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기다림의 끝
드디어 15권 완간이 되었다.
일년에 1권씩 출간한다고 했던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의 약속대로
15년이 흘렀고, 15권의 로마인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
아마츄어 역사가가 쓴 로마인 이야기로 화제로 모았지만,
책의 알찬 구성과 재미로 인해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5권을 쓰고 나서야 시오노 나나미는 이제야 로마를 알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책을 읽은 나는?
나는 아직도 로마를 모르겠다.
쓰는 것과 읽는 것의 이해도 차이가 엄청난 이유도 있지만,
로마라는 낯선 시대, 낯선 공간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한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난다.
15권 마지막 책이 책장에 꽂히면서
나는 퍼질의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추는 기분마저 들었다.
1000년 넘게 이어온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이 로마인 이야기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로마인 이야기에 집필에 온힘을 쏟았던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에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 15권을 덮으면서 마치 긴 로마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번 읽은 것으로 로마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은 이것저것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잠시 미루지만,
훗날 지금보다 여유로울 때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옆에 쌓아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읽기를 나 자신과 약속해 본다.
1. 신의 선택
기독교국가된 로마는
이제 황제는 신에 의해 선택된다.
한 황제가 죽으면 황제가 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다음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신에 의해 선택된 자가 황제가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이가 어려도 상관없다.
콘스탄티누스가 이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수도를 정하면서,
동로마와 서로마의 분할 조짐이 보였고,
카톨릭교 이외에 모든 종교와 종파를 이교와 이단으로 정의하고,
카톨릭교만 정통 기독교로 인정한 공로를 세워 대제로 불리는 테오도시우스
그가 죽은 후 로마제국은 그의 아들들에 의해 다스려진다.(395년)
서로마에는 10살박이 호노리우스가 황제가 되고,
동로마에는 18살 아르카디우스가 황제가 되었다.
테오도시우스는 죽으면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두 아들들이 서로 도와가며 로마제국을 이어주길 바랬던 것 같지만,
결과론적으로 로마는 이 때부터 서로마, 동로마로 분할되었다.
2. 마지막 로마인 스틸리코
이때 서로마의 황제 호노리우스를 보좌한 이가 바로 스틸리코이다.
당시 로마제국 위쪽에 눌러 살고 있는 여러 야만족들이 있었다.
당시 야만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 또다른 더 무서운 야만족이 쳐들어왔다.
이름하여 훈족.
원래 살고 있던 야만족들은 이 훈족에 쫓겨 로마제국으로 잦은 침입을 하게 된다.
가장 처음 발동을 건 것은 알라리크가 이끈 서고트족이다.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서로마의 스틸리코와 동로마의 루피누스가 대항하지만,
동로마의 루피누스가 갑자기 철수하여,
스틸리코는 서로마 부대를 데리고 알라리크를 격퇴시켰다.
그런데 동로마는 알라리크를 군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발칸반도의 서고트족 주둔을 인정하였다.
이로써 서로마와 동로마는 이제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는 형상이 되었다.
서로마제국은 그나마 스틸리코가 있어서 간간이 제국의 모습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세력이 약화된 서로마제국은 이제 야만족들의 동네북이 되어가고 있었다.
갈리아 지방에나 발칸반도에 있는 알라리크의 서고트족,
거기에 북아프리카에서도 배신을 하여 동로마에 충성을 하게 되었다.
해결사 스틸리코는 북아프리카의 반란을 진압하고,
처들어오는 야만족의 공격을 방어해갔다.
당시 로마의 군사로는 숱한 야만족의 침입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스틸리코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르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그렇다보니, 어제의 적 알라리크와도 동맹을 맺어
다른 야만족을 쫓아내려고 했다.
그런 그의 작전이 보수주의에 찌든 원로원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더우기 스틸리코는 아버지가 야만족 중에 한명인 반달족이었다.
스틸리코의 아버지가 로마군에 되어 스틸리코는 로마인이었지만,
원로원은 그를 야만족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궁 밖의 세상이 무서워 한발짝도 궁 밖에 발을 내놓지 않는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는 원로원들의 말을 들어
스틸리코를 반역자로 지목하고 사형시킨다.
그렇게 로마제국의 꺼져가는 촛불을 지키려 했던 마지막 로마인은 그렇게 죽고만다.(408년)
왼팔로 자신의 오른팔을 자른 서로마는 그 후 어찌되었는가?
스틸리코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알라리크는 이탈리아 본국에 침략하고
410년 역사에서 '로마겁탈'이라 부르는 침략을 단행한다.
겁쟁이 황제 호노리우스는 수비하기 좋은 라벤나로 황궁을 옮겨
한발짝도 황궁 밖을 나서지 않았다.
서고트족이 마음껏 로마를 겁탈하고 떠난 로마를
뒤늦게 호노리우스는 재건하려고 한다.
이미 속주 방위는 서로마의 손을 떠나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브리타니아에 있던 로마군도 로마황제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갈리아 지역으로 떠돌게 되고, 원래 침략해 온 야만족과 함께
갈리아 지역은 어지러움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알라리크도 죽은 후 서고트족도 잠시 혼란을 겪지만,
몇년뒤 갈리아 서부에 정착하면서 서로마제국과 동맹을 맺게 된다.
3. 무너지는 공든 탑
브리타니아의 군사들이 갈리아에 들어와 야만족과 싸우다
리더가 목숨을 잃게 되어
서로마는 브리타니아 군사들을 이끌 사람으로 콘스탄티누스 장군을 보낸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서코트족의 족장을 죽이게 되고,
서로마는 서코트족과 동맹을 맺고 전쟁을 멈추게 된다.
콘스탄티누스는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의 누이동생 갈라 플루카디아와 결혼하여
둘 사이에 아들을 낳게 되고,
후손이 없는 호노리우스가 죽게 되자
갈라 플루카디아의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황제에 직위했지만
그의 나이 아직 10살이 채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갈라 플루카디아가 섭정을 하게 된다.
그래도 그녀가 서로마 통치를 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는 했지만,
능력이나 재능이나 그릇이 너무 작았다.
그녀는 북아프리카에 보니파키우스, 갈리아에 아이티우스를 재상으로 삼고 안정을 꾀한다.
하지만, 그놈의 의심이 문제다.
갈라 플루카디아는 북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
보니파키우스를 불신하여 소환명령을 내리지만,
무엇인가 눈치를 챈 보니파키우스는 이를 거절한다.
로마군사가 보니파키우스을 공격하러 북아프리카로 오자,
보니파키우스는 반달족에 도움을 요청하여
반달족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온다.
이후 북아프리카는 회유와 배신이 오고간다.
결국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접수하고,
가톨릭신도들은 반달족에 탄압을 받거나 쫓겨나게 된다.
보니파키우스는 반달족을 도움을 요청했다가 되려 그들에게 쫓겨
이탈리아 본국으로 도망가게 된다.
이렇게 북아프리카에 들어온 반달족은 그곳에 눌러앉게 된다.
후에 해적질을 일삼으며 시칠시아 섬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이탈리아에 들어온 보니파키우스는 아이티우스와 전투에서 죽게 되고,
아이티우스는 서로마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야만족 퇴치에 힘쓰게 된다.
한편 로마제국 북쪽에 자리잡은 야만족들의 침략의 원인이 되었던 훈족 자신들도
로마제국으로 침략하게 된다.
그들은 동로마제국을 침략했으나, 동로마제국의 동맹자 제의를 곧 받아들이고,
서로마로 침략한다.
초기 총사령관 아이티우스의 그들의 선방을 막았으나,
무능한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홧김에 아이티우스를 죽인 이후로
서로마제국은 그야말로 야만족들의 동네북이 되어버렸다.
북아프리카에서 정착해서 세력을 키워오던 반달족에 로마는 다시한번 겁탈을 당하게 되었다.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죽은 이후,
로마의 황제가 1년이 가기가 무섭게 황제가 교체되는 대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로마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마지막 황제로 멸망하게 된다.(476)
마지막 황제의 이름을 보고,
로마를 처음 세운 사람인 로물루스와
제정국가로 들어선 로마의 첫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떠올린 이는
지은이뿐만이 아니니라...
참 역설적인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
4. 멸망의 원인
많은 역사가들이 1200년이나 이어졌던 로마의 멸망의 원인을 놓고 연구하고 이야기해왔다.
어떤 뛰어난 외세의 침입으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기를,
로마 시민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망했는지 몰랐던 이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루 아침에 이루러지지 않은 로마가 아니었듯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글쎄, 나 느낌인가?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가 대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이
로마가 로마답지 않게 된 시작점인 기독교국가가 된 것을
의연중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독교화된 로마는 그 이전의 시스템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새로운 국가의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뉘앙스가
지은이의 글로부터 느껴졌다.
그리고 무능한 황제들도 한 몫을 했다.
믿지 않을 거면 쓰질 말고, 썼거만 믿으라는 김구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온갖 의심과 우유부단으로
자신의 왼팔로 자신의 오른팔을 자르는 바보같은 짓을 하는데,
안 망하고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
그리고 그 사실은 알아야 한다.
끝나지 않는 잔치가 없듯이, 영원한 것은 없다고...
로마는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끝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5. 이후
서로마 제국은 망했어도, 아직 동로마 제국이 있는 게 아니냐?
고 반문할 수 있지만,
동로마 제국에는 로마가 없다.
로마가 무너진 그 시점을 역사는 로마 제국의 멸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한때 서로마 제국의 영역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이에 벨리사리우스의 선전으로 어느정도 성공을 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로마 제국에 있는 황제 또한 유능하지 못했다.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그와 정적이 되어 가택연금에 전재산몰수를 하게 된다.
결국 서로마는 야만족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서로마와 갈리아, 북아프리카에서는 야만족들의 치고 받는 싸움 끝에
각자 정찰하여 후에 나라를 이루게 된다.
앵글족, 색슨족, 프랑크족, 게르만족, 반달족, 고트족 등등....
6. 옮긴이 김석희
이 책은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에서도 처음 이 책을 출간했을 때를 회고하며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 몰랐다고 한다.
소위 대박이었던 것이다.
워낙 책의 구성과 재미가 있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옮긴이 김석희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옮긴이 김석희가 감회가 적혀있는데,
그 또한 그 기분을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따라
긴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하였다.
이 로마인 시리즈를 통해 나 또한
번역이란 것이 제 2의 창작이란 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지은이를 기억하는 적은 있어도
옮긴이를 기억하고자 한 적이 없었는데,
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옮긴 이는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옮긴이 김석희 선생님의 그간 노력에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을 통해 만났으면 좋겠다.
......
아참,
25 page에 테오도스우스 가계도가 나와 있는데,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의 연대가 잘못되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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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로마인 이야기 15 (로마 세계의 종언)
지은이 : 시오노 나나미
출판사 : 한길사
독서기간: 2007.2.11 - 2007.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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