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철학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빈대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위생적으로 매우 우수한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빈대는 몸이 작고, 납작하고, 갈색이어서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주로 벽지, 가구, 침대의 틈에 숨어 있다가 밤에 활동하며,
주둥이로 사람을 찌르고 피를 빨아먹는 해충이지요.
그리하여 영어로는 Bed Bug라고 합니다. 측 침대 벌레라는 뜻이지요.
빈대는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줍니다.
생긴 모습도 흉측하고 전염병을 옮기다 보니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요.
특히 먹잇감에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남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을 빈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납작하고 평평한 모습 때문에 빈대 코, 빈대떡 같은 단어가 생기기도 했지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일화입니다.
인천에서 막노동할 때 노동자 합숙소는 밤이면 들끓는
빈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몇 사람이 빈대를 피하는 방법을 연구해서 밥상 위로 올라가 잤는데
빈대는 밥상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 사람을 물었지요.
다시 머리를 짜내 밥상,
네 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씩 고여 놓고 잡니다.
그런데 편안한 잠은 하루 이틀뿐 빈대는 여전히 골칫거리였지요.
상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다가는 몽땅 물에 빠져 죽어야 하는 빈대들인데
어떻게 살아서 침대로 오나 관찰하니
상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해진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 몸을 향해 툭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주영 회장은 느꼈다고 하지요.
미물인 빈대도 목적을 위해서는 저토록 머리를 쓰고 죽을힘을 다하는데
영장인 인간도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면서 꼭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서나
부단히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저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성어를 좋아합니다.
※ 불치하문(不恥下問) :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몸의 무게는 잴 수 있어도 지성(知性)의 무게는 잴 수 없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체중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성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인간만 가진 특질인 지성을 기반으로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한다면
뜻을 못 이룰 것이 없을 겁니다.
빈대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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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