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선규 울산시교육청 교육국장
광역 교육사 10년은 ‘나의 인생’
38년 교직… 흔들림 없는 교육철학으로 격동기 순항

광역교육사 10년 동안 숱한 난관을 헤쳐 내며 흔들림 없이 교육현장을 지켜온 이선규(63) 교육국장. 2월말 명예로운 퇴직을 맞이하며 38년 간 교육발전을 위해 쏟았던 열정들을 떠올리며 회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를 빼놓고 울산 광역교육을 논할 수 없을 만큼 격동세월을 진실 되고 뚝심 있게 지켜왔기에, 정년퇴임식은 의미가 남다르다.
교육국장직은 교육청의 핵심이기에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3년 6개월 간 국장직을 수행하면서 거센 풍파를 무난히 통과, 울산교육의 질과 환경을 높이는데 기여를 해 왔다.
이 국장은 38년의 교직생활 중 울산광역 교육 10년사가 곧 “나의 인생”이라고 할 만큼 큰 비중으로 잡았다. 격동세월을 헤쳐 오면서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할 일들을 수없이 겪어 왔다.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좌절감이 컸지만, 교육에 대한 소신을 갖고 대처해 나갔기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지요. 어쩌면 시련이 크면 삶의 과제가 큰 법일 것입니다. 그 과제를 해결했을 때 위안으로 삼고, 어떠한 원망보다 내 삶이라 생각했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군요.”
대의가 있으면 시련이 큰 법일까. 큰일을 해내는 사람일수록 파고는 높고 힘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나 보다. 이 국장은 경남과 울산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광역시 승격 이후 선배의 권유로 내울해 10년간 울산교육을 짊어지며 모진 풍파와 맞닥뜨려야만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에 휘말리기도 했지요. 그 일은 3년 6개월 동안 따라다니며 괴롭혔는데, 얼마 전 저의 진실을 인정,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외유내강’, 언뜻 이 국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거침없이 중차대한 일들을 처리해 오고 어려운 일들을 겪어온 그다. 그랬기에 수식어처럼 ‘강한 교육인’이란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누구 보다 온유한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데도 눈치 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경남에서 일선 교사로 재직하며 부모를 대신해 제자의 뼛가루를 직접 뿌린 적이 여러 번 있지요. 교육의 최전방에 있으면서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릴 때도 많았는데, 무엇보다 교육은 제대로 서야한다는 진실을 뼛속 깊이 새길 수 있었지요.”
제자와의 정이 깊어 말을 하면서 다소 회한에 잠긴 듯했지만, 정년을 며칠 앞두고 있어서인지 이 국장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묻어 있다. 공적인 행사장에서만 보아오던 것과는 참 상반된 느낌이다. 그 동안의 주어진 짐의 무게가 얼마만큼 인지 가늠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교육국장은 경남 김해 출생이다. 1971년 신창중학교를 시작으로, 삼진중학교, 진해남중학교, 진해상업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1984년에 진해남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상북중학교로 옮기면서 울산과 인연을 맺었다. 1992년 상북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다시 경남으로 가서 경남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로 활동했다.
이후 울산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광역시 승격이란 큰 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역시에 걸맞게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을 선배 교육자가 알아보았던 것. 선배의 강한 권유로 격동기의 울산교육에 투신해 험한 교육에의 길을 걸어왔다.
광역시의 살림살이는 예상대로 쉽지 않았고 어려운 일들에 봉착해 가시밭길 험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과정 중에 울산의 인재육성에 기여, 과학고등학교 개교, 전국 규모의 울산창의축전 개최, 영재교육기관 확대, 교육정보화 사업 등을 꼼꼼히 챙기는 열정을 선보였다.
이 국장은 재직 중에 녹조근조훈장을 받았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선진 교육 울산이 될 수 있도록 반석을 마련한 공로에 의한 것이다. 평생 ‘정직’을 생명으로 교육에 최선을 다한 이 국장은 퇴임식은 표정에 드리운 밝은 빛처럼 영광스럽게 느껴진다.
고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