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정거장의 노란 의자들 / 최승호
땅속의 계단을 내려간다
어떤 죽음의 동굴을 내려가서
우리는 또 이렇게 붐비면서 망령들 속에 기다릴까
저승의 강가에 앉아
龍船을 기다릴까
춥고 찌든 몽고족의 얼굴로
……가 웅크린 채 앉아 있는 노란 의자
복권을 구겨버리고
……이 앉아 기다리는 노란 의자
이 지하철 정거장이
뚜렷한 희망의 개찰구로 뻗어 있다면
저리도 시무룩한 얼굴들이 아니다
설렘조차 없는 기다림
멋쟁이 뚜쟁이 같은 광고판
이윽고
구식 제복을 입은 기관사를 따라
줄줄이 얼빠진 얼굴 가득한 열차는 온다
저승의 강을 건너는 용선이 있다면
용선이 있다면 용선을 타고
영혼은 또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북적거리던 한 무리가 휑하니 떠나면
돌고드름과
돌의 떡잎과
돌기둥들이 자라나는 텅 빈 동굴만큼이나
썰렁한 지하철 정거장
계단을 스물아홉 번 밟으면
스물하홉 순간 늙는 줄 모르면서
마흔 계단을 밟으면
마흔 순간 죽어가는 줄 모르면서
어느새 또
찌든 몽고족의 얼굴로 계단을 내려와
……가 웅크린 채 않아 있는 노란 의자
새로 산 복권을 들여다보며
……가 앉아 기다리는 노란 의자
- 최승호 시선집 <대설주의보>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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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지하철 정거장의 노란 의자들 / 최승호
빗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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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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