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 Knight* <9>
제 9장. A Masquerade. (가면 무도회.)
다음에 너를 만날 때. 우리가 적이 되어있다면. 리시오. 나는 너를 벨 수 있을까.
...이상한 꿈을 꿨다. 나와 리시오가 마주 보고 있는 꿈. 검과 검을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꿈. 나는 웃고 리시오는 울고 있었다. 하늘은 리시오가 준 검에
박힌 보석처럼 무서운 핏빛이었고 누군가의 검이 둘 중 하나의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 ...기분 잡쳤다.... "
" 웅? 왜 그래, 주인님? "
" ...개떡같은 꿈을 꿨어. "
나는 찬 물을 내 얼굴에 끼얹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는
바람에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리시오의 얼굴을 봤는데...
...어째서 그런 상황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개 꿈으로 치부해 버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데 언니가 팔짝팔짝 뛰면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 영민아- 영민아- 이거 봐봐- 짜자잔- "
" ...뭐야, 그 종이 쪼가린? "
" 이그니스란 사람이 우리 앞으로 무도회 초대장을 보내줬어어- "
철딱서니 없게 신나서 날뛰는 언니를 보며 나는 뭐라고 해 줘야 할지 고민했다.
신전에서만 지내다가 사람들 많은 무도회에 가게 된 언니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 스노우 세인티스. 당신은 이 신전에서 나갈 수 없어. "
친절하게도 라이네가 먼저 나서서 내 마음을 대변해줬다. 그렇게 기뻐해 봤자
어짜피 갈 수 없는 무도회 초대장이다. 쓰레기니까 버려. 라고 말하기엔 언니의
표정이 너무 밝다.
" 그치마안- 턱... 누군가에게 꼭 가겠다고 약속도 했는데... "
...턱시도 가면이라는 그 괴상망측한 별명을 붙인 황제한테 그 무도회를 가겠다고
한 건 아니겠지. 언니... 급실망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다. 아니 그 전에
이 놈의 황제는 언니가 신전 밖으로 나가는 걸 허락하다 못 해 부추겼단 말야?!
머리가 지끈 거리려 하고 있는데 언니가 내 손을 꽈악 붙잡았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 보며 부탁했다.
" 영민아아- 나 꼬오옥 가고 싶은데에... 게다가 가면 무도회란 말야-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이그니스라는 분이 절대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해 준다고 안심하라고
했단 말야- 옷이랑 드레스도 보내줬다아? 가면이랑 가발까지 보내줬어- 그리고
턱시도 가면님이 신전에서 몰래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 약도까지 그려줬어! "
...윽... 언니... 언니한테 약한 날 잘 알면서 지금 이러는 거지? 응?
게다가 뭔가 이 치밀한 두 남매의 합작 같은 시추에이션은... 내 심정이야 언니를
외출하게 만들어 주고야 싶지만... 어째 뭔가 망설여진다. 불안하다. 왠지 뭔가
일이 터질것만 같아서 언니를 내보낼 수가 없다.
" 그리고... 너도 뭐시긴가- 리오? 리시오? 인가 하는 사람 보고 싶지 않아?
어쩌면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응? 응? "
직격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리시오... 보지 못 본지 몇달이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 이상하게 무거운 마음을. 리시오... 나는 그가 보고 싶었던 거구나.
어쩐지 그래서 리시오가 나오는 꿈까지 꿨던 건가... 그치만 가면 무도회에 가발까지
쓰고 변장을 한다면... 서로 알아 보기가 힘들 텐데... 확률도 적고 게다가 좀 위험하다.
...그치만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만나고 싶다.
" ...라이네 반대야. "
" 에에? 진짜...안돼? "
"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안돼. "
" 뭐야, 그게- "
라이네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반대를 했다. 나 역시 라이네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찝찝
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운이 정말 좋으면 볼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서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언니가 가고
싶은 만큼 나도 가고 싶어 졌다.
" ...라이네. 어떻게 안 될까? "
내가 라이네에게 넌지시 나도 가고 싶다는 뜻을 알리자 라이네가 움찔했다.
" ...라이네는... 주인님의 말에 복종해야해. 주인님이 가겠다면 말리지 못 해.
...다만. 나도 함께 갈 꺼야. "
라이네가 허락하자 언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내 목을 끌어안고 '됐다- 얏호!!!'라고
소리지르며 기뻐하는 언니의 마음이 전염되었는지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무도회 당일. 신관들에게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고 우리 세 사람은 무도회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언니가 에메랄드 빛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한바퀴 빙그르 돌았다.
" 이거 이쁘다아- 어때? 어때? "
언니가 한바퀴 돌때마다 허공에서 같이 빙글빙글 돌고있는 은빛 눈꽃 장식이 흔들렸다.
내가 저 목걸이를 준 이후로 언니는 항상 저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나 역시 언니의
목도리를 잘 간직하고 있기는 했지만... 무도회 때에는 못 가져가겠군. 언니가 금발이
풍성하게 웨이브진 가발을 쓰고 부채를 쫙 펴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 주인님, 라이네는 어때? 이뻐? "
...성수여도 여자는 여자다. 검은 색의 풍성한. 그치만 무릎까지만 오는 귀여운 어린이용
드레스를 입은 라이네가 한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성수의 인간화 모습을 본 귀족들은 흔치
않을 테니 긴 은발은 그대로 놔두었다. 언니가 라이네의 은발을 양갈래머리로 예쁘게 땋아
주니 훨씬 더 귀여워졌다.
" ...둘 다 이뻐. ...근데 내 옷은 왜 이래? "
어째서 내 옷만 온 몸에 쫘악 붙는 이브닝 드레스 틱한건지 모르겠다. 이 옷을 입으라고?
하, 내 안습인 몸매를 감안하고 이그니스는 이걸 보낸 건가. 내가 허탈하게 내 옷을 바라
보고 있는데 언니가 상큼하게 웃으며 말한다.
" 걱정마- 이그니스란 분이 뽕도 보내 줬어. "
...이그니스. 그래. 너 섬세하다. 언니가 준 말랑말랑한 재질의 주머니를 가슴팍에 넣으니
어느정도 선이 산다. 날씬한 편이기는 하니까. 나는 내 짧은 머리카락을 가릴 긴 흑발의
가발을 머리에 썼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속에 계신 요염한 아가씬 누구신지...
...라고 할 만큼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들킬 염려는 없겠다만... 이러면 리시오는
날 못알아 볼께 뻔하잖아.
" 자, 여기 주인님 부채. "
라이네가 붉은 빛 도는 재질의 부채를 내게 건네었다. 각각의 드레스에 어울리게 언니는
에메랄드 빛, 라이네는 블랙 펄 빛. 내 것은 루비 색깔 이었다. 나는 라이네가 준 부채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다시 내려놓고 대신에 리시오가 준 루비가 박힌 검을 집어 들었다.
손에서 놓치 않는다. 이걸 들고 있으면 리시오도 날 알아보겠지.
" ...난 이걸로 할래. "
그리고 우리는 모두 새하얀 가면을 썼다. 눈만 가리는 이 가면은 각각의 부채 색과 같은
빛의 보석이 눈가에 눈물 점 처럼 찍혀 있었다. 그리고 조심조심. 황제가 자주 드나드는
신전의 비밀 통로로 우리는 곧바로 황궁의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이래서 황제가 잘도 신전에 들락날락 할 수 있던 거로구만. 통로는 곧바로 황제의
집무실로 이어져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붉은 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그게 단번에 이그니스임을 알아차렸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앙~ 숙녀분들~ "
"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이그니스인가요? "
" 맞습니다, 세인티스님~ 자, 그럼 이쪽으로~ "
황공하게도. 황녀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언니는
이그니스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무덤덤하게 걷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 우뚝 서서 몸을 부들부들 떠는 라이네를 바라보았다.
" 왜그래? "
" ...주인님... ...이상해요. "
" 뭐가? "
" ......가까이에... 저 이외의 성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
뭔가 긴급한 사태가 되어버린 것 같아 나는 바짝 긴장하고 허벅지 안에 묶어놓은
검집에 있는 검을 꽈악 잡았다. 내 드레스는 옆으로 쫘악 트여져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검을 뽑아들기에도 유리했다.
" ...게다가 그 성수는 이 제국의 것이 아닙니다. "
라이네의 말에 나는 언니를 데리고 이 무도회에 온 것을 후회했다. 이그니스에게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누군가 언니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타국에서 온 첩자라도 있다면
충분히 언니를 노릴 수 있다. 나는 초대 스노우 나이트가 어째서 폭주해 버렸는 지를 알고
있다. 스노우 세인티스가 공격받을 이유도 잘 알고 있다.
...리시오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내가 바보같다. 나는 검을 잡고 경계의
날을 잔뜩 세우며 무도회장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가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예전의 이그니스의 무도회때와 똑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점이라면 다들 가면을 하나씩 쓰고 있다는 거다. 누가 누군지.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굉장히 위험하다. 누가 이런 위험한 곳에 언니를 끌고 온거야?!
" 이번 무도회는 황제폐하의 주도로 열렸습니다~ 왠일인지~ 그도 드디어 유희를 즐길 줄
알게 된 걸까나요~ 호호홋~ 게다가 가면 무도회라니 낭만적이야아~ 이 수많은 무리들 중에
황제폐하께서 섞여 계실지도 몰라용~ 호홋~ "
이그니스가 콧소리를 잔뜩 넣은 채로 흥얼거렸다. ...너였구나. 황제. 이 빌어먹을 자식.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황제폐하인지는 알 수 없다고는 했지만 말이지... 저 위에
상석에 황제의 자리에 앉아서 황금색 가면만 쓰고 있으면... 어떤 바보가 저게 황제인 줄
모르겠냐!!! 너무나 뻔히 보이는 황제의 모습에 내가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옆에서 더
어이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 황제는 어디있는 걸까... 부탁이니 재수 없게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언니... 눈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기있잖아, 저기!!! 저기 지 혼자 '난 니네와
격이 다르다-'하며 거만하게 앉아있는게 보이지 않아?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저럴 사람이
황제 밖에 더 있냐고! 그치만 언니는 정말로 모르는 모양인지 이그니스를 따라 사람들 속
으로 들어가 버렸다.
" ...주인님. "
" 왜. "
" ...라이네가 주인님 곁을 떠나 잠깐 돌아다니도록 허락해줘. "
" 너도 무도회 즐기려고? "
" 아니야. 사실.... 지금 이 무도회장에 있는 성수... 내가 아는 녀석이야.
인사하고 올게. 물론. 무슨 꿍꿍이가 있다면 단번에 죽여버리겠어. "
라이네가 가면 속에서 상큼하게 웃으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폈다. 앙증맞은 인사를
받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네의 요청을 허락했다. 나는 언니에게서 멀리 물러서서
누군가 언니를 노리고 있지는 않나 경계를 하며 내 본분을 다했다.
" 황제폐하께서 일어나셨다!!! "
" 맙소사- 저 아가씨는 누군가요? "
" 금발을 가진 영애는 드물지 않습니까? "
갑자기 귀족 전체가 웅성웅성 거리며 난리가 났다. 귀족 전체의 시선이 모두 한 곳에
내리꼳혔다. 정작 본인은 그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 맛있는 황궁의 과자들을 야금야금
집어먹고 있었다. 언니가 조그마한 초코케이크를 한입에 쏙 넣는 순간 누군가 언니의
옆에서 헛기침을 했다.
" 크흠- "
" 웅? "
황제가 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궁의 예법을 잘 모르는 언니와 나는 그게 뭐하자는
태도인지 전혀 모르기에 그저 멀뚱멀뚱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붉은 머리의 여자.
이그니스가 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언니의 귀에대고 무언가 소근댔다. 그제서야
언니가 수줍은듯이 황제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 앗- 죄송, 손에 크림 묻었는데. "
언니가 앗차 하며 케이크를 집어먹어서 약간 지저분해진 손을 빼려고 하자 황제가 손을
빼지 못하게 언니의 손을 꽈악 잡았다. 그리고 언니를 이끌고 무도회장 중간으로 나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우리 언니 춤치다. 황제가 나름 열심히 리드
해주고 있었지만 그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황제의 발을 치고 찍고 밟고
보는 내가 다 발이 아프다. 그래도 황제는 꿋꿋히 계속해서 언니와 춤을 추고 있고 언니는
계속해서 자기가 실수를 연발하자 얼굴이 새빨개져서 울기 직전이다. 뭔가 우스운 상황에
속으로 킥킥대고 있자 이그니스가 내 옆에 와서 소근댄다.
" 낭만적이지 않니~? 워낙 여자에 관심이 없어서 남색가이거나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무뚝뚝하던 황제가 순결하고 고귀한 여신의 딸과 사랑에 빠지다니~
우웅~ 금단의 사랑~ 너무 로맨틱해에~ "
이그니스가 내 옆에서 한편의 로맨스를 쓰고 있을 동안 나는 언니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안절부절 하고 있기는 하지만 즐겁기는 한 것 같다. 귀족들은 저 금발의 여인에 대한 정체를
캐내려고 지들끼리 안달이 났다. 나도 즐거워져서 입가가 살짝 올라갔는데 이그니스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 너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즐기지 그래~? "
" 별로. "
" 그거 알아? 리시오도 여기 왔다? "
" ...정말? "
" 쿡- 세인티스님은 황제폐하가 옆에 꼭 붙어서 보호할테니 마음 놓고 찾아봐~ "
이그니스의 놀림을 무시하고 나는 주저주저 하다가 언니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무도회장
전체를 돌아보았다. 리시오라면 춤을 추기 보다는 뒤에서 물러나서 무인들과 술을 마시고
있을게 분명하다. 뒷쪽을 중심으로 찾아 보았지만 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이 생겨서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일부러 리시오가 준 검이 잘 보이도록 들고 다니면서 돌아다녔지만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리시오가 아니었다.
" 오- 여기사 이십니까? 멋지군요. 제게 그대와 춤- "
" 닥치고 꺼져. "
" 실례합니다. 아름다운 레이- "
" ...... "
내게 말 걸려는 남자들을 피해다니느라 더 혼났다. 처음에는 몇마디 날카롭게 대응해주다가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내게 건네는 말들을 모조리 다 씹어가며 결국 발코니까지 나와버렸다.
어떻게 된 게 남자들에게 까지 독한 향수향이 폴폴 풍겨져 나오냔 말이다.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이군요. 레이디. "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옆을 쳐다보니 새까만 가면을 얼굴에 쓴 갈색머리가 보인다.
평범한 갈색머리. 지독한 향수냄새를 피해 발코니로 나와있는 상황. 젠장. 너냐?
" ...마이어스였나? "
" 제 이름을 기억해주다니 기쁘군요. 레이디...스노우 나이트. "
" .......어떻게?! "
" 어떻게 알았냐고요? 제게 이정도로 아름다운 색기를 내뿜는 분은 당신 밖에 없거든요. "
...이 자식 고단수인가. 여자 꼬시는 게 너무 자연스럽다. 제길. 똥밟았다. 라고 생각하며
다시 무도회장으로 돌아가려는데 녀석이 내 팔목을 붙잡는다.
" 뭐야? "
" 모처럼의 무도회인데 한곡 추시지 않겠습니까? "
" ...내가 미쳤냐? 나 바쁘- 윽... "
" 한.곡.추.시.지.않.겠.습.니.까? "
나중에 저 녀석이 잡은 내 팔목을 보면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을거라 확신한다.
꽤나 페미니스트 처럼 굴던 주제에 역시 속이 시커먼게 틀림 없다. 내가 녀석이 잡은 손을
비틀어 빼내려는데 녀석이 협박조로 말한다.
" 그대가 있다는 건 스노우 세인티스도 여기 있다는 거겠죠? "
" ...좋은 말로 할때 이거 놓지? "
" 알려져도 되나요? 무도회장에 스노우 세인티스와 스노우 나이트가 나란히 몰래 나왔다고?
당신은 몰라도 언니분은 꽤나 즐기고 계신거 같은데. 황제폐하랑. "
이 녀석... 대체 정체가 뭐야. 어떻게 이렇게 세심하게 잘 알고 있는 거지?
점점 더 의문점이 쌓여만 가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가 점점 더 크게 울린다.
이 자식. 처음 볼때부터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빴다. 내가 검을 빼어들어 마이어스에게
겨누었다.
" 너.... 정체가 뭐냐. "
" 스노우 나이트 후보였던 마이어스입니다만? "
" 스노우 나이트가 되지 못해서 내게 해코지라도 하려는 거냐? "
" 그럴리가요. 당신처럼 제 마음에 쏙 든 분은 만나질 못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첫눈에 반했습니다. "
잠시 싸늘한 정적과 함께 차가운 바람이 발코니를 휩쓸고 지나갔다. 난생 처음 듣는 고백에
당황스러워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첫눈에 반했다니? 어디의 누구한테? 설마 나한테?
...하나님 맙소사...
" ....취향 한번 독특하네... "
" 네? "
" ...아니... 뭐라고 반응해줘야 하는 거냐? 이럴때는? "
내가 마이어스에게서 슬그머니 손을 빼려하자 더욱 꽈악 잡는다. 저 팔을 잘라내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뭐라고 대답해줘야하지? 음... 그러니까...
" ...저기...난 너 싫은데. "
" 괜찮습니다. 앞으로 좋아하게 만들면 되죠. "
" ...그럴꺼 같진 않은데... "
" 혹시 따로 마음에 두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
마음에 두고 계신 분? 이라함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묻고 있는 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글쎄. 딱히 없는 것 같다. 내게 연애감정이란게 존재는
하는지도 의문이다. 강현우는... 오랫동안 거의 친구로 지내서 별로 연애와는 거리가 먼
놈이고... 리시오는... 내게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 은인이다. 차이가 있다면 강현우와는
달리 리시오는 보고싶다는 점일까. 근데 그게 무슨 감정이지? 제길. 난 이런거에 둔하다.
" ...모르겠지만 네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 "
" 아아. 그럼 전 실연당한 겁니까? "
" 그런거 같다. "
" 안타깝네요. "
마이어스가 피식 웃으며 뒷통수를 긁적인다. 이만 가보겠다며 계속해서 팔을 빼내려는데
이 자식이 도무지 놓지를 않는다. 내가 녀석을 노려보며 '놔'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여는데
갑자기 뭔가 입을 턱 하고 가로막는다. 새까만 가면이 눈 앞에 커다랗게 확대대고 입에
내 것이 아닌 살이 맞닿는다. 이 황당한 상황에 깜짝놀라 마이어스를 밀치려고 하는데
마이어스가 나를 끌어당기더니 자신의 품에 안고 더욱 더 격렬하게 입을 맞춰온다.
씨발. 난 첫키스라고 이거!!!
뭐 새삼스레 첫키스에 대한 로망을 키우고 있던 나는 아니었지만 그 상대가 마이어스라는
사실에 열받아서 마이어스의 어깨를 할퀴고 발로 마이어스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차고
발등을 찍어댔다. 하지만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나는 내가 여자라서 완력이 딸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 씹- 너 죽...읍.... "
마이어스의 입이 떨어져 나가자 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여는 순간 다시 마이어스의 입이
내 입을 막더니 이번엔 무언가를 내 입속으로 계속해서 집어넣었다. 이상한 알약같은 것이
내 입속에서 돌아다니며 마이어스는 그 알약을 내가 삼키게 하기 위해. 나는 절대 삼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싸워야했다. 결국 약이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나는 힘이 쭈욱
빠지는 것을 느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 유감입니다. 기왕이면 동의를 얻고 당신을 데려가고 싶었어요. "
" ...미친 놈... 너 내게 뭘 먹인거야... "
" 걱정마십시요. 독은 아니니까. 간단한 마취제입니다. "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 몸이 내 명령을 무시하고 있다. 마이어스 이외에 새까만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그 남자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은 여자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 ...라이네...!!! "
라이네의 목을 새까만 흑요석 같은 것이 감싸고 있었다. 라이네가 괴로운 듯이 몸을 움찔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죄송... '이라고 중얼거리던 라이네는 곧 정신을 잃었고
나는 라이네를 안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 보다 깜짝 놀랐다.
" 너...!!! "
새하얀 가면. 그리고 눈에 눈물같은 점무늬. 스노우 나이트 후보들을 공격하고 다니던
그 자객이었다. 마이어스가 남자와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 덕분에 일이 쉬워졌습니다. 염려 마십쇼. 당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언니까지 저희
나라에 초대하겠습니다. "
마이어스가 내 축 쳐진 몸을 끌어안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리시오가 준 검을 손에
꽈악 쥐고 놓지 않았다. 누군가. 발코니로 나와서 우리를 봐줘. 이 자들을 말려.
우리를 구해줘. 도와줘. 리시오. 속으로 계속해서 외쳤지만 그 누구도 발코니로 나와
주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리시오가 아닌 마이어스의 목소리만 울렸다.
" 저의 조국. 이델리아로. "
=========================================================================================
으아아;; 여기까지 왔네요;; 요새 정신이 없어서 컴터를 못 잡는 ㅠㅠ
오랜만에 올리는 기분이에요;; 언제 올렸더라? 저번편을...;;
기억해주시고 봐주시는 분들께 넘 감사해요ㅠㅠ
카페 게시글
로맨스판타지소설
[퓨전판타지]
*Snow Knight*<9>A Masquerade
RU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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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02 18:53
댓글 8
다음검색
첫댓글 으오오오+_+ 너무너무너무 기대됩니다아! 어떻게될지.. 다음편을+_+!!
오오오오! ㅇ.ㅇ [응?]
너무 재밌어요~~~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흥...흥...흥미진진...
크흑 기다렸다구요! - 아아 결국 끌려가는구나 영민이 .. -
캬아아앙악!!!!!!!!!!!!!! 다음편 다음편 다음편!
납치입니까! 로망! (?) < 퍼억!
재밌어요!! 남자가 이제 꼬여드는 거군요!! 흐흐흐흐................. 아닐수도 있지만... 하하하하하하하;; 다음편 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