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은 어떤 것인가?
의식주는 인간의 3대 필수품이다.
그증 마지막에 주(;거처,집)이 들어간다.
가 왜 앞자리에 들어갔느냐는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주(집) 요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수혈(동굴) 생활에서 시작된 인류에게 집은 언제나 구하기 쉬운 것이었다.
그러나, 10억 갖고는 서울의 변변한 집 한 채도 사기 어려운 시대에 집이 갖는 의미는 또 달라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연예인이 티비에 나와서 수 십억 또는 백억이 넘는 집에 살면서 갖가지 편의시설과 조망을 자량하던데, 이건 아니다.
궁민간의 위화감과 알뜰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기력과 박탈감,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허황된 꿈과 연예인에 대한 무한 동경만 남길 뿐이다.
방송에서도 이를 의식해서 이런 방송을 자제하기로 했다는데, 이는 참으로 잘하는 일이다.
그런 호화롭고 큰 집이 정말 좋은 집일까?
그건 아니다. 대부분의 공간은 비어있고, 두세식구가 사는 그런 큰 집은 관리비만 많이 들고 청소만 힘들 뿐이다. 조망이 좋다고 밤낮 한강만 바라보고 살 것도 아니다. 한강은 조망이라고 할 건 없고 사계를 다 감상할 수 있는 우리집 보다 못하고 집값만 올려놓은 뿐이다.
나이가 들면 그런 집들은 그저 일시의 허세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옷이 몸에 맞아야 하듯, 집도 규모에 맞아야한다. 서울 아파트 값이 워낙 비싸니 젊은 사람이 빚투를 하는 건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나, 나이가 들어서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건 옳지 못한 투자다. 상업용 투자는 예외지만.
자고로, 집과 차와 여자에게 돈을 투자하는 넘 치고 잘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우선 내 새끼부터.
각설하고, 그럼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여기에 한 답이 있다.
陋室銘(누실명) / 劉禹錫(유우석 772-842 )
山不在高 有仙則名(산부재고 유선즉명)
산은 높음에 있지 않나니 신선이 있으면 이름나고
水不在深 有龍則靈(수부재심 유룡즉령)
물은 깊음에 있지 않나니 용이 있으면 염험하니
斯是陋室 惟吾德馨(사시누실 유오덕형)
여기는 초라한 집이지만 오로지 나의 덕의 향기 뿐이로다!
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태흔상계록 초색입렴청)
이끼의 흔적이 섬돌을 올라 푸르고, 풀빛이 발에 비쳐들어 파랗구나!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담소유홍유 왕래무백정)
웃고 얘기하는 이로 큰 선비들은 있어도, 오고 가는 이로 무식한 넘들은 없어
可以調素琴 閱金經(가이조소금 열금경)
소박한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불경을 펼쳐볼 수가 있으며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무사독지란이 무안독지노형)
현악 관악의 풍악이 귀를 어지럽힘이 없고, 책상 위의 공문서가 몸을 수고롭게 함이 없어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남양제갈려 서촉자운정)
남양 땅 제갈량의 오두막이고, 서촉 땅 양자운의 정자로구나
(이 두집은 보잘 것 없어도)
孔子云 何陋之有(공자운 하루지유)
공자께서 말씀하셨네. "(군자가 거처하니)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그렇다.
한번만 더 읽어보면 충분히 그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집의 품격은 그 크기와 값에 있지 않다는 것을.
연전에 덕은 형님의 집을 찾았다.
단양에서도 한참을 가는 조용하고 아담한 팬션이었지만, 펜션이라는 느낌보다는 깔끔한 시골집 같은 분위기였다.
솔풒이 우거져있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쉼터가 있었고, 이웃하여 맑은 시냇물도 흘렀다.
그 깔끔함은 큐티 누님에게서 나왔다. 코로나는 거의 지난 일이었는데도 마스크를 끼고 방을 닦고 있었다.
나는 마스크를 벗어 볼 것을 권하였다.
기실 내가 그 누님을 뵌건 중학교 때이므로, 50년이 넘었다. 그때 누님은 풍기고를 다녔으니, 늘 단정한 교복에 감색 가방을 들고 골목을 들어가는 모습 밖에는 보지 못했었다. 다섯 살이나 위였기에 말을 건넨 기억도 없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은 작은 얼굴에 예쁨 그대로 였다. 나이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특히 집에는 덕은 형님의 백세 노모가 함께 계셨는데, 우리 모친과 동갑이다. 어릴 적 한 동네에 살았고 나를 알아보시는 게 고마웠다.
크레파스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계신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 솔숲 속에서 평상을 펴고 그림을 그리니 건강에도 걱정이 없고,자식 부부가 모시니 외로움도 없으실 것이다.
그렇게 살면 사람이 해지는 것이니, 욕심이 없어지고 다툼이 없어진다. 물이 흐르는대로 살아가면 된다. 이게 의 생활화다.
집은 이렇게 환경이 좋고 가족이 평화로우며 이웃과 다툼이 없고 크지 않은 노력으로 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집이 좋은 집이다. 반가운 친구들이 이따끔 찾아오니 더욱 그렇다.
나는 강릉에서 유명한 떡을 준비해 갔거니와 덕은 형님은 한병에 천만금을 한다는 술을 내오시고 조촐한 안주도 차려왔다.
체면 불고하고 를 했으니 어린 대접이 어디 있을까?
이백의 장진주에는 (조조의 아들)이 평락이라는 곳에서 연회를 열 때, 한 말에 만냥이나 하는 술을 내었다 하나, 나도 그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으니 얼마나 황송한 일인가?
이렇게 사람 사는 집에는 사람이 드나들어야 하며, 그 사람은 말이 통하고 정이 흐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윗글(유우석의 누실명)에서 은, 소잡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 없고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이란 뜻이고, 그런 사람이나 주식친구 – 술마시고 밥 사줄 때만 친구인 사람 –가 드나들지 않는 집이란 말이다.
내가 백정이 아니란 걸 강조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지만 그런 뜻은 아니다.
알다시피 풍기는 평안도나 황해도 사람이 많이 내려와서 살았던 곳인데, 우리집은 평안도 출신이고, 큐티님 댁은 황해도 출신이다.
평안도 사람들은 욕을 할 때,
‘뎌 놈의 백뎡놈의 새끼래 또 디랄하누나만!’ 하였다.
다 지난 옛 이야기다.
좋은 저녁되시길
갑진년 소설 지나고
강릉에서 풍강
첫댓글 풍강님을 세월이 50년도 훨씬 지난뒤에 만났지만 성수기라 청소하느라
따뜻한 밥한 끼 해드리지 못한 기억,
우리가 출타 했을 때 다녀가신 기억,
변변한 대접도 못해드려 풍강님만 생각하면 그저 미안했던 마음만 기억이 납니다.
안동 소주도 몇번 보내 오시고, 황태도 보내 오시고, 강릉인절미도 사 오시고
늘 마음이 빚을 진 것 같아 편치를 않았습니다.
저희 집에 2천3백 5십만원 하는 술을 ( 금으로 된 술잔 50돈 포함한 가격 금값 한돈 20만원 미만일 때 )
<대장경>이란 술을 금 잔은 제외하고 맛보라고 해창 막걸리 대표님이 보내 온 적이 있어
좋은 사람들이 오면 맛보라고 눈물 만큼 씩 마시라고 한 적이 있긴 한데...
저희 집을 행복한 집으로 표현해주시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마음 편하게 살아요
오시는 분마다 일이 많아 힘들 거리고 하시지만 일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삽니다.
늘 차원높은 글로 저의 마음의 양식을 제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