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간 학생
이월 셋째 월요일은 우수였다. 입춘에 이어 든 우수는 24절기 두 번째로,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된다는 의미다. 지난겨울은 워낙 따뜻하게 넘겨 남녘에서 눈은 볼 수 없었고 겨울비가 잦았다. 2월은 넉 달씩 묶어둔 계절의 구분에서 겨울이겠으나 근년에 와서는 봄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주는 간밤부터 목요일까지 내리 닷새간 강수가 예보되었다. 겨울비가 장마처럼 내릴 모양이다.
어제는 다가올 주간에 연일 강수 소식을 접해 비가 내리기 전 강변으로 나가 냉이를 캐왔다. 들녘에는 감자 심을 준비를 해 놓았더랬다. “기름진 충적토가 홍수에 잠겼으나 / 사대강 정비 이후 침수는 걱정 들어 / 벼농사 뒷그루 작물 휴경지로 두었다 // 언 땅이 녹자마자 트랙터 굴러다녀 / 길다란 이랑 지어 비닐을 덮어씌워 / 이른 봄 씨감자 심어 하지 무렵 캐더라” ‘빈이랑’ 전문.
새벽에 잠을 깨 약차를 끓이면서 전날 다녀왔던 강변 풍광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겨 지기들에게 감자 심을 이랑 사진과 함께 보냈다. 아침밥을 차려보니 일전 새벽 껍질을 까둔 무청 시래기는 국으로 끓여졌고 어제 캔 냉이는 삶아 데쳐 나물로 무쳐 나와 봄내음을 맡았다. 자급자족하는 찬거리였다. 아침 식후는 머뭇거릴 겨를도 없이 배낭을 둘러매고 교육단지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역마다 특성이 있겠으나 박물관이나 도서관과 같은 공공 기관은 주말을 개방하고 월요일 휴관 휴무인 경우가 많다. 내가 다니는 창원도서관도 매주 월요 휴무제를 시행하다가 연초부터 열람자 편의를 위해 월요일에도 문을 열어주었다. 단, 한 달 한 차례 둘째 주 월요일만 휴관으로 정해 나한테는 고맙기 그지없다. 이월 둘째 주 월요일은 설날 연휴에 포함되어 이미 지나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도중 폴리텍대학 캠퍼스 느티나무 가지에 송알송알 맺힌 물방울 봤다. 산간 고지라면 상고대를 맺거나 얼음꽃이 피었을 텐데 따뜻한 곳이라 얼음이나 눈은 볼 수 없었다. 우수 절기 걸맞게 빗물이 맺힌지라 폰 카메라로 사진을 남기니 지나던 대학인이 저쪽으로 가면 홍매도 있다면서 알려주었다. 제2 공학관 앞으로 가니 저무는 홍매 꽃잎은 물방울을 달고 있었다.
도서관 입구 닿으니 정시 출근하는 사서 직원보다 내가 먼저 도착해 잠시 서성이다가 입실했다. 2층으로 올라가 우리나라 축제에 관해 읽은 책은 반납하고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창가 자리를 차지했다. 집으로 빌려 가 읽지 못한 ‘철학자의 걷기 수업’을 펼쳤다. 저자 알베르트 키츨러는 독일 철학자로 변호사와 영화 제작으로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과 도보 여행에 일가견이 있었다.
책 속에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현자들을 등장시켰다. 노자가 언급되더니 금세 베트남인 승려 탓닉한이 나왔다. 5장 ‘감사하는 마음을 얻는 길’에서는 괴테가 ‘산은 말 없는 스승이며, 침묵하는 제자를 만든다’고 했다. “자신을 미미한 존재로 인식, 자연의 장엄함과 무한함과 영원함 앞에서 우리는 고된 일상에 갇혀서 소외된 자신을 잊어버린다.”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도 엿봤다.
철학자의 걷기에 관한 책을 덮고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를 일별했다. 저자 알랙산드라 헤리스는 버밍엄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영국왕립학회 연구원이었다. 날씨를 대하는 예술가들의 제각각 태도와 그것이 작품에 미친 영향을 소개한 책이었다.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 속에 담긴 그들의 경이로운 감각의 기록을 사진과 같이 담았다.
강도은이 옮긴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는 다음에 들러 완독하려고 남겨 놓았다. 점심때가 늦어져 배가 고파왔다. 휴게실로 가면 컵라면으로 한 끼 해결되나 어느 기관에 제출할 서류가 한 건 있어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향토 사단이 옮겨간 아파트단지 근처 상가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식후 도계동에서 원이대로 보도를 따라 걸어 집 근처까지 와 카페에서 커피잔을 들었다. 24.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