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시고 내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받은 권위와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두 벌 옷도 챙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긴급성과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채워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1-6). 한편,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분봉 왕 헤롯은 자기가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심히 당황해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한이 되살아 났거나, 엘리야나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7-9). 그 사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한 후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이 모인 것을 보고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몰려 온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사도들은 사람들을 마을에 보내어 각자 먹을 것을 사먹게 하도록 예수님께 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당황한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 밖에 없는데 그것으로 남자만 약 오천 명을 먹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오십 명씩 앉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다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10-17).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하신 예수님을 강조하면서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모인 사람들의 먹을 것도 제공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왕, 참된 선지자, 참된 제사장임을 고백합니다(구약에서 이 세 직분을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메시야)라고 불렀음). 이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옛 이스라엘을 대표함)에게 버린 바 되고 죽임을 당하지만 삼일 후에 살아 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8-22).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다름 아닌 자신을 죽이는 삶,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의 목숨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지라도 지켜내는 것입니다(23-27). 이 말씀을 하시고 팔일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기도 하시러 산에 가십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날 정도였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별세(exodus,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서 이 세상에서 나가셔서 본래 계시던 곳으로 가는 것)하시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을 보고 베드로는 주님과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텐트를 치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는 예수님께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는데, 베드로는 그들을 그곳에 머무르게 하자고 정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새로운 모세로서 산에서 하나님께 인준을 받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분의 택하신 자임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28-36).
다음 날에 산에서 예수님과 세 제자가 내려왔을 때 큰 무리가 맞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소리쳐 자기 아들을 돌봐 달라고 합니다. 그 아들은 귀신이 들렸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능히 귀신을 쫒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 왔을 때 사람들이 불신앙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화를 낸 것 같이 제자들과 사람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시고 그 아들을 고쳐 주십니다. 이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놀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께서 죽으실 것을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감히 물어보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누가 더 큰지 논쟁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작은 아이와 같이 철저히 자기를 낮추고 작게 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을 위하는 자라고 그들의 일을 금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가 다 되어 감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인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불을 명하여 그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는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고 다른 마을로 돌아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37-57). 그 때 어떤 사람이 와서 어디로 가든지 자기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세상이 주는 안락함이나 평안을 포기해야 함을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는 말씀으로 이야기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기는 하겠지만 ‘먼저’ 장사를 지내고, ‘먼저’ 가족과 작별하도록 해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부모를 섬기지 말고 자기만 섬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적인 섬김의 대상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먼저’ 섬기고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순위가 가족이 아니라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앞만 보고 일직선으로 쟁기질을 해야하는데 갈면서 뒤를 돌아 보아 제대로 쟁기질을 할 수 없는 것을 빗대어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전반적으로 제자로서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먼저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신자가 된다는 것,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것이 가장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까? 우리의 우선순위를 방해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묵상해 보는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