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님, 저는 이경남 목사를 광주사태에 대한 그의 발언에 관한 한 감히 사기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님은 그 사기꾼의 주장을 맹신하시는군요. 그런데 그의 주장은 사실의 증언일 수 없습니다. 님이 계속 이경남 목사의 허위주장을 맹신하시며 인용하시기에 그의 주장의 신빙성 여부를 우리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5.18사기꾼 이경남 목사의 거짓말에 대해 토론하기에 앞서 님의 반론 03에 대한 저의 답변을 4항으로 간략하게 드립니다.
1. 이데아님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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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이 지금까지 뭘 입증하셨습니까? 님은 장갑차는 무조건 무장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위대의 장갑차는
전투교육사령부 작전일지에 의하면 21일 오전 9시 20분 경에 아세아 자동차 공장에서 피탈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공장에서 막
가지고 나온 것이기에 무장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위대가 장갑차를 가진 것은 제가 부인한 적도 없고 이미 도청 앞에서 돌진까지 했다고 수없이 설명드리고 있습니다.>
자, 그럼 시민군이 5월 21일 오전 9시 20분에 군 장갑차를 탈취한 사실은 확인이 되었군요. 여기에 장갑차가 무기이냐 장남감이냐의 해석상의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시민군이 군 장갑차들을 장난감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탈취하였을까요? 여기에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리고 어디에 쓰려고 광주시민들이 군 장갑차를 탈취하였느냐의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데아님의 답변해 주셔야 할 질문입니다.
2. 저더러 동영상을 날조편집했다고 하는데, 저는 한번도 날조 편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방송 사이트 동영상을 올릴 때 잘라내기하여 몇분간의 클립으로 올리는 것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윈도우미디어 파일로 올렸을 때는 사이트에 따라 3메가, 5메가, 7메가 혹은 10 메가의 용량 제한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대용량 파일을 업로드할 수 있는 때에도 10분 제한이 있습니다. 따라서 동영상이 올라가지 않을 때는 계속 잘라내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날조편집인가요?
날조편집은 KBS에서 했던 거예요. 이데아님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HTML clipboard"황종건 기자의 계엄군 저격병 증언들, 김영택 기자의 계엄군 조준사격 증언들과 같은 도청 앞 집단발포 현장의 증언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바로 그것이 날조편집입니다. 어떻게 힌츠페터의 영상물에 황종간 기자의 억지 주장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까? 더구나 5월 20일에 광주에 도착한 힌츠페터가 5월 18일 장면 등을 촬영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이것은 시청자의 이목을 속이는 KBS의 날조편집이었습니다.
3.
HTML clipboard"계엄군의 총기 사용은 20일 저녁무렵부터 21일 새벽내내 빈번했고." 이것 이데아님 주장인가요?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면 발포 명령자를 찾아야겠군요! 자, 공수부대 실탄 지급 시간을 최대로 앞당기는 김영택 기자조차도 21일 오전 10시 반 이상으로 앞당기지 않습니다. 사기꾼 이경남의 부대가 20일 저녁 실탄 지급을 받았었나요? 이데아님이 주장하셨으니 이데아님이 푸셔야 할 문제입니다.
4. 이데아님이
HTML clipboard"도청 앞 집단발포 이후 오후에 시위대가 무장한 장면을 가지고"라고 하시면 반론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러나 장갑차 탈취 시간은 오전 9시 20분임을 우리가 확인하지 않았던가요? 따라서 힌츠페터는 시민군이 오전에 장갑차 등의 차량을 탈취하여 거리로 몰고 나오며 도청을 향하여 달리는 장면을 촬영한 것입니다. 힌츠페터는 21일 아침부터 다시 광주를 촬영하기 시작하였으며, 오전의 시민군 동태가 그의 영상 카메라에 포착되었던 것입니다. 시민군 장갑차 탈취 시간이 오전일진대 그의 영상물에서 보이는 시민군 장갑차가 그 시간대가 오전이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것 아닌가요?
자, 이제 이경남 목사의 허위증언에 대해 토론해 봅시다. 이데아님은 이경남 목사의 증언이라며 이렇게 인용하셨습니다. <
HTML clipboard이 날 21일 오전, 우리는 걸어서 광주도청에 도착하였다. 거기에는 우리 여단의 모든 병력이 집결해 있었는데, 밤새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시위대들이 격노하여 차량으로 무장하고 군인들과 무력으로 대치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군수 공장에서 탈취한 도시형 장갑차를 몰고 돌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 "우리는 걸어서 광주도청에 도착하였다" 이 말부터 거짓말 아닌가요? 전남도청과 광주시청을 혼동한 명칭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가요? 광주에 도착한 시간이 몇시였는가요? 그 어느 군인도 그 시간대에는 시민군 포위망을 뚫고 도청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2. "밤새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시위대들이 격노하여." 밤새 시위대가 버스로 깔아 죽인 순경 4명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3. "그러던 중 군수 공장에서 탈취한 도시형 장갑차를 몰고 돌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주장이나 설명은 될 수 있을지언정 증언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시 사건 현장의 군인들이 시민군 장갑차를 보고서 군수 공장에서 탈취한 것인 줄 알 수 있었을까요? 시민군 이수남의 글은 증언입니다. 당시 자기가 목격한 사실만을 기록하니까요. 그런데 이경남 목사는 "군수 공장에서 탈취한 도시형 장갑차"라는 군더더기를 붙입니다. 그 장갑차들이 당시 군수품 납품업체였던 아세아자동차공장에서 탈취한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 밝혀진 정보이지, 이경남 목사가 목격한 사실이 아닙니다. 이 정보는 틀린 정보는 아니지만, 이경남 목사가 이 정보를 위한 현장 증인이 아닙니다. 그의 글에는 그가 현장에서 목격하고 쓴 글이 아니라, 각종 5.18자료들에 의존하여 쓴 군더더기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습니다.
제가 이경남 목사의 글 중 한 단락만 인용했지만 이데아님의 반론이 있으시면 토론을 이어갈 가치가 충분히 있는 주제입니다. 이데아님뿐 아니라, 5.18논객들이 5.18사기꾼 이경남 목사의 글을 즐겨 인용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그의 글에 최소한의 신빙성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완성되었습니다. 번호 순서의 일관성을 위해 이 글 번호를 [끝장토론: 역사학도04] 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사학도님, 죄송하지만 [끝장토론 : 역사학도 05]로 하는 것이 독자들을 위해 좋을 것 같습니다. 1:1대응관계가 좋다고 생각했으나, 123456 이런 숫자 순이 단순하고 검색하고 이해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널리 해량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전 글이 역사학도03이라 윗글을 역사학도04로 했는데, 여하간 역사학도05로 수정합니다.
<지금 글등록을 완료하였습니다> 소중한 글을 통해 독자들이 사실관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지적 호기심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역사학도님 이경남 목사 말씀이 거짓말이다. 그 당시 같이 근무했던 동료로써 사실을 무슨이유로 왜곡하나요
그당시 그 지역에서 보고느낀것 이야기하는것인데 그분의 말씀이 존중되어야 하지 않나요 역사학도님 당신 그당시 그자리에 계섰나요:?. 함부로 남을 헐뜻는것은 아주 못된 버릇인것 같군요. 아주 슬픈일이고 나는 이 방송을 듣고 그때를 회상하며 우리전우가 죽어가고 부상당하고 무고한 시민들의 주검도 다 슬픈일인데 무슨근거로사기꾼이라 하는지 안타깝군요
슬픈일이내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발제해 주시겠습니까? 혹 저와 토론을 원하신다면 이경남 목사가 어떤 거짓말을 하였는지 제가 명명백백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경남 목사가 하도 많은 거짓말을 하여 하나하나 짚어드려야 하겠기에 한두개의 댓글로 답변해 드리기에는 분량이 너무 깁니다. 님의 새글로 발제하여 주시면 환영하며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정회원으로 등업해 드렸으니 새글 혹은 반박글을 올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 봅시다. <밤새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시위대들이> 그날 밤새 죽은 사람들은 시위대가 버스로 깔아 죽인 순경 4명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어요. 밤새 수많은 죽은은커녕 단 한 명의 죽음을 목격한 자도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경남 목사에게 밤새 단 한 명의 죽음이라도 목격하였는지 물어보세요. 전혀 그런 사실이 없었습니다. <밤새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시위대들이>는 이경남 목사가 시체 장사를 목적으로 지어낸 허구입미다. 그리고 허구를 지어내 시체장사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