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펩시코 회장_ 인드라 누이 식음료 업계 만년 2위 펩시콜라를 100년 만에 1위로 이끈 '철의 여인'|견문 넓히기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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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났으면 그 누구보다도 현명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에서 여자로, 그것도 외국인으로 일한다면 더욱 그래야 하죠.”
우리나라에서 3500여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인도에 한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인도에서 가장 높은 사회계급인 브라만의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인도는‘카스트’란 계급 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로 유명해요.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브라만(사제자)·크샤트리아(무사)·바이샤(농민·상인 등 서민)·피정복민(被征服民·정복당하는 사람) 등 네 가지 계급으로 나뉜채 살아가죠. 조선시대 여성이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은 것처럼 인도 여성도 마찬가지였어요.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과 끼가 넘쳤답니다. 많은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배움에도 적극적이었지요. 어쩌면 인도란 나라는 이소녀가 날개를 펼치기엔 조금 좁았는지도 몰라요. 결국 소녀는‘기회의 땅’미국으로 건너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30여 년 후,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요? 쟁쟁한 남자들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종합식음료 기업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답니다. 소녀의 이름은 인드라 누이(55세),펩시콜라로 잘 알려진 미국 펩시코 회장입니다.
▲ 인드라 누이 펩시코 회장은 어릴 때 부터 꾸준한 노력과 인내심으로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마침내 만년 2인자였던 펩시콜라를 세계 최고의 식음료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블룸버그 제공
◆‘인도’란 우물을 벗어나 큰 세상으로
인드라 누이는 어려서부터 판사였던 할아버지와 은행가였던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나 시아버지와는 좀다른 방식으로 인드라와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너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어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형제들에게 이렇게 질문했어요. 형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있던 ‘꿈’ 을 어머니 앞에서 신나게 얘기했어요. 어머니는 자녀의 얘길 조용히 들은 후, 가장 멋진 꿈을 말한 사람에게 상을 줬지요. 그런 어머니에게서 자란 덕분일까요. 인드라는‘여자’란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누구보다 큰 꿈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인드라는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여성이 전면에 나서는 걸 꺼리는 학교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 크리켓팀선수로 활약했지요. 대학에 다닐 땐 교내 록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기도 했어요.
대학 졸업 후 인드라는 의약품·생활용품 제작 기업 존슨앤드존슨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도 늘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꼈어요. 남보다 앞서 가려면 더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인드라는 그때 결심했어요.‘ 인도란 작은 우물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야겠다!’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반드시 온다
인드라는 미국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큰 꿈을 품고 시작한 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어요.
학비는 장학금을 받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생활비는 직접 벌어야 했거든요.
공부하는 틈틈이 일까지 해야 하는 삶도 힘들었지만 더욱 버거운 건 사람들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이었어요. 전세계의 우수한 인재가 모여 경쟁하는 미국에서 여자가, 그것도 인도인이 그 실력을 인정받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인드라는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어요.“ 무슨 일을 하든 남보다 열심히 해라.”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할 때 까지 포기하지 않고 실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기회는 때를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온다고 했던가요? 인드라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어요. 대학원 졸업 후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모토로라, 글로벌 기계 제조업체에서 기업 전략가로 활동한 인드라를 눈여겨봐 온 당시 펩시코 CEO(최고경영자) 웨인 칼로웨이가 그에게 펩시코 입사를 제안한 거지요. 마침내 1994년 인드라는 펩시코에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건강 식음료’ 개발로 코카콜라 눌러
인드라가 합류했을 당시 펩시코는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2위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사람들도“펩시콜라는 코카콜라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인드라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그는 펩시코가 운영하던 KFC와 피자헛 등 여러 가지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어요. 그리곤‘몸에 좋은 것’ 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고민하기 시작했답니다.
때마침 199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웰빙’바람이 불었어요. 인드라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주스와 스포츠음료 제조업체인 트로피카나와 퀘이커오츠를 인수했습니다. 몸에 나쁜 트랜스지방을 뺀 과자도 시장에 내놓았어요. 그 결과가 궁금하지요? 2004년 회사 설립 100여 년 만에 펩시코는 코카콜라를 제치고 당당히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답니다.
인드라는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경영자지만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걸로도 유명해요. 회의할 땐 책상에 걸터앉아 누구든 편하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지요. 사내 강연을 할 때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 직원들 앞에서 ‘깜짝 공연’을 펼치기도 했답니다. 그는 자신만의 리더십을 인정받아 2006년 여성 최초로 펩시코 CEO에 올랐고 이듬해인 2007년엔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 인두라 누이는 …
1955년 인도 남부 최대 도시인 첸나이에서 태어났다. 인도에서 대학을 마치고 존슨앤드존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경영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미국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1980년 대학원을 졸업한 후 보스턴컨설팅그룹, 모토로라, 아시아 브라운 부버리 등에서 일했다. 1994년 펩시코에 입사, 7년 만에 펩시코 최고재무책임자로 승진했다. 2006년 여성 최초로 펩시코 CEO에 올랐고 2007년 10월 이후 회장직까지 겸하고 있다. 코카콜라에 밀려‘만년 2등’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던 펩시코를 업계 1위로 올려놓은 1등 공신으로 꼽힌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1위에 4년 연속(2006~2009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