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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언론인들이 많이 다치는것이 날마다 어지러워지는 연변의 ‘부조문화’, ‘파탄되는 가정’, ‘우물안의 개구리’이다. 그래서 나도 그 물결을 따라서 소견을 발표하여 볼가 한다. 부조돈이라고 하면 경조사에 내는 축의금, 부의금을 말하는것이 분명한데 그 축의금, 부의금의 뜻이 변질되어가고 있는것은 물론 수입과 지출의 밸런스를 파괴하면서 저마다 부조돈의 두께를 다투는 그런 경쟁의식에 우리의 아름다운 친분이 망가지고 있는것이 문제점으로 되고 있다. 1. 변색하는 부조문화의 의미 부조현상도 문화현상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부 언론에서 이미 부조문화라고 개념을 제출하였은즉 그대로 옮기면서 조선족의 부조문화의 근원을 파볼 의미가 있겠다. 고향을 버리고 살길을 찾아 동북에 개척민으로 들어온 조선족은 화전농 시절에 인정이 팍팍 묻어나는 부조문화를 형성하였다. 경조사에 낼만한 축의금, 부의금이 없었다. 그래도 동네사람들과 친족들이 모여서 한 가족의 경사를 함께 경축하고 싶었고 한 가족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싶었다. 그래서 웃집에서 쌀 한토리, 아랫집에서 감주 한단지... 이렇게 두루 있는것 만큼 모여서 경조사를 치르는것이 우리의 전통으로 되었고 이런 전통은 80년대초반까지 이어졌다. 80년도에 필자의 형님누나들의 결혼식에 풍경화 내지 벽거울에 축하인의 이름을 버젓이 적어서 보내는 풍속이 극에 달하였는데 지금도 연변의 시골에 가면 그때 받은 축하선물들이 벽에 줄느런히 걸려있는것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그 벽거울이라든지 풍경화라든지 중복이 심하였고(많을땐 같은것이 수십개) 또 그런것들이 실용적인 가치는 떨어지더라도 그것이 대표하는 의미는 따뜻한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부조문화는 이미 이런 祝賀-扶助의 의미를 벗어나고 있는바 간단하게 이런 축의금-부의금을 세가지로 분류할수 있다. 첫번째의미는 ‘회뢰금’이다. 한 자리하는 집안의 경조사에는 유달리 부조돈이 많이 들어오는데 벌써 80년대부터 “누구네 경조사에는 몇만원, 십몇만원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돌군 하였다. 자기의 출세와 관련된 집안의 경조사에 내는 부조돈은 부조돈이 아니라 기실은 회뢰금이다. 이런 회뢰금에 가담하지 않는 자의 출세길은 꽉 막혀버린다고 한다. 두번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축의금-부의금이다. 축의금-부의금은 자기한테 좀 저축이 있을때 자기의 생활과 관련있는 사람의 경조사에 ‘신사스럽게’ 내는 돈을 말할것이다. 80년대부터 우리의 삶이 좀 여유가 있게 되자 이런 신사스러운 부조돈 문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런 축의금-부의금은 시작단계부터 수입과의 밸런스가 파괴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밑바탕에는 우리민족의 괜스런 자존심과 축에서 빠지기 싫은 그런 몸부림이 담겨져 있었다. 80년대초에 필자가 공소사에서 월급 35원을 받을때 이미 친구의 결혼식에 50원을 내는 그런 수준이었으니깐... 그 한달은 정말 어떻게 보냈을가? 아버지의 퇴직금을 내다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이것도 지금은 변색되어 결국 축의금-부의금이 ‘변종 투자’로 되고 있고 누가 나의 경조사에 얼마를 가져왔던가를 장부로 적었다가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빚으로 되고 있다. 이런 인정사정빚을 서로 지고 지우면서 우리의 친척관계, 친구관계, 동료관계는 본의 아니게 우습게 ‘금전관계’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세번째는 진정한 의미의 扶助돈이다. 친척이나 친구중에 살림이 변변치 못하여 경조사를 제대로 치르기 힘든 사람이 있다. 이때는 친척과 친구, 동료들이 부조돈을 모아 그 경조사를 원만히 치르게 된다. 이것은 초기의 화전농시절의 부조문화와 일맥상통하는것이다. 이런 부조문화는 공동체의 따뜻한 체감을 함께 하는 협동정신을 키우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위에서 제기한 세가지 부조문화에서 어느것이 바람직한것인지는 알아서 할바이다. 2. 연변의 부조문화와 대비되는 관내의 한족들의 부조문화 부조돈의 두께에 대하여 한족들이 얼마나 계산을 잘하는가 예를 들어보자! 연변의 부조문화는 어떤가? 이런 복잡한 인과관계를 피면하자면 순박하고 순수하였던 우리의 부조문화의 원뜻을 찾아서 살림이 여유가 없는 집안의 경조사에는 자기가 낼수있는만큼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조를 하여주고, 괜찮은 살림수준에 아예 부조가 별로 필요치 않은 경조사에는 꽃 한묶음, 혹은 기념품을 사들고 가는것이 퍽 의미가 있고 깨끗할수도 있다. 3. 결국은 수입과 지출의 밸런스가 깨진것이다. 사회격변기를 겪으면서 중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분명하게 계급분화가 생기고 있다. 이런 계급분화는 한족들에게는 이미 현실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이런 인정을 토대로 그네들은 부조문화에서도 이미 계급적인 분류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연변은 분명 수입적으로는 계급적인 분화를 완성하고 있지만 지출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관내의 한족들은 부조문화를 비롯하여 이미 상층사회, 중층사회, 하층사회의 소비수준과 규범이 완성되고 있다. 중층사회와 하층사회의 일분자라고 승인하는 사람은 상층사회의 소비품에는 한눈도 팔지 않고 그냥 꿈으로 생각한다. 하층소비자들은 심지어 대형마트에 출입할 엄두도 안낸다. 그러나 조선족은? 겁없이 소비하는것이 조선족이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것이 조선족이다. 축에서 빠지지 않으려는 정신, 그 정신은 보귀한것이다. 그러나 수입적인 측면에서 이미 축에서 빠졌을때는 지출에서도 그 축에서 빠져야 할것인데 위험하게도 우리는 수입적인 측면에서는 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지출적인 측면에서는 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은 눈을 딱 부릅뜨고 견지하는것이다. 송성만 연변통신 2006-12-12 만남의광장 중국연변카페 http://cafe.daum.net/cnyanbianli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