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 교정을 둘러
이월 중순 셋째 일요일이다. 봄방학에 들었을 각급 학교는 인사이동 후 신학기 설계로 설레는 때지 싶다. 교단 현장을 떠나온 지 2년이 지나 내일모레면 3년째 접어든다. 현직 시절 아쉬움이나 미련은 조금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다가오는 하루하루에 충실히 살려고 한다. 올봄에는 여가 활용에서 다소 얽매임이 예상된다만 상황 변동은 그때 가서 적절하게 대처할 요량이다.
일요일 저녁부터 주중 목요일까지 봄을 재촉할 강수가 예보되었다. 비가 오면 도서관에서 보내면 되기에 우천이라도 갑갑히 여길 겨를이 없다. 일요일은 아침 식후 미리 정해둔 동선 따라 움직였다. 내가 교직 말년을 보내고 온 거제로 떠나기 전 근무지 교육단지 여학교를 방문하고 싶었다. 교직원 출근이나 학생의 등교 없을 일요일을 틈타 본관 뒤뜰 꽃밭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집에서부터 걸어 반송시장을 거쳐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으로 가니 마라톤 동호인 다수가 건각을 과시했다. 창원과학체험관과 극동방송국을 지나 교육단지 여학교 교정으로 들었다. 5년 전 근무지 연한을 채워 거제로 옮겨가기 전 3년간 근무한 학교다. 당시 만난 동료들도 그곳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근황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동료 얼굴과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은 정도다.
교정이 꽤 넓은 교문을 들어서니 낯익은 건물들과 수목들이었다. 앞뜰은 표시가 덜 났는데 뒤뜰로 가니 방학을 틈탄 교사 리모델링으로 공사 장비와 인부들로 어수선했다. 신학기 학사 일정에 차질 없도록 휴일임에도 감독관이 현장으로 나와 분주하게 지휘하는 듯했다. 여학교 뒤뜰에는 매실나무와 살구나무에서 꽃이 피면 무척 아름다웠다. 초본에서 피는 여러 꽃도 마찬가지였다.
삼월 초 여학교 뒤뜰에 피는 노란 수선화를 잊지 못해 찾아갔었다. 잎줄기는 가을에 시들고 땅속 알뿌리로 겨울을 견뎌낸 수선화는 파릇한 움이 터 꽃망울을 맺으려고 준비했다. 꽃밭에는 공사 자재를 쌓아두고 인부들이 발로 밟아 안쓰러웠지만 리모델링을 마치면 안정이 될 듯했다. 수선화 꽃잎은 흰색과 노란색이었는데 여학교에는 샛노란 꽃잎이라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공사장 틈새 움이 튼 수선화 싹을 둘러보고 하얀 꽃잎을 펼친 매화 향을 맡고 벚나무와 살구나무가 맺은 꽃망울을 살펴봤다. 일과 중 틈이 날 때 뒤뜰로 내려가 민들레나 괭이밥을 비롯한 야생화들을 완상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오륙 년 전 근무지 뒤뜰을 찾아 수선화 싹을 살펴보고 곧장 교정을 빠져나와 충혼탑 사거리 정류소에서 주남저수지를 둘러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교외로 나간 버스가 주남저수지를 비켜 봉강을 거친 본포에 닿았을 때 내렸다. 마을회관에서 강둑으로 오르니 본포교를 교각 밑을 빠져나온 강물은 수산 방향으로 유장하게 흘러갔다. 둔치 생태공원 물억새와 갈대는 겨우내 색이 바래고 야위어져 봄을 맞았다. 능수버들은 수액이 오르면서 가지가 포물선을 그렸다. 김해 한림으로 뚫린 자동찻길 옥정 교차로를 지나 들판으로 향했다.
농지로 보내는 물길과 나란한 언저리를 텃밭 삼아 가을에 무를 심어 뽑은 자리가 나왔다. 겨울 휴경지 이랑에서 싹 터 자란 냉이가 보였다. 방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장미꽃처럼 생겨 로제트 식물로 불린다. 민들레 잎도 마찬가지인데 겨울을 넘기는 식물이 추위를 견뎌내려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함이다. 배낭에 넣어간 호미를 꺼내 냉이를 캐 모아 뿌리에 붙은 흙을 털었다.
신설도로가 뚫리면서 쌓은 둑으로 가니 방가지똥 순이 다수 돋아 자라고 있었다. 방가지똥 순은 왕고들빼기와 가시상추와 함께 이른 봄 자연에서 구하는 천연 비아그라도 통하는 야생초다. 방가지똥 순은 문구용 칼로 뿌리를 잘라 채집했다. 언덕에는 냉이도 보여 더 캐 보탰더니 배낭이 묵직해 왔다. 신전에서 1번 마을버스로 복귀해 동네 제과점과 꽃대감과 나누니 짐이 가벼웠다. 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