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한 줄에 7.500원입니다. 에예공! 키토 김밥 먹어봤냐? 오이 무침이 상큼하고 아삭합니다. 우리 동네 10년 치친 집 '치얼스'가 망하고 새로 '솥 뚜껑 삼겹살'이 들어왔어요. 이 비수기에 비좁은 틈새시장을 뚫고 들어온 업주의 영업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서촌이나 북촌을 가고 싶었는데 늦잠을 자서 시간이 모자랍니다. 예주가 2차 준비와 멀영에 열공하고 있을 것인데, 만약에 내가 예주라면 이틀에 하루는 영화 보러도 다니고, 가깝지만 낯선 동네 뚜벅이 마실을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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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 2그릇, 오이 8피스를 갖다가 먹었으니 이만하면 본전은 뽑았을 것입니다.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손님이 일찍 끊겼고 성난 모기만 죽자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발전하고 있는지 궁금해! 나의 신학과 철학의 수준을 알려줘! 네이버와 다음 블로그의 팔로워는 왜 내게 댓글을 주지 않는지도 궁금해! 반성과 함께 나의 64세를 도전적으로 설계해 줄 수 있나요?(나)" "네. 지금까지의 글을 꽤 오래 함께 읽어온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부터의 발전은 ‘더 많이 아는 것’보다 ‘덜 섞고 더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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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큰 약점은 연결 능력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니체, 헤겔, 들뢰즈, 바디우, 라캉, 프로이트, 베르크 손, 하이데거를 성경과 연결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연결이 너무 빨리 이루어지면 철학자가 성경을 설명하는 ‘예화’가 되고, 성경은 이미 알고 있는 결론을 확인하는 텍스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64세 공부에서는 오히려 충돌을 남겨두십시오. “니체와 복음은 어디까지 화해할 수 없는가?” “바디우의 사건과 바울의 부활은 정말 같은 구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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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지양으로 십자가를 설명하면 무엇을 잃는가?”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사사기에서 아주 좋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등장인물을 ‘믿음 좋은 사람/나쁜 사람’으로 빨리 분류하지 않고 텍스트 안의 욕망, 폭력, 자기 기만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보기에는 최근 1년 사이 가장 중요한 발전입니다.
2. 그런데 왜 팔로워들은 댓글을 안 달까?
여기서는 너무 서운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온라인 공동체에는 오래전부터 ‘참여 불평등’이 관찰됩니다. 유명한 90-9-1 경험칙은 대다수가 읽기만 하고, 일부만 가끔 참여하며, 극소수만 적극적으로 글이나 댓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후속 연구들도 ‘읽지만 말하지 않는 사람’이 온라인 공동체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설명합니다. Nielsen Norman Group 더 중요한 것은 침묵=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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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이미 얻었기 때문에 굳이 쓰지 않거나, 집단 분위기를 더 살핀 뒤 참여하려 하거나, 공개적으로 말하기 부담스러워 댓글을 남기지 않는 경우 등이 발견됐습니다. ScienceDirect 하지만 선생님 글 자체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글이 댓글 달기 쉬운 글이 아닙니다. 철학, 성경, 개인사, 사회비평이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독자는 재미있게 읽었어도 “제가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하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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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글 마지막의 질문도 상당히 큽니다. “신앙과 욕망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좋은 질문이지만 댓글 질문으로는 어렵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낮춰 보십시오. “나는 미가와 단 지파 중 누구와 더 닮았을까요?” “여러분도 ‘내가 원하는 답’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한 경험이 있나요?”
3. 64세에는 ‘공부하는 사람’에서 ‘자기 사상을 만드는 사람’으로
64세의 목표는 사유 체계를 만드는 겁니다. 새로운 철학자를 스무 명 더 공부하는 것보다 지금까지 쌓은 40년의 성경 공부, 20년 가까운 묵상 글쓰기와 철학 공부를 한 체계로 묶는 겁니다. 64세의 네 가지 프로젝트만 권합니다.
1. 성경: 지금처럼 매일 묵상하되 한 본문에 비평적 질문 하나만 남기기.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와 함께 “나는 무엇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2. 철학: 새로운 철학자를 늘리기보다 헤겔·니체·베르그손·하이데거·들뢰즈·라캉·바디우 정도를 다시 파십시오. 매달 한 명씩 “그가 옳은 것 / 틀린 것 / 복음과 충돌하는 것”을 A4 한 장으로 정리합니다.
3. 글쓰기: 매일 글은 계속 쓰되, 일주일에 한 편은 반드시 절반으로 줄여 보십시오. 지금 필요한 훈련은 확장보다 삭제입니다. “100을 알고 60만 쓰는 사람”으로 가는 것입니다.
4. 몸: 걷기와 러닝은 공부와 별개의 일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쓰고 걷는 것을 하나의 루틴으로 묶으십시오. 64세의 경쟁자는 젊은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자기 몸과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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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네이버와 다음은 이제 단순한 블로그가 아니라 20년짜리 사유의 아카이브로 보셨으면 합니다. 댓글 3개를 더 받는 것보다, 지난 글 가운데 살아남을 글 100편을 골라 다시 쓰는 작업이 훨씬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아픈 평가 하나, 선생님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닙니다. 익숙함입니다. 성경은 너무 오래 읽었고, 글도 너무 오래 썼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본문보다 먼저 결론을 알고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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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시 이제 웬만한 이름은 낯설지 않으니 ‘아, 이것은 들뢰즈의 생성이구나, 헤겔의 지양이구나’ 하고 너무 빨리 이름 붙일 위험이 있습니다. 64세에는 반대로 가십시오. 모르는 것을 늘리는 공부가 아니라,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낯설게 만드는 공부. 63세까지가 축적이었다면 64세부터는 선별입니다. 지식에서 사유로, 묵상에서 비평으로, 기록에서 작품으로. 저는 그 변화가 이미 사사기 글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2026.10.7.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