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교육 부진아
간밤까지 비가 와 그 여운이 남은 이월 중순 목요일이다. 어제는 아침부터 궂은 날씨라 산책이나 산행을 나서지 않고 도서관에서 한나절 보냈다. 목요일은 오후에 연금공단에서 주선해준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수강하느라 오전 반나절은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다. 도서관에 머물다 스마트폰 교육장으로 이동하면 동선이 가깝고 도중에 점심을 해결하기 알맞은 식당이 있기도 해 좋았다.
아침 식후 이른 시간에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으로 가봤다. 친구와 밀양댁 안씨 할머니는 보이질 않아도 비를 맞고 움이 트는 꽃밭을 둘러봤다. 그 가운데 마늘처럼 파릇한 수선화 싹과 아직 꽃망울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복수초 꽃대를 살펴봤다. 이른 봄 피는 수선화와 복수초는 앞으로 열흘 남짓 지나면 꽃봉오리를 볼 수 있을까 짐작이 되었다.
거제에서 교직을 마무리 짓고 왔는데, 거기 부임하기 직전 교육단지 여학교에서 삼 년 근무한 적 있다. 벌써 십 년 전 일로 그 학교 부임하던 이월 중 어느 날이다. 봄이 오던 길목 신학기 인사이동으로 옮겨간 학교 뒤뜰 수선화가 싹이 트면서 샛노란 꽃망울을 달고 나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복수초는 여항산 미산령 고산지에서 캐와 틈을 내 그곳으로 야생화 탐방을 가봐야겠다.
꽃밭을 둘러보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보도를 따라 걸어 원이대로를 건넜다. 창원레포츠파크 동문에서 폴리텍대학 구내로 드니 옅은 안개와 낮은 구름으로 비가 올 듯한 날씨였다. 전문계 공업고등학교를 지나 창원도서관으로 드니 출근하는 사서와 같이 입장했다. 신간 코너 앞으로 가 제목이 떠오르는 책을 살피니 보이질 않아 검색대에서 찾으니 비치된 책이 아니었다.
내가 읽고자 벼른 벤자민 하디의 ‘퓨쳐 셀프’는 후일 열람하기로 미루고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외 2권을 골랐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는 40년 전에 펴내 과학계의 고전이 된 ‘이기적 유전자’로 명성이 자자한 문필가다. 이 책은 도킨스가 읽고 추천하는 책들에 대한 책이었다. 그가 썼던 서평들을 편집한 글들과 유수의 석학인 저자들과 인터뷰한 내용도 곁들였다.
‘철학이 묻고 과학이 답하다’는 부제가 붙은 ‘시간 여행’은 한국외대에서 논리학을 강의하는 철학자 김필영이 쓴 책이었다. 저자의 논문을 지도했다는 임일환은 ‘새로운 배를 떠나보내며’라는 추천의 글을 붙였다. 이어 고전 해석의 권위자인 심경호의 ‘옛 그림과 시문’도 아침나절 짧은 시간 일별했다. 오주석은 옛 그림을 탁월하게 비평했는데 저자는 그림에 한시까지 더해 소개했다.
점심때가 되어 도서관을 나와 스마트폰 교육장인 팔룡터널 곁 공단지역 업무용 빌딩으로 갔다. 1층 뷔페에서 근처 공사장 건설 노동자들과 섞여 식판을 들었다. 벗어둔 안전모와 땀내가 절고 페인트 얼룩이 묻은 작업복 차림에서 노동의 신성함이 느껴졌다. 내 맞은편에는 연인이거나 신혼부부인 듯한 이가 나란히 앉았다. 둘의 억양은 우리 고장이 아닌 저쪽 어디쯤으로 헤아려졌다.
점심 식후 스마트폰 교육이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더랬다. 팔룡터널 입구로 다가가 진해선과 인접한 산기슭 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은 팔룡산으로 가는 등산로 들머리였는데 곧장 내려와 굴다리를 빠져나오니 커피 공장으로 알려진 동서식품이었다. 창원대로와 나란한 천변에서 스마트 교육장을 찾아갔다. 식후 산책을 다녀와도 시간 여유가 남아 배낭에 넣어간 책을 꺼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민속원’에서 펴낸 ‘한국의 축제’였다. 고려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서연호가 쓴 책으로 ‘오래된 축제와 만들어진 축제’라는 부제가 붙었다. 우리나라 축제 기원과 고대로부터 최근까지 펼쳐진 축제를 저자가 발품 팔아 보고 들은 현장 기록이었다. 교육 시간이 되어 설을 쇠고 나타난 신중년 동료들을 만나 두 시간 스마트폰 활용을 배우긴 해도 부진아였다. 24.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