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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문학평론가의 길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가지고 멋지게 재 창출하는 작업이라 하지요 며칠천 제 6회 영축문학상 제출 작품이 의미 있는 예심을 통과하고 본심 작품으로 선정된 점을 기리는 뜻으로 해당 글을 게재합니다. 다만 읽기의 편리성을 위해서 제출시의 해당 글과 책에 게재된 화면을 동시에 게재함에 이해를 부탁합니다.
화려한 영화(映畫) 시집 『님의 침묵』 에 숨겨진 숭고(崇高)한 미(美)
목차 1. 연구 목적과 범위 및 방법 2. 전통적 선시(禪詩)의 근본적 의의(意義) (1) 언어적 초월성과 상징 (2) 관조적 시(詩) 형식의 즉물적 직관 (3) 간화설적 역설 3. 시집<님의 침묵>에서 ‘님’과 ‘침묵’의 영화적 요소 (1) 이별 장면에 비친 미적 창조성 (2) 님의 존재와 침묵의 이미지 ⓵ ‘님의 존재’ 의미 ⓶ 침묵의 이미지와 기다림의 고통 4. 한용운 문학 세계에서 ‘숭고’ (1) ‘님’에 대한 부정적 재현 (2) ‘님’과 합일을 통한 열망 (3) 숭고한 표상 ‘자연인식’ 5. 결론 |
1. 연구 목적과 범위 및 방법
현대 인류의 불행은 ‘에덴동산’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인간에게 ‘에덴동산’은 꿈같은 천국이었다. 시집 <님의 침묵>에서는 ‘님의 존재’를 ‘무아’로 설정하고 찾아가는 ‘가아’의 사랑을 참된 깨우침으로 바라본 시선(視線)으로 그려간다. 우리 인간에게 참된 행복의 표상인 ‘에덴동산의 상실과 회복 과정’을 ‘참 존재(진리)의 상실과 회복’해 가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기도 하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세속적인 이야기에 빗대서 헤어짐-기다림-만남의 환희로 엮어가는 환유와 역설로 구성된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하나의 화려한 영화로도 부족함이 없다. 본 평론에서는 우리 삶의 건너편에 있는 참 존재(진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시집 <님의 침묵>을 이정표로 삼고자 한다. 시인(時人)이 내면에서 연출한 창조적인 상상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보여줌(showing)이 시(詩) 세계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한 편의 시(詩)는 수식어로 장식하는 것이 아닌 리듬과 이미지로 장식된 예술이라는 만해 시인의 세계로 황홀한 여행을 시작한다.
2. 전통적 선시(禪詩)의 근본적 의의(意義)
전통적인 선시(禪詩)는 언어와 문자를 초월한 진리를 표현하고 독자들에게 직관적인 깨달음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언어 규범이나 논리적 사고 방식은 깨달음의 경지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선시(禪詩)는 역설, 비유, 상징 등을 통해서 진리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선시(禪詩)는 고려시대 혜심(慧諶)에서부터 유래되어 온 본래 한시(漢詩) 방식이었으나, 시인 한용운님의 주도로 개화기를 거치면서 현대 시(詩)와의 융화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1) 언어적 초월성과 상징
현실에서 추상적인 관념 등으로 인한 불가시적인 원관념을 가시적인 보조관념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상징(象徵)이다. 이런 상징(象徵)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하나의 완전한 결합체로서 동일성을 이루며, 선(禪)이 지향하는 직관의 무매개적 직접성과도 일치하고 있다. 예컨대 “별 빛 받으며/발 자취 소리 죽이고/조심스리 쓸어 논 맑은/뜰에 소리 없이 떨어지는/은행 잎/하나/”. 이 작품 조지훈 시인님의 [정야1]은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뜰의 청정함을 드러내는 이미지로 발자취 소리, 은행잎 등의 청각적, 시각적인 이미지로 어둠을 밝히는 깨달음의 광명을 별빛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함으로 인해서 최대한 언어 개념이 스며들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 있다.
(2) 관조적 시(詩) 형식의 즉물적 직관
불교에서 말하는 즉물적 직관은 실제로 체험하거나 인지하는 경험을 통해서 추론이나 분석 없이 직접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관조적인 시(詩) 형식과 일치하고 있다. 이를테면 김달진 시인의 <샘물>은 관조적 시(詩) 형식이 대상의 직접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형상화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경우이다.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물 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지나가고 조그만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나는 조그만 샘물을 들여다보며/동그란 地球의 섬 우에 앉았다”
(3) 간화설적 역설
시적(詩的)으로는 하나의 ‘표현된 것’과 ‘의미 된 것’의 상충에서 오는 시적 긴장이 언어적 역설이다. 특히 만해 한용운 시인님은 한 문장 한 구절 등에 나타나는 어휘적 모순을 통해 보다 강한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결국 이면에 숨겨진 참뜻과 대조되는 발언이 언어적 역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인가요/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하는 때에 당신의 노랫가락은 역력히 들립니다그려/당신의 소리는 침묵이어요/당신의 얼굴은 〈흑암〉인가요/내가 눈을 감은 때에 당신의 얼굴은 분명히 보입니다그려/당신의 얼굴은 흑암이어요/당신의 그림자는 〈광명〉인가요/당신의 그림자는 달이 넘어간 뒤에 어두운 창에 비칩니다그려/당신의 그림자는 광명이어요” -한용운 [반비례] 전문
3. 시집<님의 침묵>에서 ‘님’과 ‘침묵’의 영화적 요소
(1) 이별 장면에 비친 미적 창조성
시집<님의 침묵>에서 시적 화자는 끝없는 역설로 ‘님’의 주체인 ‘무아’를 찾아 나선다. ‘무아’는 없는 것의 있음이다. 아니 없음 있음 그 자체를 초월한 참 진리 ‘나’이다. 세속(世俗)에서는 타자인 ‘님’이 실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본체계에 든 자신의 ‘무아’)이라는 사실을 타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역설로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초월적인 세계를 세속적 이성애로 노래하는 깨달음이 펼치는 ‘님의 침묵’ 속에 헤어짐-기다림-만남이라는 통합적이면서 합일의 정신을 내포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님의 침묵> 부분
만해 시인(詩人)은 시집 <님의 침묵>에서 초월적인 세계를 세속적 이성애로 노래하는 깨달음이 펼쳐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인간사의 현실처럼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이형기 시인의 시(詩) <낙화>에서 계절의 흐름 속에 꽃이 지고 녹음이 사라지는 것은 훗날 열매가 열린다는 상황을 중시하면서 슬픈 현실에 대한 미련을 갖기보다는 내면에서 성숙함을 지향하는 세계와도 일치하는 듯하다. ‘푸른 산빛’은 ‘단풍나무 빛’과 대비되는 시각적 이미지로 의미심장한 계열체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푸른 빛은 ‘님’과 사랑하던 때의 기쁨과 희망, 생명의 느낌을 함축하고 있으며, 붉은빛은 이별의 고통과 절망감, 쇠락한 느낌을 전달하는 현실적 느낌을 가져오기도 한다. 여기에다 이별의 비극 쪽으로 진행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작은 길’이란 시각적 이미지와 ‘깨치고’ ‘참어 떨치고’의 격한 음가 역시 감정의 파장을 일으키는 세속적인 그림과 오버랩되는 장면으로 역시 주목할 만하다. ‘꽃’과 ‘황금’을 결합시키는 듯한 역동적 상상력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유구한 사랑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시각적 이미지도 사랑에 대한 최고의 수식어라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이별의 고통과 절망감이 ‘이별-만남’의 욕구로 분출되는 장면에 시각적 촉각적 이미지가 배치되면서 세속적인 ‘디오라마’ 적 촬영 기법을 이용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섬세함이 묻어 있다고 본다.
(2) 님의 존재와 침묵의 이미지
만해 한용운님의 시(詩) <님의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님’과 함께 ‘침묵’이다. 예컨대 ‘님’없이 ‘침묵’을 언급할 수 없고 ‘침묵’ 없이 ‘님’을 언급할 수 없는 일종의 ‘자물쇠’와 ‘열쇠’의 떼일 수 없는 관계와 같다. 그러나 ‘가아’인 시적 화자가 다가올 수 있는 대오에의 길을 무아인 ‘님’은 말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아니 결코 언어룰 통해서는 가르쳐 줄 수 없다. 언어란 단지 대상(객관 사물)이 실재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그 대상을 객관적, 개념적으로 인식한 내용의 기호체계일 뿐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이에 만해 한용운님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고백적인 표현으로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사랑을 이름지을 만한말이나 글이 어데 있습니가" <사랑의 존재>. "님의 얼굴을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어여쁘다는 말은 인간 사람의 얼굴에 대한 말이오 ‘님’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만치 어여쁜 까닭입니다"(님의 얼굴)라고 하소연하는 듯하다.
⓵ ‘님의 존재’ 의미
우리가 보통 호칭하는 ‘님’이라 하면 애인 또는 연인이라 부르는 게 다반사이다. 물론 대부분 문학작품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가끔은 ‘왕’이나 ‘부모’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세속적 사랑의 대상을 부르는 말이 ‘님’이다. 그럼에도 세속적인 언어를 통해 불교의 지고한 개념인 ‘무아’에 응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 만해 한용운 님의 문학 세계 특징이다. 사실 만해 문학이 추구하는 ‘무아’는 황홀한 경지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 참다운 자기를 확립하는 ‘아’이다. 따라서 ‘님’은 무아를 지칭하는 미학적 용어이고 만해의 시는 무명(無明: 하나의 불교 용어로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에 사로잡힌 범부가 그 해탈의 경지인 무아를 찾아 끝없이 구도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님의 시(詩) 세계에서는 이렇듯 가아와 무아 사이의 내면적 거리를 선(禪)의 경지에서 합일하고자 하는 장면이 뚜렷이 나타난다. 가령 ‘침묵’이라는 단어가 전혀 노출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님의 존재’에 대한 화자의 심정이 암시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시(詩)<꿈 깨고서>가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님이면은 나를 사랑하련마는 밤마다 문밖에 와서 발자취 소리만 내고 한 번도 들어오지 아니하고/도로 가니 그것이 사랑인가요/그러나 나는 발자취나마 님의 문밖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아마 사랑은 님에게만 있나 봐요/아아 발자취 소리나 아니더면 꿈이나 아니 깨었으련마는/꿈은 님을 찾아가려고 구름을 탔었어요” <꿈 깨고서> 전문
⓶ 침묵의 이미지와 기다림의 고통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서 만해 한용운 문학의 신비를 푸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는 것이 침묵이다. 만해 시인 특유의 헤어짐-기다림-만남으로 이어지는 환유 구조에서 헤어짐과 만남이 하나의 고리로 엮여 있는 점은 기다림의 고통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당신의 소리는 침묵인가요/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하는 때에 당신의 노랫가락은 역력히 들립니다그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이어여”<반비례> 이라거나 혹은 “님이여 나를 책망하랴거든 큰 소리로 말씀하여 주세요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바늘로 찌르는 것입니다”<차라리>라고 해서 시적 화자의 님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고통이 침묵의 이미저리에 짙게 배어 있는 독창성이 빛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우리 일상에서도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과정은 분명 하나의 고통임이 분명하다. 이해인 시인님은 시(詩) <행복한 기다림>을 통해서 “뿌연 안개가 하늘로 올라가는 새벽/초록빛으로 덮인 들길에 서서/행여 찾아올지도 모르는/그대를 기다립니다/라는 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표현하는가 하면,/혹시 내가 보고 싶어/이곳을 찾아올지도 모르는/그대를 기다린다는 것은/설레임과 행복한 기다림입니다/”라고 해서 만해 한용운 시인님의 이별과 만남의 고리 안에 기다림이 엮인 환유적 구조와 일치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4. 한용운 문학 세계에서 ‘숭고’
(1) ‘님’에 대한 부정적 재현
한용운 님의 시집 <님의 침묵>의 ‘님’은 인간에겐 상상력이나 이성으로는 인식 불가능한 숭고(崇高)의 대상이다. 이 시집 전체를 통해서 ‘님’은 시적 화자인 주체에게 언제나 위대하고 무한한 존재로서 표현되고 있다. 그 ‘님’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서 존재하며, 부재중이지만, 주체에게는 부재하지 않는 존재로서 불명확한 적극적 실재성이 없는 존재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주체의 내면에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기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사랑을 이름 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디 있습니까/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밋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黑闇面)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칠 수가 있습니까/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쳐서 존재? 존재입니다/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사랑의 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놓는 바늘과 님이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사랑의 존재> 전문
(2) ‘님’과 합일을 통한 열망
만해 한용운님의 시 세계의 핵심은 ‘님의 부재’라는 고통과 상실의 체험이 있고, 그 부재를 향한 태도와 극복의 과정이다. 특히 한용운님의 시에서 ‘님의 부재’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님의 부재’를 부정하고 ‘님’과 만나기를 열망하며 살아가는 것은 시적 주체인 화자의 내면에서 상상력을 촉발시키느 기원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님’과 합일을 통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詩) <님의 얼굴>은 이런 장면 장면을 영화 속에 그림처럼 펼쳐가고 있다.
“님의 얼굴을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어여쁘다는 말은 인간 사람의 얼굴에 대한 말이요 님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가 없을 만치 어여쁜 까닭입니다/자연은 어찌하여 그렇게 어여쁜 님을 인간으로 보냈는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습니다/알겠습니다 자연의 가운데에는 님의 짝이 될 만한 무엇이 없는 까닭입니다/님의 입술 같은 연꽃이 어디 있어요 님의 살빛 같은 백옥이 어디 있어요/봄 호수에서 님의 눈결 같은 잔물결을 보았습니까 아침 볕에서 님의 미소 같은 방향(芳香)을 들었습니까/천국의 음악은 님의 노래의 반향입니다 아름다운 별들은 님의 눈빛의 화현(化現)입니다/아아 나는 님의 그림자여요/님은 님의 그림자밖에는 비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님의 얼굴을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님의 얼굴> 전문
(3) 숭고한 표상 ‘자연 인식’
우리는 만해 한용운님 시(詩)를 통해서 자연이 님의 무한성을 표상할 수 없는 대상임을 이전에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만해의 시에서 자연은 오히려 그런 이유를 근거로 숭고한 표상을 부여받고 있기도 하다. 시(詩) <알 수 없어요>는 ’님‘이 자연이 표상으로 드러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결국은 자연의 표상을 통해서만 그 속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는 인식론적 차원의 작품이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알 수 없어요> 전문
5. 결론
시집 <님의 침묵>은 우리의 어두운 과거 시절에 등불의 빛줄기로 가슴을 밝혀준 민족의 대표 시인 만해 한용운님의 위대한 업적이다. 만해 한용운 시인님 시(詩) 세계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출발하고 있다. 여기에다 세속적인 사랑과 이별이라는 이야기에 빗대서 헤어짐-기다림-만남의 환희로 엮어가는 환유와 역설로 구성된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하나의 화려한 영화로도 부족함이 없다. 만해 한용운 시인님이 시집 <님의 침묵>이란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삶의 물결이 한 폭의 그림으로 비쳐온다.
첫째, 우리 인간이 이성적 욕망을 선택하고 감성적 삶을 잃어버림으로써 불행하게 된 현실을 이야기한다. 만해 시인님은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고, 영원한 시간 속에 너와 내가 공존하며, 영생하면서 불안과 절망이 사라진 평화와 희망이 공존하는 세계를 지향(指向)할 것을 말하고 있다. 아울러, 인간이 지닌 한계를 감안하고 시적 방안으로 상상적 사고를 통하여 너와 내가 분리된 공간에서 공존하는 공간으로 뛰어넘은 메타포를 통한 물아일체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둘째 현존 인류가 사물을 대신하는 문자언어를 이용함으로써 겪고 있는 불행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인간들이 사물의 기호만을 가지고 사는 추상적인 세계의 불행한 삶을 말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과의 단절로 고독이란 병을 얻게 되는 것이 현재 안타까운 삶이지 아니냐고 되묻고 있다. 예컨대, 인간이 원래는 단지 교환하는 수단으로 만들었었던 화폐가 삶의 목적이 되면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지배하던 돈이었는데 이제는 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 현실은 언어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셋째, 시집<님의 침묵>에서 숭고의 대상은 문자의 영역을 벗어난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재현으로 ‘님’이었다. 마찬가지로 ‘님’에 대한 사랑 또한 같은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님’의 부재를 통해 ‘님의 현존’을 노래하면서 그 ‘부재’를 주체의 ‘사랑의 깊이’로 환원하는 한용운의 시(詩) 세계는 ‘숭고’의 미학적 특성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 경우에는 사랑을 ‘님’에 대한 지향성으로 해석하여, 사랑=님으로 등치시켜 ‘숭고한 대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실상 ‘님’이 숭고하므로 나의 ‘사랑’ 또한 ‘숭고’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넷째, 만해 시인이 발휘하는 ‘창조적 상상력’은 비상한 ‘직관’으로 이어져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추상적인 관념’까지도 표현한다. ‘지상의 세계’는 불평등이 있고 비극이 있지만, ‘꿈(상상)’의 세계는 모두에게 무한히 개방된 가능성과 자유가 있다는 점을 시인은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다 시(詩)는 수식어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리듬으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정과 지성의 균형적인 조화로, 산문시의 구조에 외형적인 문형(“아닙니까”)의 리듬과 ‘자연 속 이미지’로 연출하는 것이 ‘시집<님의 침묵>’의 특성이기도 하다.
다섯째, 시학에서 ‘감정이입(感情移入. empathy)’이란 자기의 감정을 대상 속에 투입하여 나와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를 시도하고 ‘심적 연합’을 이루려는 ‘시적 태도’라는 측면이다. 시집<님의 침묵>에서는 ‘시(詩)’란 자아나 객관적인 세계 즉 타자를 자신의 욕망과 의식의 지향에 따라 가정하고 창조하고 새롭게 명명하는 행위라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나와 너, 자아와 세계,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되는 화해의 시학과 고정된 사물의 의미가 새롭게 명명되고 전환되는 창조적 행위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 <님의 침묵>이다.
전체적으로 만해 한용운 시인님은 우주 속에 찬란한 자연의 색채 위에 인간의 삶을 초롱초롱한 별빛처럼 새기는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님의 존재’를 ‘무아’로 설정하고 찾아가는 ‘가아’의 사랑을 참된 깨우침으로 바라보는 아주 독특한 시선이 그러하다. 하나의 인간 구도자의 삶을 ‘님과의 이별’-‘기다림의 고통’-‘만남과 환희’로 엮어내는 예술적 표현에선 세속적 사랑의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장면이 신비롭기도 하다. 어느 첨단화된 극장에서 화면 속 이별과 만남으로 엮인 이야기로 참된 깨우침을 시연하는 듯한 신비로움에 만해 한용운 시인님을 영화감독 한용운 선생님으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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