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
하늘이 내려준 옥 허리띠
(고려 태조 십구년 정유년(937) 오월에 정승 김부1)가 금으로 새기고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 하나를 바쳤는데, 길이가 십 아름이고, 아로새긴 각띠가 예순두 개였다. 이것을 진평왕2)의 천사옥대3)라고 한다. 고려 태조4)는 이것을 받아 내고5)에 보관했다.)
제이십육대 백정왕(白淨王)은 시호가 진평대왕이고, 성은 김 씨다. 진흥왕 삼십칠년 기해년(579) 팔월에 즉위했는데, 키가 열한 자였다.
하루는 내제석궁[內帝釋宮: 천주사(天柱寺)라고도 하고, 왕이 창건했다.]에 행차했는데, 섬돌을 밟자마자 돌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곁에 있던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 돌들을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어 후세 사람들이 보도록 하여라.”
이 돌이 바로 성 안에 있는 다섯 개의 부동석(不動石) 중 하나다.
왕이 즉위한 원년에 천사가 궁전 뜰에 내려와 왕에게 말했다. “상제께서 내게 명하여 이 옥 허리띠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친히 무릎을 꿇고 옥 허리띠를 받자, 천사는 하늘로 올라갔다.
교사6)나 종묘의 큰 제사에는 언제나 이 허리띠를 맸다.
훗날 고구려 왕이 신라 정벌을 꾀하다가 말했다.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게 무엇인가?”
“황룡사7)의 장륙삼존불상8)이 하나요, 그 절의 구층목탑9)이 둘이요, 진평왕의 천사옥대가 셋입니다.”
그러자 고구려 왕이 정벌 계획을 중지했다.
천사옥대를 찬미하며 읊는다.
“구름 밖 하늘이 주신 옥 허리띠는
천자의 곤룡포와 서로 잘 어울리네.
우리 임금님 이제부터 몸 더욱 무거우시니,
내일 아침 쇠로 섬돌 만들게 윤허하소서.”10)
주1) 김부(金傅):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 897~978, 재위 927~936)이다.
주2) 진평왕(眞平王: 567?~632, 재위 579~632): 신라의 제26대 왕으로, 이름은 김백정(金伯淨/白淨/白丁)이다. 홍제(鴻濟: 579~584)와 건복(建福: 584~632)이라는 두 개의 연호를 사용했다.
주3) 천사옥대(天賜玉帶): 신라의 삼보(三寶: 신라 왕실의 권위와 신성성을 나타내는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금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이다. 진평왕 1년(579)에 하늘에서 주었다고 한다. 성제대(聖帝帶) 또는 줄여서 성대(聖帶)라고도 한다.
주4) 고려 태조: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 877~943, 재위 918~943)이다.
주5) 내고(內庫):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북방의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 수납한 금·은 등의 보물과 포백·종이·숯·소금 등의 공물을 보관/관리했다.
주6) 교사(郊社): 천자가 성 밖 주변지역[郊]에서 상제/천지에게 제사하는 교제(郊祭)와 사직단(社稷壇)에서 사직신(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제 또는 그 제단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진평왕이 교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신라가 제후국이 아니라 천자국임을 말한다.
주7): 황룡사(皇龍寺): 경북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 신라 진흥왕 4년(553)에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 황룡(黃龍)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하여, 17년 만인 569년(진흥왕 30년)에 완성했다.
신라에서 가장 큰 절이었는데, 1238년 몽골의 3차 침략 때 불타 버린 후 오늘날까지 터만 남아 있다.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定陵寺)와 함께 삼국을 대표하는 호국사찰이었다.
주8) 장륙삼존불상[丈六尊像]: 진흥왕 34년(573) 10월 17일에 조성하기 시작해서 그 이듬해인 574년 3월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는 인도의 아쇼카왕[阿育王]이 보낸 황금과 동으로 모형 석가삼존상을 본보기로 삼아 문잉림(文仍林)에서 불상을 단번에 주조하였다고 한다.
중앙에 석가불, 좌우에는 문수(文殊)와 보현(普賢) 보살로 생각된다.
불상의 무게는 3만 5007근인데 황금이 1만 198분(分)이 들었고, 두 보살상은 철 1만 2000근과 황금 1만 136분이 들었다고 할 만큼 거구의 금동삼존불상으로 생각된다. 불상의 높이는 1장6척이므로 4.5∼5m 사이의 우람한 모습이 될 것이다.
고려 때 몽고의 침략으로 사라졌는데, 현재는 불상을 받치던 금당 터의 대좌 받침석과, 1982년 발견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 중인 불상의 머리 부분 파편이 있다.
주9) 구층목탑: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법사의 건의로 643~645년에 백제의 기술을 빌려 지은 높이 약 80m의 거대한 목탑으로, 9개 층에 일본, 당, 백제, 고구려 등 주변 9개국을 제압하여 삼국통일을 이루려는 신라의 염원을 담았다.
호국불교의 상징으로 숭배받았으나,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주10) 이 찬미시를 읽으며, 천사옥대는 마치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s stop here).”는 명패처럼, 왕위는 하늘이 백성을 대신 맡기며 덕이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이라는 맹자의 말(맹자 공손추(상) 5:8)이 떠올랐다. 60이 넘은 나이에 <삼국유사>를 공부하면서 ‘천사옥대’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이미 여론의 심판이 내려진 상태이고, 과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역사와 국민 앞에서 정치의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이 몇이나 되었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국민주권 정부로 자처한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모든 국민이 행복한, 제대로 된 정치를 해주길 기대해 본다.
天賜玉帶
(淸泰四年丁酉五月, 正承(丞)金傅獻鐫金粧玉排方腰帶一條, 長十圍, 鐫銙六十二, 日(曰)是眞平王天賜帶也。 太祖受之, 藏之內庫。)
第二十六, 白淨王, 諡眞平大王, 金氏。 大建十一年己亥八月卽位, 身長十一尺。 駕幸內帝釋宮(亦名天柱寺, 王之所創。), 踏石梯, 三石並折。 王謂左右曰: “不動此石, 以示後來。” 卽城中五不動石之一也.
卽位元年, 有天使降於殿庭, 謂王曰: “上皇命我傳賜玉帶。”
王親奉跪受, 然後其使上天。 凡郊廟大祀皆服之。
後, 高麗王將謀伐羅, 乃曰: “新羅有三寶不可犯, 何謂也?”
“皇龍寺丈六尊像一, 其寺九層塔二, 眞平王天賜玉帶三也。”
乃止其謀。
讚曰: “雲外天頒玉帶圍,
辟雍龍袞雅相宜。
吾君自此身彌重,
准擬明朝鐵作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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