡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은 불회사(佛會寺)로 갔다.
오랜만에 들른 불회사에서 정연(淨然) 큰스님의 소식을 물으니, 덕룡산 꼭대기 일봉암(日封菴)에서 혼자 지내신다는 말씀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 10년 만에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끓여주시는 불회사 떡차를 마셨다.
벽에 걸린 서옹(西翁) 스님의 글씨 때문에 어느덧 화제가 옮아가, 서옹 스님이 생전에 즐겨 쓰신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두고 한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대구가 되는 바깥 짝은 ‘입처개진(立處皆眞)’이다.
이 두 구절은 임제(臨濟) 선사가 ‘임제록(臨濟錄)’에서 한 설법에 나온다. “너희가 만약 불법을 얻고자 하거든, 대장부가 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나약하게 그때그때의 처지에 따른다면 얻지 못할 것이니, 큰 그릇을 갖춘 사람이 남의 유혹을 받지 않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야만, 서있는 곳이 모두 참될 것이니라.”
어디서건 당당한 주인의 삶을 살 때만이 서 있는 곳마다 참되게 된다는 말이니, 외물에 휩쓸리는 일 없이 명명백백하고 정정당당한 삶의 주인이 되라는 가르침이다.
초의도 이 구절을 즐겨 썼다. ‘일미 선생께 올리는 글(上一味先生書)’에서 “만약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백년 인생이 한갓 수고롭기만 할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이 즐거움을 믿어 깊이 깨달음이 없다면, 다만 마땅히 그 곳에서 이를 깨달아, 마땅히 그 깨달은 바를 날마다 써서 인연이 닿는 곳에 응하여, 능히 곳에 따라 주인이 됨을 얻어, 저절로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게 될 것입니다(若人不悟, 徒勞百年. 今於此, 無信此樂而深悟, 但當與其所悟之, 於日用應緣處, 能得隨處作主, 自然立處皆眞)”라고 했다.
깨달음이 없이는 인생은 도로(徒勞)의 연속일 뿐이다. 깨닫는 순간 수처작주하여 입처개진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내가 딛고 선 자리는 참된가? 8년째 암자를 떠나지 않고 독공 중이신 정연 스님의 맑은 눈빛에 초의차의 향을 품고 산을 내려왔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얼마 전에 오랜 시간 지기를 다져온 벗이 필자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30년 전의 추억을 소환하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적 모임을 거의 배제하고 지내는 상황이라 그를 환대하는 모임은 아직 갖지 못했다.
가까운 곳이라도 그저 온라인을 통해 환영인사를 나누며 실로 오랜만에 젊은 시절 함께한 글벗들과 소통하고 자잘한 행복감에 취했다.
온라인 소통을 위해 카톡방을 열다가 글벗들 중 평소 존경하는 교수님의 프샤에 소개되어 있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한자어를 발견했다. 그 의미가 새겨볼 만하여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수처작주는 당나라의 스님이었던 임제 선사가 남긴 말로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즉 '주인 의식을 가지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말은 주인의식을 갖지 못할 때 생기는 나태를 경계하는 말로도 볼 수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곧 진리다’는 입처개진(入處皆眞)과 함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入處皆眞)’으로 많이 쓰인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면 그 자리가 행복을 가져온다는 의미이다. 주변 환경이 어렵더라도 자신이 만족하여 사는 곳이 제일이라는 것까지 의미를 확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긍정적 사고와 유명한 라틴어 시구 카르페디엠(Carpe diem)과도 일맥상통한다.
좀 더 깊이 새겨보면 성경의 ‘오리(五里)를 가자고 하면 십리(十里)를 가줘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내주라’는 말과도 의미가 닿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처작주를 기억하며 어느 곳에나 주체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주인의식을 갖는다면, 그 사람이 속한 단체나 조직은 발전할 것이다. 주인이 된 마음자세는 환경 탓 남탓과는 거리가 멀다.
우연히 만난 ‘수처작주’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설정한 꿈의 방향이 다소 흐트러진 시점에 놓인 필자에겐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갖게 해주는 말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지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것은 마음공부로 보인다. 누구든, 자신의 꿈을 위한 작업에 앞서서 마음공부를 챙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인터넷 검색 중 걷고의 걷기일기'에서 의미 있는 구절을 또 발견한다. ‘수행의 목적은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처작주다.’
수처작주(隨處作主)
복잡하고 급변하는 삶의 현실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부딪히고 병이된 소화하지 못하는 크고 작은 다툼과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고 신속하게 살리는 명약이 이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사실이다.
처음 자궁에서 사람이 생기는 과정에서 뜻을 찾는다면, 몸이 먼저 생기고 마음이 따라 생긴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먼저 생기고 몸이 따라 생긴 것인가?
사람이 여행을 하는 일에서 뜻을 찾는다면, 몸을 따라서 마음이 함께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따라 몸이 함께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인가?
사람이 사는 일에서 뜻을 찾는다면, 몸을 따라 마음이 함께 따라 사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따라 몸이 함께 따라 사는 것인가?
이렇듯 사람이 처음 생겨나고, 태어나서는 곳곳마다 어디든 여행을 하고, 한평생 인생을 살아가는 일들이 그렇다 한다면, 그럼 이러한 존재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른바 몸이 주인인가? 마음이 주인인가?
10여 년 전 사업을 크게 실패하고 방황하다, 방송으로 유명한 어느 승려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항상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그곳에서 그 일에서 주인이 되라며 인용했다는, 저 유명한 임제선사(臨濟禪師)의 가르침인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듣고, 그 네 글자를 회사 사무실 벽에 걸어놓고, 열심히 노력해서 재기에 성공했다며, 이따금 사람들에게 경험과 자랑을 삼아 이야기하던 지인이, 지난 연말 갑자기 쓰러져 고인이 돼버렸다는 가슴 아픈 비보를 들었다.
짐작컨대 그의 신념이며 사업을 성공시켜주는 주문(呪文)이 돼버린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날마다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과중한 일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쓰려져버린 것 같은데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오래전 그에게 수처작주에 대하여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려다, 방송으로 유명한 그 승려를 철석같이 믿고, 그가 쓴 책을 보물처럼 지니고 있는 그에게, 촌부의 말이 먹히지도 않았지만, 나 역시 굳이 재기에 성공하여 좋아하는 그에게 그럴 것 없다싶어, 가끔 그가 와서 자랑삼아 이야기 할 때면, “그렇게 싸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자랑을 하고 다니는 그놈이 누구인지를 아는 날이 있을 것”이라며 웃고 말았는데......
그가 떠났다는 비보를 듣고 승속을 떠나 뭔가를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는 수처작주(隨處作主)가 진실로 임제선사가 이야기한 그 뜻에 부합하고 있는 것인지 종일 다시 생각해보지만, 모두 다 본질을 착각 오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주 오래전 고인이 돼버린 임제선사를 찾아가 당신이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의 본뜻이 뭐냐고 물어볼 방도가 없는 이상, 사람마다 이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라,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다행한 것은 계곡을 거슬러 원천인 옹달샘을 찾아가 물맛을 직접 느껴보듯, 배우는 마음으로 이 문장이 나오는 어록의 전문을 읽어보면....
수처작주(隨處作主)는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가 깨달은 저 유명한 금강경(金剛經) 제10(第十)의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 나오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청산 맑은 숲속 옹달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임제선사를 만나 또 다른 이름이 된 것임을 알 수가 있고, 이것으로 선사가 말한 수처작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
문제는 본질을 깨우치는 수처작주라는 물이 임제선사의 산문을 벗어나 저잣거리로 나온 순간,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되어 사람들에게 독단과 독선을 가지게 하면서, 일등 제일주의를 부추기는 독극물이 되어, 본래의 진면목인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세속의 처세술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시간과 공간인 이 수처(隨處)를 이르는 장소나 머무는 곳 물리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순간, 뒤에 따라오는 작주(作主)는 자동으로 왜곡되어, 임제선사가 바란 본래의 목적인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세속의 처세술이 돼버렸고, 지난 연말 사람이 죽어 고인이 돼버린 사건에서 보듯, 사람들을 죽이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독이 돼버린다는 말이다.
마치 강물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임제선사의 수처작주를 언제 어디서든 주인 의식을 갖고 주관적인 삶을 살라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받아들인 결과 “여기는 내가 주인이다.” 또는 “우리가 주인이다”는 등등의 주장으로 생을 살면서, 스스로 탐욕으로 찌들고 경쟁으로 지새는 이른바 괴물이 돼버렸다.
부연하면 이것을 사람을 깨우치고 세상을 구하는 불교 본래의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이 잘못 해석한 수처작주가 오늘 한국 불교가 퇴락하고 승속을 함께 타락시켜버린 원인이다.
안타까움에 글을 쓰다 보니 쓸데없는 난설(亂說)이 돼버렸는데, 오늘 촌부가 이야기하는 수처작주가 어설픈 개똥이다 하여도, 분명한 것은 복잡하고 급변하는 삶의 현실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부딪히고 병이된 소화하지 못하는 크고 작은 다툼과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고 신속하게 살리는 명약이 이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자고나면 발전하는 과학문명에서 소외되는 인간들과 인간 세상을 효과적으로 구하는 것은,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몸과 마음까지 고립되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살리고 세상을 구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속에서 드러난 몸이라는 현상을 통해서 마음의 작용과 실체를 깨달고, 경계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이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바르게 해석하고 삶을 통해서 실천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우리는 무기력과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자립정신으로, 미지의 세계에 용감하게 뛰어 들어서, 스스로의 능력에 놀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도록 하면서,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세계를 전개해나가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오늘도 멋지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쌓아가 보자.
유익한 즐거움이 셋 있고, 해로운 즐거움이 셋 있다. 공자님은 “예악(禮樂)즐기며 남의 착한 것을 말함을 좋아하며, 어진 벗이 많음을 좋아하면 유익하다. 교만한 것과 향락함을 즐기며 안일을 즐기고 잔치놀이를 즐기면 해롭다”고 하였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계절이 바뀌면 철에 따라 갈아입어야 하듯이 세상은 나날이 변하기 때문에 오늘의 지도자도 시대가 바뀌면 변해버려서 퇴보는 필연적이다.
삶의 과정에는 아픔과, 건설적인 파괴도 있지만, 적응력만 강하면 전진을 위한 새로운 감각이 창출되어 불확실한 세태를 빨리 읽을 수 있고, 치열한 경쟁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다.
우리들의 두뇌는 모두가 개인 것이다. 그 누구도 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과 똑같은 생각이나 경험을 할 수는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그 일에 몰두하면서 한 점 낭비가 없도록 해나가자.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줄도 알아야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나 역경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성숙한 경험으로 바꾸어서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보자. 위기는 곧 찬스요, 찬스가 곧 위기다. 노력을 할 때의 두뇌는 새로운 신경세포를 생성시켜주어서,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는 정반대방향으로 작동한다.
비법구족(非法具足)이라, 나쁜 사람은 바르지 못한 성품 때문에 나쁜 사람과 가까이 하고 나쁜 사람의 조언을 듣고, 나쁜 생각과 나쁜 언행, 나쁜 견해로, 나쁜 것들을 나누면서 살아간다.
정법구족(正法具足)이라, 착한 사람은 훌륭한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착한 사람과 가까이 하면서 착한 사람의 조언을 듣고, 착한 생각과 착한 언행, 착한 견해로, 착한 것들을 나누면서 살아간다. 돌 속에도 조각 작품은 들어 있고, 백지 속에도 그림은 들어 있다.
돌이나 백지는 미완성 형태로 존재하고 있지만, 조각가나 화가의 손이가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모른다. 우리의 미래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어떤 인생작품이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지난날의 생활들을 뼈아프게 반성하고 수시로 거듭나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과 고난과 더불어 동이 트고 해가진다. 이순간 자기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미래지향적이고, 외부 지향적이 되어서, 지속적인 자기개혁을 통하여 성공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수월하면서 자신의 꿈과 목표가 이루어진 예는 없다. 겉만 화려하고 속이 텅 비어있으면 화려한 겉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장단점과 특질이 있다. 장관도 운전은 운전기사만 못할 수 있고, 달리기나 김치담기는 신입직원만 못할 수가 있다.
재산도 없고 직위도 낮다며 자신을 못난이라 미워하지 말자. 서로를 존중하며 칭찬과 격려 속에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소속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도록 노력해나가자.
전등도 스위치를 켜야 불이 들어온다. 켜져 있는 불만 보고 켜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서고, 앉고, 먹고, 잠자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노력과 일관된 마음을 유지하는 힘과 지혜로 현재의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어, 아픔을 기쁨의 원천으로 전환하며 살아가자. 상황 따라 수시로 마음이 변한다면, 남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더 좋은 인연을 만나 더 큰 일을 하려면, 초심을 유지하며 결기를 다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 隨(따를 수, 게으를 타)는 ❶형성문자로 随(수, 타)는 통자(通字), 随(수, 타)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따라간다는 뜻을 가진 隋(수)로 이루어지며 뒤에서 따라간다는 뜻이다. ❷형성문자로 隨자는 ‘따르다’나 ‘추종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隨자는 총 16획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글자이다. 隨자는 辶(辵:쉬엄쉬엄 갈 착)자자와 隋(수나라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隋자는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隨자에 쓰인 辶(辵)자는 길과 사람의 다리를 함께 그린 것으로 ‘길을 가다’라는 뜻이 있다. 隨자는 이렇게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辶자를 응용해 누군가를 따르거나 추종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隨(수, 타)는 (1)수괘(隨卦)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따르다 ②추종하다 ③부화하다(附和; 주견이 없이 경솔하게 남의 의견에 따르다) ④좇다, 추구하다 ⑤발 ⑥발꿈치 ⑦괘(卦)의 이름 ⑧따라서 ⑨즉시, 곧 바로 그리고 ⓐ게으르다(타) ⓑ타원형(楕圓形)(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따를 호(扈)이다. 용례로는 때때로나 그때 그때를 수시(隨時), 때에 따라 곧을 수즉(隨卽), 따라서 함께 참여함을 수참(隨參), 붙좇아서 따르는 일을 수반(隨伴), 어떤 양식에도 해당되지 아니하는 산문 문학의 한 부문을 수필(隨筆), 일정한 임무를 띄고 따라서 감을 수행(隨行), 마음에 느껴진 그대로의 생각을 수감(隨感), 마음속으로 부터 고맙게 여기어 기뻐함을 수희(隨喜), 물결 치는 대로 따른다는 뜻으로 그때 그때의 형편이나 환경에 따름을 이르는 말을 수파(隨波), 벼슬아치의 승진이나 전보가 있을 때 품계의 차례를 따라 함을 수품(隨品), 타고 난 운명에 따름을 수명(隨命), 장사 지내는 데 따라 감을 수상(隨喪), 일정한 계통이 없이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수상(隨想), 그때 그때의 형편이나 시세를 따름을 수세(隨勢), 세상의 풍속을 따름을 수속(隨俗), 남의 뜻에 순종함을 수순(隨順), 붙어 따름이나 따라 감을 수신(隨身), 자기 마음대로 함을 수의(隨意), 여럿 중에 제일을 수일(隨一), 따라 좇음이나 따라 다니며 곁에서 심부름 등을 하는 사람을 수종(隨從), 남의 죄에 관계됨을 수좌(隨坐), 편한 것을 따름을 수편(隨便), 뒤를 따름을 수후(隨後), 수후의 구슬로 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수주탄작(隨珠彈雀), 자기의 뚜렷한 주견이 없이 여러 사람의 틈에 끼어 덩달아 행동을 함을 수중축대(隨衆逐隊), 때에 따라 적절히 일을 처리함을 수기응변(隨機應變) 등에 쓰인다.
▶️ 處(곳 처)는 ❶회의문자로 処(처)의 본자(本字), 处(처)는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와 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 : 止; 발을 아래로 향하게 쓴 자형으로 내려가다, 이르는 일)部와 범호엄(虍; 범의 문채, 가죽)部의 합자(合字)이다. 걸어서 걸상이 있는 곳까지 가서 머무름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處자는 '곳'이나 '때', '머무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處자는 虎(범 호)자와 処(곳 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處자는 본래 処자가 먼저 쓰였었다. 処자의 갑골문을 보면 止(발 지)자와 冖(덮을 멱)자만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발이 탁자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止자 대신 人(사람 인)자가 쓰이면서 사람이 탁자에 기댄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다. 処자는 이 두 가지 형태가 결합한 것으로 사람이 탁자에 기대어 잠시 멈추어 있음을 뜻한다. 이후 소전에서는 処자와 虎자와 결합하면서 범이 앉아있는 모습의 處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處(처)는 (1)중앙(中央) 관서(官署)의 하나 (2)육군(陸軍)의 사단(師團) 중(中) 이상(以上) 사령부의 참모부서의 이름. 일반(一般) 참모 부서에 쓰임 (3)어떤 조직(組織) 따위에서 일정한 사무(事務)를 맡아보는 부서 명칭(名稱)의 하나 (4)고려(高麗) 23대 고종(高宗) 이후에 있었던 요물고(料物庫)에 딸린 일종의 장원(莊園) 등의 뜻으로 ①곳, 처소(處所) ②때, 시간(時間) ③지위(地位), 신분 ④부분(部分) ⑤일정한 표준(標準) ⑥살다, 거주하다 ⑦휴식하다, 정착하다 ⑧머무르다 ⑨(어떤 지위에)있다, 은거하다 ⑩누리다, 향유(享有)하다 ⑪맡다, 담당하다 ⑫다스리다 ⑬대비(對備)하다 ⑭(미혼으로)친정에 있다 ⑮돌아가다 ⑯사귀다 ⑰보살피다 ⑱처리(處理)하다, 대처(對處)하다 ⑲분별(分別)하다 ⑳차지하다 ㉑두다, 보지(保持)하다(온전하게 잘 지켜 지탱해 나가다) ㉒모이다 ㉓자처(自處)하다 ㉔결단(決斷)하다 ㉕멈추다 ㉖(병을)앓다 ㉗나누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을 다스려 치러 감을 처리(處理), 위법 행위에 대하여 고통을 줌을 처벌(處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병의 증세에 따라 약재를 배합하는 방법을 처방(處方), 처리하여 다룸을 처분(處分), 일을 처리함을 처사(處事), 근로자에게 어떤 수준의 지위나 봉급 등을 주어 대접하는 일을 처우(處遇),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몸가짐이나 행동을 처신(處身), 사람이 살거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을 처소(處所), 형벌에 처함을 처형(處刑), 일을 감당하여 치러 감을 처치(處置), 이 세상에서 살아감을 처세(處世), 결정하여 조처함을 처결(處決), 세파의 표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처사(處士), 정해 두고 항상 있는 곳을 거처(居處), 사물이 나온 근거를 출처(出處), 가까운 곳을 근처(近處), 일을 정돈하여 처리함을 조처(措處), 어떠한 일에 대응하는 조치를 대처(對處), 정부 각 조직체의 부와 처를 부처(部處), 몸의 다친 자리를 상처(傷處), 가는 곳이나 이르는 곳을 도처(到處), 중요한 데를 요처(要處), 처리하기 어려움 또는 처지가 딱함을 난처(難處), 여러 곳이나 모든 곳을 각처(各處), 어떤 곳이나 아무 곳을 모처(某處), 좋은 방법으로 알맞게 처리함을 선처(善處), 본디 나서 자라났거나 생산되었던 곳을 본처(本處),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말을 추처낭중(錐處囊中), 잘한 뒤에 처리한다는 뜻으로 후환이 없도록 그 사물의 다루는 방법을 정한다는 말로서 뒤처리를 잘하는 방법이라는 말을 선후처치(善後處置),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이란 뜻으로 좋은 얼굴로 남을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처신하는 사람 또는 가는 곳마다 기분 좋은 일이라는 말을 도처춘풍(到處春風), 하는 일마다 모두 실패함 또는 가는 곳마다 뜻밖의 화를 입는다는 말을 도처낭패(到處狼狽),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되었다는 말을 묘서동처(猫鼠同處), 발을 붙이고 설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기반으로 삼아 의지할 곳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착족무처(着足無處), 벼슬이나 속세를 떠나 산골이나 시골에 파묻혀 글읽기를 즐기며 지내는 신비를 이르는 말을 산림처사(山林處士), 가는 곳이나 간 곳이 분명하지 아니하다는 말을 거처불명(去處不明), 원통한 사정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말을 호소무처(呼訴無處), 안심하고 있어 재앙이 닥쳐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을 연작처당(燕雀處堂) 등에 쓰인다.
▶️ 作(지을 작, 저주 저, 만들 주)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㑅(작)의 본자(本字), 做(주)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乍(사, 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作자는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作자는 人(사람 인)자와 乍(잠깐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乍자는 옷깃에 바느질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옷깃에 바느질하는 것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작업하기가 쉬웠었는지 乍자는 후에 ‘잠깐’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人자를 더한 作자가 ‘만들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作(작)은 (1)작품(作品) 제작(製作), 저작(著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작황(作況)이나 또는 농사(農事)의 뜻으로 나타내는 말 (3)작전(作戰) 등의 뜻으로 ①짓다, 만들다 ②창작(創作)하다 ③일하다, 노동(勞動)하다 ④행하다, 행동하다 ⑤부리다, ~하게 하다 ⑥일어나다 ⑦일으키다 ⑧이르다(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⑨비롯하다 ⑩삼다, 임명하다 ⑪닮다 ⑫농사(農事) ⑬일, 사업(事業), 공사(工事) ⑭저작(著作), 작품(作品) 그리고 저주 저의 경우는 ⓐ저주(詛呪)(저) ⓑ저주하다(저) 그리고 만들 주의 경우는 ㉠만들다(=做)(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을 찬(撰), 지을 조(造), 지을 제(製)이다. 용례로는 기계의 운동 부분의 움직임을 작동(作動), 사물 또는 사람의 이름을 지음을 작명(作名), 서로 헤어짐을 작별(作別), 만든 물품을 작품(作品),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작가(作家), 일을 결정함을 작정(作定), 마음을 단단히 먹음을 작심(作心), 싸움을 진행하는 방법을 세움을 작전(作戰), 악곡을 창작함을 작곡(作曲), 글을 지음 또는 그 글을 작문(作文), 일터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함을 작업(作業), 농작의 잘 되고 잘못된 상황을 작황(作況), 움직이게 되는 힘을 작용(作用), 무리를 이룸을 작당(作黨), 처음으로 함을 시작(始作),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듦을 제작(製作), 물건을 지어서 만듦이나 일부러 무엇과 비슷하게 만듦을 조작(造作), 기계 등을 움직이어 작업함을 조작(操作), 떨쳐서 일으킴 또는 일어남을 진작(振作),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 또는 그 움직임을 동작(動作), 토지를 갈아서 농작물을 심음을 경작(耕作), 썩 잘된 글이나 작품을 걸작(傑作), 처음으로 만듦을 창작(創作), 사람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 광인도 될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작광작성(作狂作聖),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 형제를 일컫는 말을 작의형제(作義兄弟), 마음 먹은 지 삼일이 못간다는 뜻으로 결심이 얼마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된다는 말을 작심삼일(作心三日), 끊임없이 힘써 함을 이르는 말을 작지불이(作之不已),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을 마부작침(磨斧作針),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을 일컫는 말을 자작자수(自作自受), 낡은 것을 바꾸어 새 것으로 만듦을 일컫는 말을 환부작신(換腐作新),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뒤에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이면공작(裏面工作),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제쳐놓고 제 마음대로 처리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회빈작주(回賓作主) 등에 쓰인다.
▶️ 主(금 주/주인 주)는 ❶상형문자로 등잔 접시 위에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문자의 윗부분의 丶(주)는 등불이 타는 모양이고, 王(왕)은 촛대의 모양이며 임금이란 王(왕)과는 관계가 없다. 主(주)는 처음에 丶(주)로만 쓴 것을 더욱 자세하게 쓴 자형(字形)으로, 나중에 그 뜻으로는 炷(주)를 쓰고 主(주)는 등불의 중심(中心), 주인, 군주(君主)의 뜻이다. ❷상형문자로 主자는 ‘주인’이나 ‘주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主자는 王(임금 왕)자에 丶(점 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主자는 본래 촛대를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 나온 主자를 보면 긴 촛대 위에 심지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主자의 본래 의미는 ‘심지’였다. 그러나 후에 主자가 ‘주인’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火(불 화)자를 더한 炷(심지 주)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한 집안을 밝혀야 할 사람은 가장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主자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主(주)는 (1)주인(主人) (2)임금 (3)임자 (4)주장(主張), 근본(根本)이 되는 것을 이르는 말 (5)천주(天主) (6)구세주(救世主) (7)만백성(萬百姓)의 주인(主人)이라는 뜻으로, 여호와 또는 예수를 이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임금 ②주인(主人), 임자, 소유주(所有主) ③우두머리 ④상전(上典) ⑤여호와, 하느님, 알라(Allah) ⑥주체(主體) ⑦당사자(當事者), 관계자(關係者) ⑧결혼(結婚) 상대자(相對者) ⑨자신(自身) ⑩위패(位牌) ⑪주견(主見), 줏대 ⑫자신의, 주관적인 ⑬가장 주요한, 가장 기본적인 ⑭주관하다, 책임지다 ⑯주되다 ⑯주장하다 ⑰예시(例示)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손 객(客),백성 민(民), 신하 신(臣), 손 빈(賓)이다. 용례로는 신하가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을 주상(主上), 한 집안의 책임자를 주인(主人), 직장이나 단체에서 어떠한 일을 주로 담당함을 주임(主任), 어떤 일의 주장(主將)이 되어 움직임을 주동(主動), 중심되는 힘을 주력(主力), 주창하여 개최함을 주최(主催),주의나 주장을 앞장 서서 부르짖음을 주창(主唱), 주인과 손을 주객(主客), 주장이 되어 이끎을 주도(主導), 어떤 일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주역(主役), 자기 의견을 굳이 내세움을 주장(主張),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한 집안의 주장이 되는 주인을 호주(戶主),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하여 행함을 자주(自主), 영업에 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주인을 업주(業主), 가게나 식당 따위의 손님을 화주(華主), 붙어사는 동식물을 제 몸에 붙여서 그에게 양분을 주는 동식물을 숙주(宿主), 황후 몸에서 태어난 임금의 딸을 공주(公主),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맹약을 서로 맺은 개인이나 단체의 우두머리를 맹주(盟主), 나와 대상이 일체가 됨을 주객일체(主客一體), 주인은 손님처럼 손님은 주인처럼 행동을 바꾸어 한다는 것으로 입장이 뒤바뀐 것을 주객전도(主客顚倒), 주인은 손에게 술을 권하고 손은 주인에게 밥을 권하며 다정하게 먹고 마심을 주주객반(主酒客飯)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