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꽃
이인평
사십여 년 전, 아버지의 상여가 떠오르는 건
그때는 몰랐던 꽃빛깔 때문이지
아직 관을 상여에 얹기 전
햇살 머금은 상여꽃의 양감에 슬픔이 배어들어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의 미소 같았던
노란 꽃, 파란 꽃, 하얀 꽃, 붉은 꽃들이
내 울음에 지쳐 빛이 바랜 듯
아버지 일생의 마지막 영화 같았지
지금 생각해도 슬픔이 물든 꽃빛은
한평생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의 설움 같아서
마지막으로 기억할 아버지의 유언 같아서
아직도 꽃빛깔이 어른거리지
내가 죽기 전까진
아버지의 죽음은 늘 오늘이어서
나 죽는 날, 아버지도 마저 떠날 것이지만
상여꽃 만큼도 화려하지 못한 시절 엔
슬픔 머금은 꽃빛을 보며
추념할 사이도 없겠지요
령 소리를 들으며
장지로 떠나는 고별의 여운도 없이
하관 후에 활활 태우는
꽃상여의 마지막 불꽃을 보며
애통함이 함께 타오를 겨를도 없겠지
그땐, 마당 가에 꽃상여가 놓이는 순간
슬픔도 색색으로 피어 있는 꽃들이
나를 달래주는 아버지의 숨결 같아서
지금도 내 눈물 속엔 상여꽃이 피어나곤 하지
아버지와 함께 슬쩍 웃어도 좋은 꽃빛들이
아른아른 맺혀 오지
웹진 『시인광장』 2023년 8월호 발표
이인평 시인
1993년《조선문학》에 시 「여행자」 외 4편신인상, 2000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시 「소금의 말」 당선. 시집 『길에 쌓이는 시간들』, 『가난한 사랑』, 『명인별곡』, 『후안 디에고의 노래』 1, 2집과 『소금의 말』과 번역시집 『Yo Soy Juan Diego Coreano』 출간. 조선문학작품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장관표창 수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숲문화위원,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시사랑문화인협의회 감사, 한국인물전기학회 이사. 공간시낭독회 회장 역임. 녹색문학상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역임, 현재 한국가톨릭문인협회 부이사장, 황금마루 출판사 대표.
[출처] 상여꽃 - 이인평 ■ 웹진 시인광장 2 023년 8월호 신작시 □ 2023년 8월호 ㅣ 2023, August ㅡ 통호 172호 ㅣ Vol 172|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