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블(Pebble)은 미국에서 큰 관심을 받는 스마트워치 브랜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기어와는 경쟁 관계다. 그러나 페블은 갤럭시기어와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쳐 개발됐다. 자금조달 방식부터 극명하게 달랐다. 페블은 거의 7만명의 투자자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투자금을 모았다. 반면 갤럭시기어는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의 자체 투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페블의 자금 조달을 도운 곳은 킥스타터(Kickstarter)라는 웹사이트. 킥스타터에는 누구든지 사업 계획을 올릴 수 있다. 계획이 마음에 들면 누구든 1달러 이상 투자할 수 있다. 페블은 킥스타터를 통해 6만8929명으로부터 1027만달러를 유치했다. 그러나 에릭 미지코프스키 페블 최고경영자(CEO)는 겁이 났다. 투자자 수가 예상의 100배를 넘었기 때문. 8만5000개가 넘는 스마트워치를 생산해 투자자들에게 배송해야 했다. 페블은 이렇게 많은 스마트워치를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미지코프스키 CEO는 스콧 밀러 드래곤 이노베이션 CEO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드래곤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화할 수 있는 최적의 생산자를 찾아주는 기업이다. 페블은 드래곤 이노베이션의 도움을 받아 1년 만에 10만개의 스마트워치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갤럭시기어는 삼성전자 자체 공장에서 생산했지만, 페블은 최적의 파트너를 찾아 생산을 맡긴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 연구소 중 하나인 PARC의 스티븐 후버 CEO는 "(페블과 같은 사례야말로) 창조경제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누구든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투자자를 모으고 제품을 생산해 배송까지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후버 CEO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로봇과 3D프린팅 등의 발달로 비전문가들도 전문가와 같은 수준의 제조 능력을 갖추게 됐다"며 "그 결과, 개인들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조적인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제조 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후버 CEO와의 일문일답.
-당신이 생각하는 창조경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제조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making things)`다. 지금까지는 전문적인 생산ㆍ제조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만이 제조를 맡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제조업에 뛰어들 것이다. 직업과 배경, 교육 수준 등이 다른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스스로 구상한 제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비전문가들이 전문가 수준의 제조 역량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미지코프스키 페블 CEO는 스마트워치에 대한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이를 제조할 능력은 없었다. 제조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였다. 하지만 그는 드래곤 이노베이션의 도움을 받아 스마트워치를 생산했다).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처럼 복잡한 제품을 제조할 능력을 갖출 수 있는가.
▶첫째, 로봇 기술의 발전이다. 내가 박사 과정을 끝마칠 무렵에 로봇으로 분화구를 탐사한 적이 있었다. 로봇에 센서를 달아 주변을 탐사하는 게 매우 어려웠다. 100명의 팀원이 참여했으며 컴퓨터로 가득한 몇 개의 방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200달러 컴퓨터에 50달러 카메라면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리싱크 로보틱스(ReThink Roboitcs)가 개발한 조립용 로봇인 백스터(Baxter)는 더욱 놀랍다. 매우 저렴한 가격에 지능을 갖춘 로봇이다. 환경 변화에 스스로 적응까지 한다. 게다가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 프로그래밍할 필요도 없다(직원이 수작업으로 백스터에 업무를 지시하고 훈련시킬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 덕분에 로봇은 인간 수준의 시력과 이동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저렴하고 지능적인 로봇은 비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생산능력을 갖추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둘째,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이다. 사람들이 이 기술을 이용하면 가치 있고 흥미로운 제품을 직접 제조할 수 있다(3D 프린터에 설계도를 입력하면 설계도대로 제품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도 3D 프린터로 복잡한 제품을 제조할 수 있다).
하지만 로봇과 3D 프린팅 등은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빙산의 다른 부분에는 어떤 게 있나.
▶포노코(Ponoko), 쿼키(Quirky), 드래곤 이노베이션, 킥스타터 등의 회사들이 있다. 이들 회사 덕분에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창조자의 힘을 갖게 됐다. 이는 정말로 급진적인 변화다(예를 들어 보석 디자이너 A씨가 있다고 하자. A씨는 새로운 보석 디자인을 개발했지만, 제품으로 만들 역량이 없다. 보석을 가공할 도구도 없으며, 보석 재료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A씨는 포노코를 통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자신의 디자인을 포노코에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포노코는 A씨의 디자인대로 보석을 만들 수 있는 생산시설을 찾아낸다. 이를 위해 포노코는 북미와 유럽 곳곳에 산재한 생산시설의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쿼키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 실제 제품을 개발하는 `소셜 상품`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다. 아이디어 제공자는 제품화로 매출이 일어나면 수익을 배분받는다).
-결국 아이디어만 좋으면 누구나 포노코 등의 도움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고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제조의 민주화가 더욱 촉진될 것 같다.
▶그렇다. 예를 들어 킥스타터 덕분에 자금 조달이 민주화됐다(페블처럼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일반 대중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노코, 쿼키 등의 기업 덕분에 디자인ㆍ생산ㆍ조립ㆍ배송 등 가치사슬의 모든 과정이 민주화되고 있다.
그 결과, 앞으로 창조적 기회의 많은 부분은 개인ㆍ소기업 등으로부터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제조 역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조 분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일 ,직업, 조직 구조, 제도 등을 비롯해 경제 전반의 성격을 바꿔놓을 것이다.
-제조의 민주화가 경제에 기회가 될 것 같은데.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제의 축이 제조업 쪽으로 이동할 것이며 미국 도시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역시 제조 혁명을 위한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일자리를 창조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창조경제의 뜻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제조가 본질적으로 민주화되고 있고, 개인과 소기업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가 충분히 고려하기를 희망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디어는 있지만, 제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적어도 한 명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는 주로 대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기업이 더 많은 개인ㆍ소기업이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대기업도 더 많은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중심인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들이 계속 탄생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도 스타트업에서 출발했다. 한국에 충고할 게 있다면.
▶많은 미국 기업들은 끊임없이 스타트업들과 함께 일한다. 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판매 채널이 되기도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미국에서는 직장을 쉽게 옮길 수 있다는 점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 관계가 구축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기업에서 2년을 일한 뒤에 스타트업으로 옮겨서 몇 년을 일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다시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다. 덕분에 스타트업에서 개발된 아이디어가 대기업으로 흘러갈 수 있다(그 결과, 자연스럽게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 네트워크가 형성돼 양측이 쉽게 협력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 기업의 임원들은 완전히 다른 커리어를 밟아온 것으로 안다. 한 기업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22세에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평생을 소기업에서 일해야 한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혁신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융합하는 데서 나온다. 만약 한 기업 내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다면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동질성은 혁신의 적이다. PARC에서는 이질적인 세 부류의 사람들, 다시 말해 첨단기술 전문가, 비즈니스 전문가, 사회과학자 등을 섞어서 팀을 만든다.
■ He is…
스티븐 후버(Stephen Hoover)는 제록스의 연구소 기업인 PARC의 CEO다. PARC는 1970년 설립됐으며 2002년 제록스에서 분사됐다. 제록스는 동부 코네티컷에 본사가 있지만 PARC는 서부 캘리포니아에 설립했다.
일상의 경영 활동에서 멀리 떨어져야 진짜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후버 CEO는 카네기멜론대에서 기계공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과 시장, 고객, 비즈니스 기회를 통합하는 데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