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장금>은 산소미인 이영애가 오랜만에 TV 드라마에 복귀하는 작품이라고, 국민 드라마 <허준>을 연출했던 이병훈 PD의 작품이라고, 남존여비적 세상이었던 조선시대에 여자로서 어의까지 오른 인물을 그린 작품이라고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자 깜찍한 연기를 펼친 아역 배우가 좀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곧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스타탄생이 생겼다. 바로 '한 상궁 열풍'이다. 그 열풍은 일명 '한 상궁 살리기 운동'으로 번져 순전히 극의 초반부에 죽을 인물을 좀 더 오래 살려놓기 위해 방송이 10회 연장되는 결과까지 낳았다.
평소 매번 챙겨봐야 한다는 귀찮음 때문에 연속극을 멀리하던 필자이건만 이젠 일주일을 <대장금>하는 날과 <대장금>을 기다리는 날로 인식할 정도니, 꿈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50%대를 훌쩍 넘겨버린 인기가 그저 우연은 아닐 터이다. 잠깐, 그렇다면 어떤 필연이 있다는 뜻인가? 이 질문에 대해 솔직한 답을 해버리면 장금이와 한 상궁의 (이성애주의 성향의)팬들이 "어디 감히!"를 외치며 분노를 토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속이 시원해지도록. "아! 여기 전국 동성애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레즈비언 사극을 보라!"고.
"난 네가 필요해!"
출렁거리는 물살, 흔들리는 뱃전에 앉아 절실함에 목 메이듯 내뱉은 한 마디! 자기는 쓸모없는 사람이니 버리라는 장금이의 말에 한 상궁의 대답은 더도 덜도 없이 그것이었다. 어디 그 말이 너는 참으로 유용하다는 뜻이었겠는가, 아니면 대선 치르기 전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에게 으르던 협박 같은 것이겠는가. 세상 모든 것 다 없어도 좋으니 네가 내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한 여성이 한 여성에게 절절하게 드러낸 고백이 아니던가.
한 상궁과 장금이를 동성애적 관계로 해석한다면 필시 그건 너무 심한 '오버'라고 비난할 자 많을 것이다. 한 평생을 구중궁궐 안에서 외롭게 살아야 하는 궁녀들끼리 서로 의지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또 어머니와 딸과 같은 사이를 그리 보는 것은 너무나도 후안무치하다고, 아니 그럼 장금이와 한 상궁이 서로 섹스라도 한단 말이냐고 열을 내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절대로 오해는 마시라. 지금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장금이와 한 상궁이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존했던 인물인 서장금의 성 정체성을 새삼스레 궁금해하거나 탐구해 볼 까닭도 없거니와 작가나 연출자의 의도나 출연자들의 연기를 곡해할 생각도 없다. 더군다나 레즈비언이니 동성애니 하는 말들은 모두 19세기 말에야 만들어진 단어이므로 현대의 단어로 과거를 재단하는 일도 우스운 일일 뿐 아니라, '선데이 서울'류로 나갈 의도가 아닌 다음에야 두 사람이 함께 잤니 안 잤니 라는 것은 거론될 바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컥 제목에다 '눈물나는 레즈비언 사극'이라고 이름 붙인 건 무엇이냐고 따진다면 어떤 이들에겐 그런 의미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간 남녀끼리의 사랑은 신물이 나도록 봤다.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하면 한 남자를 둔 연적 관계이거나, 재벌의 손녀 자리를 두고 진짜를 다투는 식의 콩쥐와 팥쥐의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수첩에 적어두고 싶은 멋진 사랑 고백도, 지고 지순한 사랑의 헌사도 모두 남녀 사이에서만 오가곤 했다.
하지만 2003년 겨울, 우리는 한 드라마에서 자기 인생의 중심을 '백마 탄 왕자님' 만나는 것에 두지 않은, 가장 존경하고 아끼는 사람을 남성으로 두지 않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함께 하고 싶고, 속 울음이 터질 때 안아서 달래주며,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존재로 곁에 두고 싶고, 편견 없는 질타와 진심 어린 칭찬을 기꺼이 나누며,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함 속에서도 가장 먼저 챙기는 이가 같은 여성으로 설정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현실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가.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내게 진정으로 원하는 건 당신 하나 뿐이라고, 당신과 함께라면 그 무엇도 힘들지 않다고, 내 맘속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당신뿐이라고.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만 혹여 고백했다가 차가운 비웃음을 살까봐, 행여나 다른 사람이 알아채고 동성애자라고 손가락질 할까봐 얼마나 꼭꼭 안으로만 숨겨야 했던 마음이던가.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두 여인이 너무나 태연히 서로를 향해 사랑 어린 눈길과 손길과 대화를 나누니 어찌 그 마음이 함께 동화되지 않겠는가.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동성애자라고 내세우고 등장한 그 인물들에 동성애자 시청자가, 관객들이 동화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들은 대개 이성애자들의 머리 속에서 상상으로 조합된 인물이었고 그 어색한 연기와 황당한 줄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역겨움을 참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한 상궁과 장금이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 반짝거리는 동질감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한 상궁이 장금이의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할 때, 장금이를 떠나 보내고 해질녘 동산 위에 올라 그리워할 때, 남에게 티 내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세심히 챙겨줄 때, 친구의 딸임을 어머니의 친구임을 마침내 알게 되어 환희에 찬 얼굴로 지엄한 궁궐 안을 뛰어갈 때, 그리고 모진 고초를 겪는 감옥 안에서 한 상궁이 나즈막히 읊조리던 대사를 들으면서 마침내 감정이입은 절정에 달한다. "네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있으니 외롭지도 춥지도 힘들지도 않구나."
그러니, 혹 레즈비언 사극이라는 말이 괜시리 거슬리게 들린다 해도 너무 타박하진 마시라. 너무나도 귀하게 발견한 즐거움이자 남몰래 느끼는 아픔일지니. 이제 곧 한 상궁의 죽음으로 끝날 이야기지만 일주일에 두 번, 딱 두 시간 동안 허락된 행복했던 TV 시청을 이렇게 기념해 두려 할 뿐이니. 그녀들의 혹은 우리들의 눈물 나게 아름다웠던 사랑을.
첫댓글 대장금 즐겨 보시지 않으시나요?
대장금이 뭐지--------옛날 우리선조들이 대장간에서 큰---------칼 만든걸보고 대장금이라 하지않았나-------난 대--장금 한--번도 못봣다-작은 검은 봣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